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붙였다가 교장선생님 호출 당했어요

내 생애 첫 대자보를 붙이고 나서... 문제제기 수용해준 교장선생님

등록 2014.10.30 11:00수정 2014.10.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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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12월쯤이었다. 그 때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회장 선거가 한창이었다. 당시 후보들은 모두 내가 모르는 2학년 형·누나들이었다. 나는 학교 방송을 통한 연설로나마 후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선배들 가운데 뭔가 가장 잘할 것 같고, 믿음이 가는 한 사람에게 투표했다. 지금은 누군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그리고 거의 1년이 지났다. 다수의 학생이 뽑아준 학생회장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체육대회 때 한 번 모습이 나왔었다. 난 실망했다. 지금껏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이 학생회를 도대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리고 아는 지인의 조언을 받아 대자보를 붙이기로 결정했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저절로 눈이 떠진 그날

대자보를 작성하기로 결심한 날부터 3일 정도를 나는 글을 써보고 고치고 하며 준비했다.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닌데 왜 이러지?"

이런 의문도 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내고 싶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자보를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 23일 수요일, 체육대회 바로 전날 대자보를 붙이기로 마음먹었다.


23일 오전 6시 30분, 그냥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나는 원래 오래 자야 피로가 풀리는 타입이다. 보통은 오전 7시에 일어나도 졸려 죽을 것 같은데 그날만큼은 눈이 빨리 떠졌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지난 7시 50분, 나는 테이프와 가위 그리고 돌돌 말은 대자보를 들고 학교로 향했다.

9시 등교가 시행되고 나니, 8시 10분께 도착한 학교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눈에 잘 띌 것 같은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 대자보를 붙이고 내려왔다. 대자보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안녕들하십니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안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회장은 우리들의 권리를 지켜야 하며 우리들의 말을 대변해 줘야할 우리들의 대표자 입니다. 우리는 1년 전 학생회장을 뽑기 위해 선거를 치렀습니다. 후보들은 모두 자기를 뽑아주면 '학생을 위해 뛰겠다'라고 말했고, 저는 그런 후보들 중 신뢰가 가는 한 사람을 뽑았었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저의 마음은 학생회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년 전 "학생을 위해 뛰겠다"면서 "지키겠습니다!"했던 그 공약들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지금 여기서 학생회 여러분에게 몇 가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학교 규정에 대해 어떤 논의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며 개선하려는 노력이라도 했습니까? 학생들이 때로 인권을 침해 받을 때 그것을 보고 개선하려는 노력이라도 했습니까? 어떻게 학생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고 있을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다보면 학생회가 우리들과 등을 돌리고 학생부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됩니다.

만약 학생회 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당장 저를 잡아 바로 족쳐버리시고 싶어지시겠죠.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시기 전에 먼저 자신들이 진정으로 학생을 대변하고, 위해서 뛰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셨으면 하네요.

진정으로 학생을 위해 뛰고 학생을 대변하는 학생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 김겨레
※이 대자보는 제 개인소유물이므로 무단 철거, 파손할 시 형법상 재물손괴죄에 따라 처벌받게 됩니다.
"학생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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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붙였던 대자보 아침 일찍 가서 1·2층 계단 사이에 붙였던 학생회 비판 대자보다. ⓒ 김겨레


교장실에 불려간 나,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대자보를 붙인 나는 여유롭게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읽다가 오전 8시 40분쯤, 반으로 가 축제 준비를 도왔다. 그리고 아침 조회 시간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날 부르셨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선생님과 함께 어딘가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갑자기 선생님이 물으셨다.

"교장실로 데려오라는데 혹시 무슨 일인지 예상이 가니?"
"아마 학생회 비판 대자보 때문일 것 같은데…."

이후에 선생님이 어떤 내용으로 대자보를 썼는지 물으셨지만, 나는 기억이 나지를 않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후, 교장실로 들어가게 됐고, 교장선생님은 담임 선생님을 내보내신 후 나를 의자에 앉게 하셨다. 그리고 먼저 말을 꺼내셨다.

"이거 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니? 불만도 쌓였을 것이고…."

의외였다. 나는 우리 학교 학교생활인권규정에 금지되어 있는 "비교육적인 게시물을 허가 없이 부착하거나 유인물을 배포"한 조항에 걸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과장된 생각이었다. 얼마 전 전근 오신 교장 선생님은 의외로 부드럽게 나오시며 나에게 어떤 것이 잘못되어 있는 것 같은지 물으셨다. 내가 대충 대답을 해보자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내일 A4 용지에 생활인권규정의 문제점과 건의하고 싶은 것을 적어 교장실로 오전 8시 30분까지 다시 와줄 수 있겠니?"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자보를 붙인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24일, 이 날은 체육대회 날이었다. 나는 오전 7시에 일어나 빨리 나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8시 10분쯤 집을 나왔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20분 정도 거리라 8시 30분까지 다다르기에는 충분하다.

8시 30분에 딱 맞춰 교장실 앞에 도착했다. 내가 노크를 하니까 교장 선생님께서 들어오라고 하신다. 교장 선생님은 통화를 하고 계셨는데 나보고 먼저 앉아있으라 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교장 선생님께서 통화를 끊으시고 내 맞은편에 앉으셨다. 나는 어제 정성들여 쓴 글을 교장 선생님께 드렸다. 특히 세 가지 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건의했다.

1. 학교생활인권규정을 제정할 때 학생회뿐 아니라 일반 학생도 참여하게 해달라.
2. 학생회장의 공약을 한 달에 한 번씩 검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
3. 학생회를 감시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한 가지, 한 가지 모두 검토를 해주셨다. 우선 교장선생님은 1번 제안에 대해서 "이것은 학생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을 위한 학생회장을 잘 뽑으면 굳이 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될 것이라고 본다"라고 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그 당시, 더 이상 이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생활인권규정 제정을 공개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왜 안 했는지 조금은 후회된다.

교장선생님은 2번 질문과 3번 질문에 대한 답변도 해주셨다.

"꼭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후보들이 선생님들과 공약을 검토하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할 수 있으니 그 점은 예방해야 할 것 같다."
"대의원 회의가 그 기능을 잘 해준다면 굳이 따로 기관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2번과 3번 제안에 대해서도 교장선생님은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다. 그 때 왜 대의원회의의 청문회 기능에 대해서 왜 제안을 하지 않았는지 아쉽기는 하다. 그래도 교장 선생님이 스스로 말씀하신 바를 지켜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지켜주시리라고 믿는다.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 말해놓고 안 되는 것 같으면 다시 와라"라고 말씀하셨다. 신뢰감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한 제안들에 대해 검토하는 시간을 갖고 교장 선생님께서 질문하셨다.

"혹시 반장, 부반장에는 나가봤었니?"

1학년 때 나가본 적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사실상 친구가 추천해서 나갔다가 떨어졌던 경험이었다. 그래서 그냥 없다고 대답했다. 내가 없었다고 답하자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럼 3학년 때는 한 번 도전해봐서 대의원이 되어서 활동도 열심히 하고, 학생회한테 할 말도 해보렴…. 근데 혹시 학생회장 나올 생각은 없니?"

갑작스런 돌발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생각만 해봤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 질문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학생회장 출마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겨레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kimkyok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자보 #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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