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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 쌀 모아 전기 끌어왔었는데... 떠나는 사람들만 가득”

[걸어서 동네 한 바퀴] 시간이 멈춰버린 그 시절의 골목, 충남 당진시 송악읍 중흥리

등록 2020.09.19 16:04수정 2020.09.1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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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시의 송악읍 중흥리 골목 ⓒ 한수미

 
당진시 송악읍 중흥리에 전기가 들어온 지는 5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등유가 심지를 타고 올라와 불빛을 만들어 내던 그 시절, 아침에 일어나면 그을음에 코안이 새까맣던 시절이었다. 해가 지면 깜깜한 밤이 내려앉던 골목이었지만 정(情)이 있었기에 골목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았다. 모두가 잠든 새벽이라도 아픈 이가 찾아오면 의원 문이 활짝 열렸고, 입을 옷이 없다며 문을 두드리면 양복점 문이 열렸다. 전기 역시 주민들이 쌀을 모아 끌어왔다.

지금 중흥리는 시간이 멈춘 듯 하다. 하나둘 사람이 떠나며 빈 점포들이 늘어났다. 태어나는 아이의 힘찬 울음소리보다 떠나는 사람들을 향한 애도의 소리가 더 자주 들린다. 정(情)으로 채워졌던 중흥리의 골목이 하나둘 비워져 간다.
  
아픈 이 돌보던 한약방
 

한 때는 한약방이었던 곳. 교습소로 운영되다 아이들이 사라지며 지금은 담쟁이에 둘러싸인 채 놓여 있다. ⓒ 한수미

   

한약방 며느리였던 윤제익 전 부녀회장과 지태관 중흥리 이장 ⓒ 한수미


윤제익 전 중흥리 부녀회장은 53년 전 합덕읍 도곡리에서 중흥리로 시집왔다. 한약방 며느리로 들어왔는데, 한약방에 어찌나 사람이 드나들던지 문지방 오르느라 무릎이 다 닳았단다.

시아버지였던 고 윤원 대표는 중흥리에서 유일한 의료인으로 한약방을 열고 아픈 이들을 돌봤다. 여기에 산부인과에서 일했었던 윤제익 부녀회장이 종종 산파 역할을 하느라 마을 곳곳으로 불려 다녔고 남편이 한약방을 물려받아 약국을 운영했다. 한약방이었던 그 공간은 담쟁이에 둘러싸였고, 약국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그땐 병원이랄 게 없었죠. 새벽에도 아프면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문 두드리는 소리 듣고 동네 사람이면 바로 문을 열어줬죠. 큰 병원 갈 일이면 돈 줘가며 택시 태워 보냈어요. 이곳에서 아버님이 참 좋은 일 많이 하셨어요."

줄 서가며 바둑 두던 이용원
 

50년 째 이용원을 지키고 있다. ⓒ 한수미

   
한약방은 피아노 교습소로 변했고, 그마저도 동네에 아이들이 떠나면서 지금은 비어 있다. 그곳을 걷다 보면 허물어져 가는 장옥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 나란히 중앙고무상회와 중앙이용원이 있다. 상회는 아내가, 이용원은 남편 손성태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며 지금은 이용원만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이 묻어 있는 바둑판. ⓒ 한수미

 
중앙이용원은 이 근방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꼽힌다. 이용원은 명절 때면 줄 서서 머리하던 곳이었다. 이발 값으로 여름이면 보리를, 겨울이면 쌀을 내던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남아있다. 기다리는 시간에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두툼한 나무 장기판과 바둑판 깔아 놓고 나 한 수, 상대 한 수 두곤 했다. 그사이 동네 소식들과 각종 정보가 오갔다. 손성태 대표는 "옛날이 참 살기 좋았다"며 "지금은 바둑 두는 사람이 없다"고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꿈신원 양복점 ⓒ 한수미

 
"초상 치르느라 바빠요"
   

철물점과 포목점 등 없는 가게가 없던 중흥리였다. 밤새 술이 오갔던 주막과 쇠붙이 냄새 가득한 철물점, 제수용품 판매점 등 다양했다. 천의장, 석문장과 같이 4일과 9일이면 장이 서 골목이 들썩였다. 쌀이며 나물을 머리에 이고 와 팔면 장 관리자가 자릿세를 거두러 다녔다. 시끌벅적했던 장날을 꿈신원 양복점의 김용석·이연훈 대표가 그리움을 담아 전했다.
 

한 때는 옷을 맞춰 입었지만 기성복이 등장하며 지금은 수선 위주로 일을 하고 있다. ⓒ 한수미

 
"송악읍 오곡리에서 한 할머니가 쌀을 머리에 이고 왔어요. 쌀에 줄이 갔다고 돈을 적게 받으려고 하는 것을 한사코 거절하시더라고요. 그때 좀 더 우겨서 돈 적게 받을 걸 그랬어요. 아직도 마음에 남아요."(이연훈 대표)

김용석 대표는 "요즘에는 아이 우는 소리는 듣지 못하고 초상만 치르느라 바쁘다"고 고개를 저었다. 직업 따라 두 사람이 이곳에 와 낳은 딸이 올해로 47살이란다. 세월이 참 빠르게 변했다. 김 대표는 "지태관 중흥리 이장의 큰형이 다음 날 결혼한다고 옷을 만들어 달라더라"며 "옷 다 만들어 놓고 다림질만 하면 되는데 (전기가 안 들어와) 앞도 안 보이고 피곤해서 다음날 할 생각에 잤다"고 회상했다. 이어 "다음날 새벽, 옷 달라는 소리에 퍼뜩 잠에서 깨 옷을 다렸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한보와 함께 중흥리도 부도"
 

"한보철강이 들어오니 중흥리에 외지에서 온 투자자들이 많아졌어요. 그때 땅값이 올랐어요. 한보철강이 부도나고 현대제철이 들어왔지만, 땅값이 올라갈 대로 올라갔던지라 송산으로 사람과 회사들이 몰렸죠. 그 이후 황해경제자유구역까지 지정됐다 해제되면서 중흥리는 이도 저도 못 한 채 멈춰버렸다."(지태관 이장)
 

무너져가는 장옥 ⓒ 한수미

 
원주민이 하나둘 떠나며 사람들의 온기가 흘렀던 골목엔 냉기만이 감돈다. 할아버지부터 아들까지 무려 4대째 100년 넘게 중흥리에서 살아온 지태관 이장은 "송악읍 소재지는 기지시리, 상업지역은 복운리에 형성돼 있다"며 "중흥리는 한보철강이 부도나면서 같이 부도났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이어 "그래도 송악읍민화합체육대회가 열리면 매회 종합우승 혹은 우승을 차지할 만큼 단합이 좋은 동네"라며 "송악복지관이 하루빨리 운영되고 619호선(한진리~가학리)이 빨리 마무리돼 동네가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당진시대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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