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없는 이상주의 부모와 놀면서 큰 중학생 아이의 현실

사교육걱정 팔아 인생걱정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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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good77)등록 2017.11.06 10:10
우리 아이 조기교육 고민과정

맞벌이 가정이다 보니 큰 아이는 주로 베이비시터 손에서 하루를 보냈고 퇴근 후 피로가 가득 쌓인 채 만나는 시간이 그다지 질적으로 좋기는 힘들었다. 더군다나 아이가 4살이 될 쯤 둘째까지 가져 몸이 무거워진 나는 한글이나 놀이 방문 교사 덕에 단 30분이라도 휴식을 갖으며 아이의 교육도 보충하겠다고 마음먹고 첫 사교육을 시작했다. 프로그램들과 교재는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나 우리 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저 집안에 있는 물건을 끄집어내어 놀거나 엄마가 읽어주는 책읽기, 자기 마음껏 그림그리기를 더 좋아했다. 몇 번을 시도했던 방문교육은 아이의 거부로 실패하고 말았다. 3세부터 시작된 어린이집 생활도 집단 활동 참여가 저조한 돌보기 어려운 아이로 순탄치가 않았다. 주변의 많은 아이들이 영어유치원을 입학할 때 우리 부부도 영어유치원 몇 곳을 알아본 뒤 평이 좋은 곳으로 예약을 해 두었다. 그러나 입학 시기가 다가올수록 왠지 모를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개성이 강한 아이가 학습 위주의 영어유치원 과정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게 가장 뚜렷한 걱정거리였다. 그래서 놀이 중심의 일반 유치원으로 바꾸고 6세는 단체 활동 적응과 놀이 중심으로 보냈다.
<사진1. 어린이집 체육행사>

사교육 없는 초등시절

초등학교 입학 즈음이 되자 또 다시 걱정이 시작되었다. 요즘 아이들 추세에 맞지 않은 자유로운 생활에서 조금은 규칙적인 생활로의 적응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사는 곳이 교육열이 강한 지역이다 보니 학습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 자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주는 선에서 영어, 노작수업, 태권도를 1일 1회, 30분~50분 정도로 구성해 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모든 걸 거부했다. 초등학생이 되자 유치원에 비해 딱딱해진 학교생활 때문인지 하교후의 시간은 더 자유롭기를 바랐다. 심지어는 학교가기를 거부하기까지 하는 통에 마음의 근심이 그칠 줄 몰랐다. 그 즈음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등대지기 강의를 만나게 되었다. 총 8회의 강의를 들으면서 주변의 시선이나 기준에 맞춰 개성이 강한 내 아이에게 획일화된 교육 방법을 들이 밀며 힘들어 해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10년 이상 교사로 일해 온 나 자신이 내 아이 교육에 대해서는 '묻지마' 교육으로 내 달릴 뻔 한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날부터 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오면 산노루 처럼 들에서 뛰놀며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는 동네에 살다보니 친한 이웃을 중심으로 몇 가정이 모여 주말이나 여가를 함께 보내며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친분을 쌓아가기도 했다.
<사진2. 이웃과 함께하는 여행>

초등학교 1학년 반 친구의 반격

그 무렵 아이 학교 공개수업을 보러 학교를 찾았는데 반 친구, 한 아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줌마, 00이 엄마시죠? 00이는 뭐가 되려고 학원도 안다니고 공부도 열심히 안하나요?"하는 것이었다. "너 우리 00이가 많이 걱정되는가보구나?" 하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우리 엄마가 공부 안하면 노숙자 된다고 했어요. 00이는 공부를 너무 안해서 바보 같아요." 하고 당돌하게 대꾸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건 네가 잘 몰라서 그래. 00이가 학원은 안다니지만 집에서 책도 많이 읽고 그림이나 만들기를 하며 스스로 연습하는 것도 굉장히 많아."하고 말해주었다. 집에 와서 물어보니 그 아이는 종종 우리 아이를 놀리고 괴롭힌 다는 것이다. 아들은 그 아이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남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도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홀로 독불장군처럼 남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우리 아이에 대해 좀 더 세심하게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내가 엄마의 공부 노예야?"

학교 공부 외에는 별도의 학습활동이 없지만 자율적인 시간이 많은 덕에 책읽기에 익숙한 아이는 대부분의 학교 공부에 대해 크게 부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4학년이 되고부터 꽤 오랜 시간 집중해야하는 수학 공부에서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몇 초도 집중하기 힘들어하는 성향이다 보니 연산 능력을 키워가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하루 30분 정도 수학 문제를 풀게 하고 확인을 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아이는 도무지 하려고 들지를 않았다. '너무 놀기만 해서 공부습관이 엉망인건가?' 하는 새로운 두려움에 설득하여 다시금 책상에 앉히곤 했다. 그렇게 한 달여 공부습관을 들이겠다는 이유로 수학 문제 풀기를 강행해가던 어느 날 아이가 울며 소리쳤다. "내가 엄마의 공부 노예야?" 나는 너무나 당황했다. '주변의 다른 엄마들에 비해 너무나도 많은 자율권을 주어왔는데, 부진한 과목 보충 좀 도우려 했다는 이유로 이런 항의를 듣다니...' 억울하다 못해 소위 말하는 멘탈 붕괴가 왔다. 더 이상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고민하던 끝에 본인이 필요성을 느낄 때까지 공부 도움은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 수학과목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과정이지만 제법 어려워진 고학년의 성적들은 하나 둘 하락 곡선을 그려갔다.

반 친구들의 조롱과 함께 맞이한 사춘기

놀지만 성적은 나쁘지는 않은 아이에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로 여겨지게 된 것은 6학년 때쯤인 것 같다. 하루는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학교 가기가 싫다고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교실 뒤편 게시판에 영어 단어와 뜻을 게시해 두었는데, 그 수준이 너무 유치해서 아이들끼리 비아냥거리던 중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사교육을 통해 일찌감치 영어유치원과 선행교육 과정을 받아온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학교교육과정은 유아수준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때 우리 아이가 주변에 가까이 가자 아이들이 "00이는 모를거야. 야,00 이거 읽어봐." 하며 'boat'니 'family'니 하는 단어들을 짚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몰라도 그 정도를 못 읽을까' 자존심이 상해버린 아이는 그 자리를 피해 버렸고 집에 돌아와서는 서러움으로 폭발한 것이다. 그게 바로 사춘기의 시작점이 된 듯 하다.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해진 사춘기에 접어들자 아이의 공부 고민은 심각해져 갔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에 대해 많은 고민을 거듭 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루는 "엄마, 나는 비정상이 아니야. 우리나라 아이들이 성장하는 수준에 맞춰 만든 교육과정이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난 결코 못하지만은 않을 거야. 그런데 다들 너무 일찍, 많이 해버리니까 내가 낄 틈이 없는 거야. 수학시간에 적응해보려고 나름 노력해보는데, 선생님의 풀이과정에 대답하려고 계산을 하고 있으면 이미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이 0.5초도 안되어 대답을 하니 바로 다음과정으로 넘어가는 틈에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고. 그러니까 난 사교육의 피해자야." 아이는 틀린 말을 하지도 않았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대안학교나 교육열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으로 이사를 가볼까 제안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정든 우리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대신 다른 아이들의 많은 공부량을 따라갈 수 있도록 공부 습관을 들여 보겠다고 했다.

"태어나자마자 나를 공부기계로 만들어버리지 그랬어!"

결심과는 달리 책상에 오래 앉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았다. 어느 날은 비비꼬며 꽤 오래 앉아 있다가 좌절하며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엄마, 내가 태어나자마자 공부기계로 만들어버리지 그랬어? 아예 놀아 본 일이 없다면 노는 게 좋은 줄도 모르고 공부만 했을 거 아냐?" 나는 아이의 항의에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잊을 수 없는 두 번째 멘탈 붕괴였다. '공부노예'와 더불어 '공부기계'...그 두 표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아이와 나의 갈등 구조 속 키워드로 기억된다. 자율적인 시간이 많이 필요한 아이의 특성을 보완해주기 위해 나름 사교육을 대신할 다양한 보충 수업 방법을 찾아 함께 노력해왔건만 그때 마다 강하게 거부했던 아이가 공부 부진의 책임을 나에게 미룰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니, '안하던 공부가 얼마나 힘들었으면'하는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그래, 공부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되는구나. 그런데도 잘 안 되니 너무 힘들어서 괴롭지? 그러나 지금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 마음가짐이 소중한 거야. 이제 시작이니 걱정 마. 너에게는 앞으로 수많은 시간이 있어. 넌 벌써 13살이야. 13살의 능력 있는 두되를 가졌잖아. 11살, 12살 때의 공부는 그렇게 어려운게 아냐. 짧은 시간에 만회할 수 있어. 힘내"하며 격려해주었다.

중학교는 공부 연습장

아이가 언제든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면 적극 지원하겠다는 마음으로 오래 기다려온 그 순간이 온 것이다. 남편과 나는 서로 분담을 해 보충학습을 지도하기도 하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여러 가지 강의를 들으며 공부 실패로 인한 상처를 치유해보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학교 수업 수준에 따라 갈 수 있도록 과외 선생님의 도움을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와 과외선생님의 도움을 거부하며 또 다시 자기 나름대로 극복해보기를 원했다. 사춘기를 보내는 과정에서 공부로 인한 실패감 때문에 자기 질책과 혐오로 얼룩진 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애써 담담히 한 발짝 물러나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이는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에 들어갔다. 중학교 1학년 성적은 그야말로 양(D), 가(E)로 도배 되었다. 소위 말하는 '양가댁 자제'가 된 것이다. '우리 아이가 말로만 듣던 전교꼴찌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시험과목 잘 못 알기, 시험범위 잘 못 알기, OMR카드에 답 옮기지 못하고 내기, 시험지 뒷면 문제 안 풀고 내기' 등 시험을 볼 때 마다 온갖 실수와 실패 경험으로 아이의 자기질책은 더더욱 심화되어가기만 했다. 그때 마다 "낙담하지마. 실패도 연습이야. 중학교는 공부 연습장이야. 너에게는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수많은 시간이 남아 있어 넌 이제 시작이야."라고 다독여 주었다. "필요하다면 엄마, 아빠가 힘닿는 대로 도와줄게. 언제든 손 내밀어"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주변의 도움을 거부하고 형편없는 성적표를 가져 올 때 마다 아이의 선택에 대한 실망과 원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불같이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 전 겪었던 교사로서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다시금 나 자신을 다잡곤 했다.

"선생님, 수학을 정말 잘 하고 싶어요."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중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하던 때의 일이다.
하루는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우리 반 남학생 민우(가명)가 초조한듯 복도에서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닌가. 눈이 마주치면 곧 교무실로 들어설 듯 하더니 또 다시 눈길을 피해 되돌아가기를 서너 번,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불렀다. "민우야, 선생님이랑 할 얘기 있는 모양인데, 좀 들어와 볼래?" 하자, 고개를 푹 숙인 채 들어 선 민우는"할 말이 있는 건 아닌데...너무 불안해요."하는 것이다. 의자를 내밀며, "선생님이랑 얘기 좀 나눠보자."하니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는다. "불안한 이유가 뭘까?"했더니 "이제 시험이 한 달도 안남았잖아요? 수학을 잘 하고 싶은데, 학원 때문에 늘 바쁘고 남은 시간도 얼마 없고, 너무 불안해요."하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평소 민우는 우리반의 대표적인 장난꾸러기였고 공부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시험은 3주 이상 남아 있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에게도 시험기간이라는 긴장감을 엿보기 힘든 시기였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3주라는 시간이 그다지 짧지 않은데, 왜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끼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민우는 "저는 매일 2시간씩 영어, 수학 학원을 다녀요. 그런데 숙제가 엄청 많아서 나머지 시간과 주말에는 숙제를 해야 해요. 영어는 학원 수업이 제 수준에 맞아서 그럭저럭 도움이 되고 있는데, 수학이 문제에요. 다른 아이들이 다 잘 따라가서 2학년 과정을 배우고 있는데, 저에게는 지금 배우고 있는 1학년 과정도 너무 어려워요. 지난 번 중간고사에 35점을 맞아서 혼도 많이 났고 저 자신도 무척 실망이 되었어요. 그래서 기말고사에는 잘 해보고 싶은데 여전히 학교수업도 학원수업도 따라가기가 힘들어요. 제가 혼자 어려운 부분을 다시 공부해 봐야 좀 알 것 같은데 그럴 시간이 너무 없어요." 민우의 말을 듣고 나는 또 다시 놀랐다. 사실상 공부가 중하위권이면서 학원 교육에 의지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공부에 대한 마음가짐이 위축되어 있고 수동적이어서 진지하게 자기 진단을 해보려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참으로 대견했고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래, 너 아주 의미 있는 고민을 하고 있구나. 그럼 선생님이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니?"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문제는 엄마에요. 제가 35점을 맞았을 때 부족한 공부를 스스로 보충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어요. 그런데 엄마의 생각은 달랐어요. 엄마는 다니던 학원 수업이 문제라고 생각하신 거에요. 그래서 공부 잘 하는 애들이 다니는 다른 학원을 알아보시고는 옮겨주셨어요. 그런데 이번 학원은 그 전 학원보다도 더 수준이 높아서 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않아요. 선생님께서 잘 말씀해주시면 시험 전까지는 수학 학원을 쉬고 제 스스로 공부 해보고 싶어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부 계획은 세웠니? 막연하게 혼자 해보겠다고 하면 엄마도 불안하실 수 있는데..."그랬더니 "5학년, 6학년 때 배웠던 개념들이 아직 혼동 되는 것이 있어요. 그걸 먼저 알아내야죠." 하는 것이다. 그래서 5학년, 6학년 교육과정 문제지를 사서 풀어가며 혼동하고 있는 개념들을 찾아내어 보충학습 한 뒤 시험범위를 중심으로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복습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와 전화 상담을 했다. 역시나 어머니는 아이를 못미더워 하셨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이 바로 이것이다.
"어머니, 중학교는 공부 연습장이라고 생각하세요. 진짜 공부는 고등학교부터이고, 사실은 그 이후일수도 있어요.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공부가 직업이지만 중학교는 견습생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스스로 정확하게 자기진단을 했으니 이런 저런 방법을 투입해 성공과 실패를 맛보는 과정에서 공부 노하우가 쌓일 겁니다. 믿어봐 주세요."
결국 민우 어머니도 기말고사 전까지 수학 학원을 쉬게 하는데 동의했다. 민우의 기말고사 수학 성적은 75점이었다. 3주간 스스로의 계획을 꾸준히 실천하여 무려 40점이나 오른 것이다. 민우는 뿌듯해했고 나도 자랑스럽다고 토닥여주며 집에 가서 어머니께도 바로 알려 드리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어두운 얼굴로 나타난 민우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엄마가 제 시험지를 보시더니 겨우 75점 맞으려고 학원까지 끊었냐며 엄청 야단 치셨어요. 저는 역시 수학에 소질이 없나봐요." 하는게 아닌가.

아이들의 스스로 살아가고자 하는 힘을 믿고 기다려주자.

민우의 일을 겪으며 나는 두 가지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하나는 아이들은 모두 공부를 잘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아이들의 스스로 살아가고자 하는 힘을 믿고 기다려주자는 것이다. 그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통해 수도 없이 교육 받은 그 내용이 생생하게 내 삶의 경험으로 다져지는 순간이었다. 교사로서 학생을 멋지게 이끌어주는 것은 비교적 쉽다. 자기의 한이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자식을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며 개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몹시 힘겹다. 과도한 사랑으로 인해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의 한이 개입하고 아이의 좌절에 매몰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간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 또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던가. 그때마다 나는 바람직한 교사의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기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 쳐야만 했다. '자식 교육에 왕도 없다'고 하늘에서 나 역시 별나라에서 온 엄마가 아니기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 누구나 겪게 되는 힘겨움을 홀로 피해 갈수만은 없는 것이다.

중학교 영어공부 스스로하기 실패담

1학년 2학기를 자유학기로 한 숨 쉰 아이는 2학년이 되자 다시 공부 고민에 빠져들었다. 1학년 과정을 통해 잃은 공부 자신감이 그다지 좋은 공부 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한꺼번에 다 잘하려하지 말고 한 과목씩 도전 해보기를 권했다. 그러자 "엄마, 나는 학교 영어 수업만으로 외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너무 뿌듯하고 기분 좋았어. 우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 볼거야"하며 다시 힘을 내었다. 초등과정 동안 학교 영어 수업만 경험한 터라 동료들에 비하면 유아수준의 영어 실력이었지만 미국 여행 중에 외국인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면서 영어의 실용성을 확인하게 되어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학년 1학기를 양가(DE)로 장식한 아이는 나름 진지하게 공부에 임했다. 서술형 시험에서도 실수가 없어야 한다며 영어 교과서와 자습서를 통째로 외우다시피 했다. 그러나 결과는 1학년 때보다도 더 못한 55점이었다. 소위 말하는 '외부지문'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아이는 크게 좌절하며 '난 역시 공부에 소질이 없나봐'라고 낙담했다. 사춘기의 정점에서 나름 야심찬 도전에 실패한 아이가 다시 힘을 내기까지는 그 전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결국 아이는 외부 도움을 청해왔고 학교 공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을 만회하고자 처음으로 영어학원이라는 곳을 찾게 되었다. 영어 학원 수업은 자유인으로 살아온 아이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주 3회 수업에 강도 높은 과제를 해내야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이 위태위태하기만 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것을 불평 없이 해나갔다. 본인의 실패과정에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함을 스스로 진단했고 그에 따라 선택했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말수업이나 방학 특강으로 여가도 없이 몰아가는 학원 수업에 불만을 갖는 것은 나와 남편이었다. 아이들의 사교육비와 시간 비용의 지출이 비교적 적은 대신 여행과 각종 레저를 함께 하며 적극적으로 여가를 즐길 수 있었던 우리 가족의 일상이 큰 아이의 영어 학원 스케줄로 인해 방해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보다도 여행과 레저를 좋아했던 큰 아이는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잘 받아들였다. 스스로 해 낼 수 있을 때까지는 묵묵히 따라가서 공부 방법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이다. 불과 3개월 만에 55점을 맞았던 영어 성적은 다음 시험에서 88점으로 그 다음 시험에서 100점으로 빠르게 향상되었다. 영어를 통해 공부 자신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다른 과목에도 영향을 미쳐 하나 둘 양가댁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체계적으로 언어를 받아들이는데 강점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발견했다면서 또 다른 언어를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문법체계를 토대로 틀을 세우고 다양한 어휘를 통해 살을 붙이는 우리나라 중학교 영어 교육과정을 미리 접하지 않고 중학생이 되어서야 밟았기에 그런 강점이 충분히 작용했을 것이라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다. 한 마디로 영어의 적기 교육이 빠른 향상의 중심키로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어휘력 향상에서는 곱절의 노력이 요구되었지만 성장 발달에 맞는 공부는 효율적이고 고통도 덜하다는 것이 아이가 가진 생각이다.

아이가 원하는 진로에 장애가 되는 과거 성적, 그러나 선택은 옳았다.

아이는 수많은 꿈을 거쳐 왔다. 유년기엔 공룡을 연구하는 지질학자가 되고 싶어 했고, 식물과 동물에 꽂힌 다음부터는 생명과학자가 되고 싶어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꽤 오랫동안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우리 부부는 그 모든 과정을 장려하고 지켜봐주었다. 아이의 욕구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진득하지 못하다고 타박하지도, 좀 더 현실적인 꿈을 가지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영어 공부를 통해 공부 자신감을 회복한 아이는 현재 또 다른 꿈을 만들어 가고 있다. 또 다른 외국어를 습득하여 다국어를 구사함으로써 세계와 소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고 진학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2학년 1학기부터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까지의 영어 성적을 반영하는 외고 입시에 도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성적이다. 2학년 영어 성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외고 입시 성적에서 한 번이라도 '평점, 가(E)'가 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실패도 리스크로 합산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성적에 대한 불안과 강박은 피하기 힘든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적어도 공부하는 과정의 발전도가 결과 치에 합산될 수 있는 입시체제가 마련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아이는 실패할지도 모르는 시도에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주변의 염려에도 굴하지 않고 진지하게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처음부터 실패를 줄일 수 있도록 부모가 적극 개입했다면 어땠을까? 후회할 일이 많이 줄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언제까지나 앞장서서 실패를 줄여줄 능력이 우리에겐 없다. 머지않아 우리는 한 물 간 세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성적이 내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잡는다는 경험도 크게 보면 인생 공부이다. 실패와 좌절이 없는 인생은 없다. 혹여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아이로 기르고자하는 마음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사진 3. 공룡학자를 꿈꾸던 아이의 작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고 진학을 희망하는 우리 아이

이틀 전 내년도부터 외고, 자사고, 국제고 입시 전형 기간을 일반고와 동시 진행한다는 정부의 발표로 인해 해당 고등학교의 입시를 준비하던 수험생과 학부형들의 마음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결국 외고, 자사고, 국제고의 입시에서 실패한 학생들은 일반고 학생들이 지원하고 남은 학교로 진학하게 될 위험이 생기면서 최상위 안정권이 아닌 이상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로인해 입시 경쟁률이 줄어들면 결국은 외고, 자사고, 국제고는 대입의 강점을 더 잃게 될 것이므로 사실상 폐지 위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올해 입시를 준비했던 학생들 중에서 입학원서 접수를 바로 며칠 앞두고 포기하는 경우도 쉽사리 찾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의 목표는 변함이 없다. 애초에 좋은 대학의 예비번호를 받기 위해 특목고에 진학하려는 것이 아니라 해당학교가 지닌 특수목적과 자신의 진로희망이 부합하여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의 자녀가 특목고를?

얼마 전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의 이사직을 맡으며 <등대지기>라는 학부모 교육 강의도 했던 한 정신과 전문이의 아들이 과학영재고에 진학하면서 논란의 대상이 된 일이 있었다. 그 일을 지켜보면서 학부형과 지인들에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단체를 적극 홍보하고 그로 인해 생긴 교육마인드를 전파하려해온 나 또한 비슷한 오해를 받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은 아이의 특성을 무시한 과도한 사교육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온 분이다. 직업상 소아청소년의 정신적인 문제를 자주 접하게 되었고 그 원인이 과도한 교육열에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중학교에서 사춘기 아이들을 10년 이상 지도하며 특히, 교육과열이 심한 지역의 아이들에게 많이 보여지는 학습 무기력감에 주목하면서 부터 사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문제의 많은 부분이 과도하고 일방적인 부모의 공부 요구로 인해 학생들이 자기주도성을 잃게 된 것과 관계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그래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활약에 주목해 왔다. 그것은 '사교육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특성에 맞는 공부수준과 방법을 찾아가는 일에 대해 '부모가 뱃머리의 진두지휘를 맡을 것이냐, 곁에서 격려하고 조언하는 도우미의 역할을 맡을 것이냐'의 문제라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자녀가 대입에 유리한 학교에 진학했다고 해서 부모를 위선자로 몰고 가는 것은 도무지 타당하지 못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꽤 오랜 시간 동안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 만큼 우리 시대의 부모는 상처투성이인 것이다. 우리 아이가 대입에 유리한 외고를 희망했을 때도, 이제는 불리할 수도 있게 된 외고를 여전히 희망하고 있다 해도 그 결정권은 부모인 나에게 있다고 할 수 없다. 그 환경을 살아가야하는 것은 아이의 몫이다. 지켜보는 마음이 힘겹지만 뱃머리를 아이 스스로 맡아 가도록 지켜보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진로 결정권은 부모의 몫이라고 보기에 이러한 해프닝이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사진 4. 사교육걱정없는세상  MT장면>

부모주도 사교육의 성공사례

우리 아이처럼 타고난 고집이 강한 아이가 아닐 경우 부모의 체계적인 교육 개입이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룰 수도 있다. 우리 가정에서도 둘째 아이는 지닌 성향이 비교적 수용적이다. 형 처럼 방과 후를 자유롭게 보내는데도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지금 현재까지도 학교수업에 열중하여 꽤 괜찮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욕심을 내어 심화교육을 시키면 그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온종일 깨작거리며 무언가를 만들고, 책을 읽고 뒹구는 아이를 묵묵히 지켜본다. 눈앞에 보이는 성적표 보다 더 중요한 삶의 성적표를 위해 때때로 고개를 드는 조바심을 애써 접어 둔다. 사실상 아이의 성향과 부모의 교육열이 잘 만나 성공하는 사례도 꽤 많이 접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문제점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사진 5. 여가를 통해 무엇이든 만들기를 즐기는 아이>

"심지어 임용고시도 족집게 과외를 받았어요."

몇 년 전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후배 교사 한 분이 떠오른다. 그녀는 강남 8학군에서 자라 유수의 대학을 나온 30대 초반의 교사였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내가 접한 대부분의 교사들은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되도록 빨리 사회생활을 해야 했기에 일찌감치 교대나 사대에 들어가 교사가 되었다'는 개인사가 많았다. 그래서 그 후배 교사는 매우 독특한 경우에 해당되었다. 그녀는 넉넉한 가정형편과 어머니의 앞서가는 교육열 덕분에 강남 사교육 1세대로 자랐다고 말하곤 했다. 초중고 교육과정은 물론이거니와 대학 재학 시절의 과제나 시험, 심지어는 임용고시 준비도 족집게 과외로 해결해 왔다는 것이다. 평소 총명하며 밝고 수더분한 매력도 있는 그녀이기에 그저 스스로를 자조하는 농담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함께 업무를 해 나가면서 종종 의아한 상황을 겪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처음으로 추진하는 일에 대해서는 첫 시작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는게 눈에 보였다. 한 번 이상 다뤄보지 못한 서류는 언제나 직속 부장교사였던 내게 물어왔고 예시를 주어야만 그제서야 쉽게 해냈다. 결과적으로는 일을 참 잘 하는 사람인데도 늘 적극성을 띄지 못하고 자신감 없는 태도로 일관 했다. 또한 교과 교수학습 자료를 스스로 개발하지 못하고 동교과 교사들에게 의존하는 것 때문에 일각에서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게다가 학교일 뿐 아니라 육아를 비롯한 개인사에서도 매번 친정 엄마의 조언 없이는 결정하기를 두려워하곤 했다. 그 후배교사가 말하는 사교육의 폐해는 바로 '자신의 역량을 믿지 못하는 낮은 자신감' 인 것이었다. 아마 그녀가 교육열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선호도가 한 단계 낮은 대학에 들어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임용고시에 여러 번 실패하다가 어렵게 성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타고난 총기로 인해 자신의 일들을 능동적으로 해결해나가고 좀 더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성공적인 교육의 기준

부모의 정보력과 주도력이 B를 A로, C를 B로 상향시킬 수 있다는데 나도 동의한다. 실제로 일부 지역이나 특정 학교 출신들의 대학 진학률, 전문직 점유율 등을 통해 성공사례는 흔히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이름 있는 대학, 좋은 직장에 진입하는 것만이 교육의 목적일 경우에는 부모 주도적인 공부의 성공률이 더 높다고 할 수도 있다. 게다가 팽팽한 과열경쟁 사회에서 아이 혼자 살아남도록 지켜보는 것은 부모로서 차마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도 이해가 된다. 그래서 많은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교육과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마다 나는 항상 "나라면 무엇을 원했을까?"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만약에 내가 아이라면...
"유년시절을 학교와 학원에서 대부분 보내는 대신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을 원할 것인가?", "실패를 안해 보도록 부모가 미리미리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 투입해주는 삶을 살아가는 일에 만족할 수 있을까?", "여가와 휴식을 언젠가 있을지 모르는 머나먼 미래로 미뤄두고 10년이고 20년이고 묵묵히 공부만 할 수 있을까?"

우리아이의 공부 고민은 현재진행형

최근 들어 아이는 '영어 학원 수강을 중단하면 어떨까'를 놓고 고민 중이다.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아껴서 스스로 공부하고 남는 시간은 아직까지 부진한 다른 과목의 공부나 취미생활에 할애하고 싶다는 것이다. 학교 수업을 따라 갈 수 없어서 도움이 필요했던 학원 수강이니 만큼 꽤 잘 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다시 홀로 서기를 해보고 싶다는 반응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학원 수업과 과제에서 주어져 왔던 공부의 양을 스스로의 의지로 채워갈 수 있을까'하는 현실적인 고민 때문이다. 나는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제안함으로써 아이가 적절한 대안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도 결정해주거나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던진 예시들을 아이가 선택할지 말지는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아이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또 다시 고독한 공부 연습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힘든 세상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 무자비한 부모의 역할

우리 아이는 지금도 공부와 자신의 욕구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매일의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진학 준비 과정에서의 느낀 바가 있다 보니 실패를 줄이고자 하는 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실패가 없는 성공일변도의 삶은 주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다시 영어 공부 홀로서기에 성공하게 될지,실패 하게 될지, 외고 입시에 성공하게 될지, 좌절하게 될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부모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고생 많았다! 축하해. 너무 기쁘다. 참 장하구나" 혹은 "괜찮아, 이번 일은 실패했지만 앞으로 살아가며 네가 잘 할 수 있는 기회는 너무도 많아. 낙담하는 대신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잘 생각해보자."라고 다독여 주는 일이다. 그리고 이 험난한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 무자비한 부모인 죄로 여행, 독서, 다양한 체험의 질 좋은 여가를 함께하며 행복 에너지를 많이 만들어 가도록 거들어 주는 일 뿐이다.
<사진 6. 해루질 체험 가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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