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 11:05최종 업데이트 20.08.10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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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대면 경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말한다. 이 판단은 옳을까? 30만 년 인류 역사는 끊임없는 전염병과의 싸움이었으며, 유럽 인구 절반 가까이가 사망한 14세기 흑사병 이래, 홍역, 콜레라, 소아마비, 말라리아, 폐렴, 천연두, 에이즈 등을 겪으면서도 접촉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접촉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소통을 연구하는 커뮤니케이션학자로서, 우리가 코로나 사태에서 놓치고 있을지 모를 몇 가지를 살피고자 한다. [기자말]

2015년 KBS <뉴스광장>은 "10년 뒤 택시와 사무원이 사라진다"고 보도했다. 현실성 없는 기술전망을 비판의식 없이 보도하는 것은 한국 언론의 큰 병폐 중 하나다. ⓒ KBS 화면캡처

 
몇 년 전 옥스퍼드대 연구팀의 보고서 하나가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여기에는 '인간노동 다수가 자동화에 밀려날 수 있다'는 추정이 담겨 있었다. 사실 이런 예측은 수없이 있어 왔지만, 이 보고서가 특별히 주목 받은 까닭은 두 명의 저자가 '47%'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는 데에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숫자가 구체적이라 해도, 확률에 의한 추정치의 한계로 인해 전망은 모호하고 표현은 두루뭉술할 수밖에 없다. 문제의 보고서를 인용해 보자.
 
"우리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 전체 일자리의 47%가 고위험 범주, 다시 말해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으나, 어쩌면 10~20년 새 자동화할 가능성이 있는 직업군에 속해 있다."

여러 나라 언론이 이 내용을 보도했지만, 그중 한국 언론의 반응은 유독 뜨겁고 단순했다. 다음과 같은 보도가 줄을 이었고, 지금까지 비슷한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20년내 일자리 47%가 사라진다"

앞의 보고서는 구체적 시간을 제시하지 않았고, 대상을 미국 내 일자리로 한정했으며, '일자리 47%가 사라진다'는 주장도 하지 않았다. '자동화'가 곧 '대체'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은 5년 뒤에 나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봐도 알 수 있다.

회원국 32개 나라를 대상으로 한 이 2018년 보고서는 '직업 자동화'의 의미를 한층 정확히 제시한다. 직업의 절반가량이 자동화의 영향을 받겠지만, 작업 70% 이상을 기계가 해낼 수 있는 '고위험군' 직업은 14%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존하는 직업 가운데 자동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제조업이나 건설 노동자에게 기계의 활용은 작업의 일부가 된 지 오래고, 청소부는 물 분사 기능이 갖춰진 진공노면청소차를 이용해 일을 하고, 증권분석가들은 분석프로그램을 활용해 업무를 수행한다. 자동화는 직업을 대체하기보다 노동 형태를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자동화는 일자리를 대체하기보다 노동의 특성의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청소용 자동차. ⓒ Rjluna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려면 인간의 판단력에 필적하는 인공지능이 개발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단계에 도달하기까지도 갈 길이 까마득하다.) 그 지능을 활용해 인간의 물리적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정교한 기계가 만들어져야 하고, 이 둘을 합한 비용이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 값이 싸야 한다.

결과적으로, 옥스퍼드 보고서는 기껏해야 '향후 절반가량이 자동화의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후 어떤 보고서도 한국 언론의 흥분을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그 결과 어떤 언론은 '5년 안에 ~이 사라진다'는 대담한 주장을 펴는가 하면, 분야도 미심쩍은 '전문가'들은 '직업 감별사'를 자처하며 '금방 사라질 일자리'와 '오래 갈 일자리'를 구별하는 강연회를 열고 책을 냈다. 타다 같은 플랫폼 회사는 '어차피 자율주행으로 택시 기사는 사라질 것'이라는 말로 사업 모델을 정당화하면서도 '곧 사라질' 인간 기사들을 열심히 모집했다.

비현실적 전망에 눈 먼 사회

최근 인공지능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주목할 만한 책들을 쏟아냈다. 메레디스 브루사드의 <인공비지능>, 마틴 포드의 <지능의 설계자들>, 메리 그레이의 <유령노동>이 대표적이다. (첫 번째를 제외한 나머지 두 책은 각각 <AI마인드>와 <고스트워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최근 인공지능과 데이터 과학에 대한 현실적 진단을 담은 전문가들의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왼쪽부터 <인공비지능>, <지능의 설계자들>, <유령노동> ⓒ 강인규

 
<인공비지능>은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전망과 인식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분석한다. 하버드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뒤 콜롬비아대학에서 데이터 저널리즘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브루사드 교수는 기술과 사회의 양측을 두루 이해하는 드문 학자다. 우리는 자율주행차가 당장 내년이라도 실현될 것처럼 들떠 있지만, 그는 이것이 왜 실현 불가능한 어리석은 기술인지를 구체적 증거를 통해 제시한다.

인공지능의 '산 역사'라 할 23명의 대가들을 인터뷰한 <지능의 설계자들>은 이 분야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와 전망이 매우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예컨대 '직업이 사라진다'는 주장은 사람의 지능과 같거나 뛰어난 인공일반지능(AGI)의 등장을 전제하고 있는데, 보통 비전문가들을 포함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 시기를 20~30년 뒤로 예측한다.

하지만 전문가 집단의 평균 예측은 이보다 훨씬 비관적이었다. '50%의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질문했을 때조차, 인공지능의 대가들이 내놓은 평균 전망은 80년 뒤인 2099년이었다. 다시 말해, 앞으로 두 세대가 지나도 인공일반지능이 실현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23명의 인공지능 전문가 중 5명, 즉 20% 이상이 전망 자체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분야는 예측 불가능한 장애물로 가득 차 있기에, 인공지능의 완성이 가시권 속에 들어와 있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인공일반지능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지만, 설사 개발된다고 해서 곧바로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유령노동>은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기보다 인간 노동의 본질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디지털 뉴딜'이 놓치고 있는 '유령노동'

'2% 부족한' 인공지능의 한계로 인해, 인공지능의 활용이 늘수록 사람들에 더 의존하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유령노동>은 컴퓨터와 인간이 결합하는 '인간 컴퓨팅(human computing)' 증가의 문제를 탐구한다. 예컨대 페이스북에 남성의 성기 사진이 올라왔다고 하자. 누군가 문제제기를 한다 해도, 삭제 여부를 인공지능에게 맡길 수는 없다.

우선 인공지능은 이미지 판독에 매우 서툴러서, 현재 기술로는 성기와 엄지손가락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설사 성공적으로 판독했다 해도, 상황적 지식이 결여돼 있는 탓에 삭제 대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못한다. 성기 사진이 르네상스 조각이나 회화의 일부일 수도 있고, 패러디나 정치적 의사표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해'는 인공지능 구현의 난제 가운데 하나인데, 현재로서는 사람들이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상황적 이해가 필요한 일은 사람이 처리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본사와 정식 고용계약을 맺지 않은 '얼굴 없는' 노동자들에게 맡겨진다.
 

'유령노동'의 문제를 다룬 <뉴욕타임스>. "아마존 웹사이트에서 일거리를 찾았지만, 한 시간에 97센트를 벌었다"는 표제가 보인다. ⓒ 뉴욕타임스

 
캘리포니아의 트위터나 뉴욕의 유튜브에 접수된 신고는 인도의 뭄바이나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처럼 지구 반대편에서 해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프리랜서'들은 직위도 없고, 월급이나 시급이 아닌 건당 수수료를 받으며, 오류로 인해 수수료를 못 받게 돼도 항의할 방법조차 없다.

2018년 기준으로 이 '유령노동자'들의 보수를 시급으로 환산하면 대략 2달러, 한화로 2400원에 못 미친다. 하지만 많은 플랫폼 노동이 그렇듯, 이들의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최저임금, 단결권, 교섭권 등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게다가 플랫폼 서비스 노동은 국경을 넘어 더 낮은 임금을 향해 흐르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이미 불안한 상태의 고용과 임금은 더욱 열악해진다.

기업들의 이윤 극대화 시도와 법률을 우회하는 플랫폼 사업의 특징으로 인해, '디지털 일자리'는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으로 전락하기 쉽다. 따라서 업체들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는 입법과 실행이 빠진 '디지털 뉴딜'과 '비대면 일자리'는 허황될 수밖에 없다.

빌 게이츠가 보장하는 직업은?

'인공지능과 데이터가 미래의 희망'이라고 믿는 정부들은 비슷한 선택을 한다. '인공지능, 데이터, 로봇 전문가 키우기'가 그것이다. 인공지능 분야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스튜어트 러셀 버클리대 교수는 이 뻔한 발상이 갖는 한계를 지적한다.
 
많은 정부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데이터 과학자나 로봇 공학자가 미래의 직업이니, 이 분야 전문가들을 길러내면 되겠구나.' 명백히 이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앞의 기사(문재인 정부, 네이버보다 빌 게이츠를 믿어라 http://omn.kr/1oday)에서 지적했듯, 디지털 산업은 최소 고용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도 모든 나라가 기를 쓰고 인공지능과 데이터 전문가를 쏟아내면 그 사람들을 누가 다 고용할까? 그렇다면, 미래에 과연 어떤 일자리가 유망할까?

자칭 기술의 전도사이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립자인 빌 게이츠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기계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공감 능력'을 꼽는다. 따라서 일자리가 희소한 시대일수록 사람을 돌보는 교사, 특수교사, 요양사 등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계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실을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인력이 남아돈다면, 그 인력을 활용해 노인들을 더 잘 돌볼 수 있고, 학급당 학생 수를 더 줄일 수 있고, 학생 개인의 특수한 필요를 더 섬세히 보듬을 수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돌봄 노동을 늘리는 것이 개인과 사회 모두에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사람은 기계가 흉내낼 수 없는 공감과 이해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Quartz

 
지난 7월 23일, 교육부는 2024년까지 초등교사를 25%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디지털 뉴딜'의 일환으로 '그린 스마트 스쿨'을 선포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니까, 학교의 디지털 기반시설 투자는 키우되, 교육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사람에 대한 투자는 줄인다는 발상이다.

일자리 늘린다면서 핵심 일자리는 줄이는 정부

물론 교육부는 출산율 감소에 따른 조치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한국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2019년 교육지표에 따르면, 한국 초등학교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16.4명, 학급당 학생 수는 23.1 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5.2명, 21.2명에도 못 미친다.

더구나 한국 학교는 1인당 학생수뿐 아니라, 기간제 교사 비율이 매우 높고 계속 가파르게 증가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직후인 2017-18년 사이에 유·초·중·고 정규교원 대비 기간제 교사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불과 1년 만에 0.39%포인트가 증가한 것인데, 이는 박근혜 정부 4년간의 증가율을 모두 합한 것(0.36%포인트)보다 높다.

사립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 비율은 무려 25%에 이르며, 이들 가운데 절반에게 담임을 맡기고 있다. 여러 학교를 돌며 일해야 하는 저임금에,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불안정한 고용은 학생들에게 관심을 쏟을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기간제 교사를 줄이고 교사 수를 늘리는 투자는 '스마트 스쿨' 구축보다 훨씬 스마트한 선택이며 시급한 과제다. 특히 빌 게이츠가 강조하는 특수교사와 학급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낮은 출산율은 경제적으로는 위기지만, 교육에서는 기회다. 이제 비로소 교육다운 교육을 할 환경이 조성됐는데, 왜 과거의 열악한 환경을 기준 삼아 호기를 내팽개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디지털 기술로 인해 소외되고 공감 능력을 잃어가는 학생들을 섬세히 보살피기 위해 충분한 교원이 필요하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필요를 정성스레 돌본 우리들은 미래에 그들의 보살핌을 받게 될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깊어지는 성취도 격차와 학생들의 소외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교원을 줄일 때가 아니라 늘릴 때다.
 

미래의 현명한 대안은 구현되지 않은 디지털 기술보다 이미 구축된 현재의 세계에서 찾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기술에 대한 뻔하고 낡은 사고를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 ⓒ 터닝포인트

 
한국은 로봇 밀도와 자동화 준비지수에서 2018년에 이미 세계 1위에 도달한 상태다. 그런데도 정부는 디지털 기반시설에 막대한 추가 재원을 쏟아 붓겠다며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1등' 좋아하는 나라가 왜 교육 환경만은 중간 수준도 못 가서 주저앉으려는 것일까?

교육투자에서 세계 1위를 하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다. 상위 국가의 중간 정도라도 목표로 삼자. 전국교원노조 정책실 분석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의 상위 3분의1 평균 수준에 맞추려면, 2022년까지 교원을 최소 6만 6천여 명 증원해야 한다.

사람에 투자하는 것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다. '사람이 먼저'라며 내 표를 설득했던 문재인 정부를 다시 한 번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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