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간담회 향한 조국 교수의 일갈 "피의자 박근혜, 변희재 수준"

[게릴라칼럼] 박 대통령에게 농락 당한 청와대 출입 기자단의 신년 간담회

등록 2017.01.02 19:45수정 2017.01.0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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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기자들 만난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제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뒤 청와대 참모진과 탄핵심판 대리인단 외에 외부인을 만나는 것은 23일 만이다. [ 청와대 제공 = 연합뉴스 ] ⓒ 연합뉴스


"그러면 새해 첫날 국민들을 향해서 메시지를 던진다면 대통령이 덕담과 반성을 해야 될 판인데 그러기는커녕 국민들이 더 울화가 치미는 메시지를 아주 그것도 기습적으로 기자들 모아놓고 던졌고요. 내용적으로는 전체적으로. 그럼 그거 아닙니까? 1000만 개의 촛불이 틀렸고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 이거 아니겠습니까?"

2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아래 민주당) 의원은 1일 전격적으로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간담회를 이렇게 갈무리했다. 재론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박 대통령이 3일부터 열리는 헌법재판소 탄핵 심리 변론기일에 맞춰, 기자들을 들러리 삼고 '병풍'으로 전락시키며 '대국민 쇼'를 펼쳤다는 사실 말이다. 이석현 의원은 1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박 대통령의 간담회 내용을 5가지로 명쾌하게 정리했다.

"도저히 이해 안 된다! 1. 할 일은 다 했다는데 참사에 올림머리가 할 일? 2. 오보라는데 그럼 7시간 뭘 했나? 3. 특검이 엮은 거라는데 특검이 없는 일을? 4. 관저에서 5분 거리 재난본부에 경호 때문에 못 갔다? 5. 정상 업무 했다는데 정호성은 왜 사적인 일이라 공개 못 한다 했나!"

한 마디로, 박 대통령 본인만 이해하는 간담회였다. 화법도 번역기가 필요했던 '박근혜 어법' 그대로였다. 차마, 듣고 읽고 있으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라고 되묻게 되는 그 화법 그대로에 "특검이 나를 엮은 것"이라는 귀를 의심케 할 표현까지 섞어댔다. 질문은 있되, 자기 할 말만 다하는 '나몰라식' 어법의 수준이야말로 '대통령 박근혜' 그대로였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의 일침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새해에도 피의자 박근혜의 상황인식은 딱 김진태 또는 변희재 수준이다."

"피의자 박근혜 상황인식은 김진태 또는 변희재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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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제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참석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뒤 청와대 참모진과 탄핵심판 대리인단 외에 외부인을 만나는 것은 23일 만이다. [ 청와대 제공 = 연합뉴스 ] ⓒ 연합뉴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따로 있었다. 청와대가 공개한 신년 간담회 영상 속, 박 대통령의 정면에 서 있던 한 기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짧은 영상이지만, 마치 대통령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한 그 기자가 보여준 제스처는 꽤나 상징적이었다. 청와대가 공개한 전문에 등장하는 청와대 출입 기자들의 질문에 더 눈길이 간 것도 그래서였다.


'좋은 질문에 좋은 답이 나오는 법'이란 명제는 인터뷰어 사이에서는 진리와도 같다. 비록 여러 기자들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동석한 간담회라 해도 달라지지 않는 진리다. 누구는 수첩에 받아 적고, 누구는 경청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몇을 제외하고 질문이 무딘 칼날이었다는 건 인정을 해야 할 것 같다. 심지어, 미용(성형)시술 의혹을 의식한 듯 카메라 촬영도 금지시켰다. 

청와대가 기자들의 노트북과 휴대폰 반입을 막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변명이 가능할 것 같진 않아 보인다. 한광옥 비서실장과의 신년 점심식사에서 급작스럽게 간담회 자리가 공지됐다는 사실이 더욱 문제적이다. 그렇다면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참석 불가"를 결의하고, 통상적인 신년 기자회견과 다를 바 없는 '피의자 박근혜', '직무정지 대통령'의 변론이 보도되는 것을 막았어야 옳다.

몇몇 매체는 취재를 거부했고, 또 몇몇 매체는 끝까지 보도를 고민했다는 후문도 들려온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박 대통령의 한탄조에 가까운 간담회 내용이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됐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박 대통령은 목표를 달성한 것이나 진배없다. "티타임 비용은 누가 댔는가"와 같은 공허한 비아냥만이 메아리처럼 남았을 뿐이다.

유독 박 대통령 재임 기간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비판의 중심에 서야 했다. 잘 알려진 대로, 자유로운 문답은커녕 매년 기자회견 때마다 '사전연출설'이 도마 위에 올랐다. 기자단이 사전에 질문지를 청와대 측과 조율했고, 그나마도 비판적인 언론사나 질문은 걸러지기 일쑤였다. 그 질문지는 기자회견 전 SNS를 통해 떠돌았다.

이번에도 다를 바 없었다. 4년 내내 '들러리'와 '병풍' 노릇을 해야 했음에도, 직무정지 상태인 대통령에게 친절하게 변명의 기회를 준 꼴이 됐다. 구체적인 질문의 내용을 훑어봐도 이러한 '친절함'이 더 도드라질 뿐이다. 박 대통령의 "철학과 소신"을 찬찬히, 있는 그대로 들어준 청와대 출입 기자들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꼴이랄까.

청와대 출입기자는 '대통령의 소회'가 왜 그렇게 궁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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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제공 사진 6컷의 비밀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제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뒤 청와대 참모진과 탄핵심판 대리인단 외에 외부인을 만나는 것은 23일 만이다. 이날 청와대는 사진취재를 불허했으며, 청와대 전속사진사가 촬영한 6장의 사진을 언론에 제공했으나, 박 대통령의 얼굴 모습을 크게 볼 수 있는 망원렌즈를 활용한 사진은 없었다. [ 청와대 제공 = 연합뉴스 ] ⓒ 연합뉴스


"대통령께서 말씀을 많이 하셔서, 첫 번째는 소회를 안 여쭤볼 수가 없습니다. 탄핵 된 이후, 집무정지 된 이후 현 상황에 대한 소회가 어떠신지. 그리고 정치권 국회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계신지 여쭤보고 싶고요."

하필 이게 첫 질문이었다. 도대체 '소회'가 왜 궁금한가. 안 그래도 참으로 구구절절 길게 이어진 박 대통령의 인사말로 그 소회가 충분치 않았던 걸까. 같은 질문자는 "검찰의 수사 내용이 사상누각"이라는 점과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서" 미용시술에 관해 물었다.

안타깝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화법이야말로 질문 자체가 두루뭉술하면 그 진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작정하고 변명을 준비한 이에게는 직설법만이 약이요, 독이다. "대통령이 콘트롤타워인가, 아닌가", "출근도 하지 않고 관저에서 집무를 보고 있을 때 아이들이 수장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와 같은 짧고 구체적인 질문을 했어도 부족했을지 모른다. 그런 박 대통령에게 첫 질문이 고작 소회였다니. 심지어, "여론 때문에 괴롭다"며 박 대통령의 괴로움(?)을 헤아리는 기자까지 있었다. 

"아까 전에 '청와대 기자들 많이 힘들어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많이들 각사에서 굉장히 괴로울 거예요. 저도 그렇고 너무 답답한데, 질문을 안 드릴 수 없는데 지금 검찰하고 특검도, 저희가 괴로워하는 이유가 여론에 의해서 굉장히 괴롭거든요."

대통령의 장황한 변명에 말을 끊는 건 어렵더라도, 최소한 후속 질문으로 박 대통령을 괴롭혔어야 옳다. 후반부, 블랙리스트 관련 질문 후에 후속 질문이 이뤄졌다. 이마저도 박 대통령의 "저는 전혀 모르는 일이에요"라는 '원천차단'과 같은 '오리발'로 후속 질문의 의도가 흐려졌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작정하고 나온 박 대통령의 페이스에 말린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박 대통령 특유의 화법을 버텨내느라 힘들었을 고충은 이해한다. 그럼에도 기자들의 무딘 칼날은 결국 국민들의 피로감을 더할 뿐이다. 지난 1일 보도된 MBC와 KBS 보도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에게 농락당한 청와대 기자단, '해체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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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뉴스 9> 1일 보도. ⓒ KBS


박 대통령 "뇌물죄 엮은 것…미용 시술도 사실 아냐" (KBS <뉴스 9> 1일 보도)
박 대통령 "세월호 7시간, 밀회·시술 의혹 어이없다" (MBC <뉴스데스크> 1일 보도)
박 대통령 "삼성 합병 찬성은 국민연금의 정책적 판단" (MBC <뉴스데스크> 1일 보도)

참담하기 짝이 없다. 촛불광장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던 KBS와 MBC는 박 대통령의 궤변에 가까운 변명을 충실히 시청자에 전달했다. '앵무새'라는 표현마저도 앵무새에게 미안할 정도다. 한 술 더뜬 KBS는 헌재의 변론기일을 연이어 보도하며 박 대통령의 변명에 무게를 실어줬다.

반면 SBS는 "갑자기 간담회 자청한 대통령…'7시간' 집중 해명"이란 리포트에서 야당의 비판을 전달했고, JTBC는 집중 리포트를 통해 8꼭지에 걸쳐 박 대통령의 궤변을 충실하게 반박했다. KBS, MBC와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의 간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한 내용도 문제지만, 홍보수석을 통해 기자들을 모으고, 기자간담회를 위해 예산을 쓰면서 오찬을 한 것은 탄핵소추 의결을 받은 대통령으로서는 헌법을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비서진을 통해 기자간담회를 준비한 행위와 기자간담회 모두 헌법에 위반되는 직무행위입니다)

헌법 제65조 제3항은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정지된 권한을 행사하여 배성례 홍보수석을 지휘하여 기자들을 모았고, 다른 비서관을 지휘하여 예산을 써가며 오찬을 준비하게 한 것입니다."

민변 소속 장덕찬 변호사가 1일 자신이 페이스북에 적은 글의 일부다. 장 변호사는 박 대통령의 기자 간담회 자체가 헌법 위반이라고 비판하며 조목조목 헌법 조항을 열거했다. 사실, 1일 보도에서 직무정지를 당한 박 대통령이 기자간담회를 주최한 것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언론도 전무했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이럴 거라면, 청와대 출입 기자단은 직무정지 당한 박 대통령의 '앵무새' 행세를 할 게 아니라 진즉 해체하는 것이 맞아 보인다.

그리하여, 2017년 새해 첫날을 장식한 박 대통령의 간담회는 한 마디로 국민은 물론 언론까지 우롱하고 기만한 '대국민쇼'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아니 정신을 차릴 생각이 없는 박 대통령이 진심 어린 대국민사과는커녕 청와대 출입기자단을 또 한 번 농락했다. 그래서 이날 간담회를 통해 박 대통령은 스스로 입증해 냈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조속한 헌재의 탄핵 인용과 특검의 구속 수사뿐임을.
#박근혜 #신년기자회견 #기자간담회 #탄핵 #직무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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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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