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몰랐던 한숨... 하지만 '운동권'을 변호한다

등록 2013.04.04 17:54수정 2013.04.0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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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졸업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영어시험을 보러 갔다.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와 씨름하다 나오는 길에 마주친 것은, 한숨을 푹푹 쉬며 시험장을 빠져나가는 수많은 동년배들이었다. 처음 보는 풍경에 무슨 이유에선지, 학생회를 하면서 '책임지겠다고 한 학우들의 진짜 모습은 바로 이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4년 동안 학생회에서 '반값등록금' '청년실업 해결'을 외치면서 20대 청년들의 고충을 함께 풀어고자 했다. 거국적인 반값등록금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청년들을 고립시키는 사회를 바꾸자고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나는 매달 영어시험장을 묵직하게 채우는 한숨 소리를 알지는 못했던 것이었다. 청년 문제와 맞섰던 나의 진정성이란 한발짝 떨어진 것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일반 대학생'과는 다른 '학생회 활동가'로 규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애정어린' 비판?

사회적으로 청년들의 권리를 실현하려는 청년학생운동의 '위기'도 내가 반성한 것과 비슷한 '거리감'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청년학생운동이 구사하는 이념적 언어, 표방하는 지향성 등이 대다수의 20대들이 안고 있는 삶의 문제와 일정한 거리가 있다는 인식이 꽤 넓게 퍼져 있다. 그래서 '애정어린 비판'을 자임하는 사람들은 청년운동이 청년 일반의 사회경제적 권리 문제에 보다 밀착돼야 한다는 지적을 하곤 한다.

그러한 비판이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젊은이들이 떠안고 있는 삶의 무게는, '경쟁력을 키워라' '눈높이를 낮춰라' 등등 한국사회의 훈수를 감당하기에는 이미 너무 육중해져 있다. 지극히 구체적인 일상의 스트레스와 소망을 운동의 이념으로 용해시키지 못한다면, 권리의 주체인 여러 젊은이들의 마음이 동할 리 만무하다. 

그러나 다만 이념적 지향성을 희석시키고, 정치적 구호를 생활적 권리에 맞닿은 '썰'로 대체하기만 하면 수백만 청년들은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힘차게 일어설까. 나는 청년학생운동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이 말하는 그러한 논리가, 실제로 청년들을 빵밖에 모르는 존재로 소외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을 발견한다.

청년은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아니, 인간은 누구도 빵만으로 살 수 없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에만 몰입할 때, 역설적이게도 먹고 사는 권리마저 찾기 힘들다는 것은 인간의 지난 역사가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사람의 권리'는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주장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인권, 그것은 구체적 현실 속에서 신체를 구속당하거나 고통받지 않을 권리, 최소한의 생존권은 보장받을 권리, 마음의 주권을 지켜낼 수 있는 권리,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 등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인권을 무슨무슨 권리로 쪼갤 것이 아니라, '어떤 권리를 주장하는 건 급진적이야'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다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적 감수성으로 '인간의 조건'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빵이 아니라 세계관이다

청년의 권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의 진로를 결정하는 정치활동에서, 다른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권리쟁취의 현장에서, 나라의 운명을 고민하는 공론의 장에서 청년들의 역할이 배제되거나 왜소해졌을 때, 누가 그 허약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는가. 누가 그들의 외침을 듣고, 등록금을 깎고 알바 조건을 개선하며 청년실업 대책을 세우겠는가. 20대도 돈 걱정 안하고 공부하고 싶다고, 청년백수가 되기 싫다고, 그리고 사회적 문제를 직접 결정하고 싶다고, '총체적으로' 청년의 권리를 주장할 때에만 사회는 그 외침에 밀려 한뼘씩 움직이지 않겠는가.

더욱이 청년은 어떤 마음가짐, 어떤 세계관을 배우느냐에 따라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존재다. 이들에게 단지 빵의 문제만 이야기하라는 건 사실 빵도 주기 싫다는 이야기다. 생활적 권리라도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권리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는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세계관의 얼굴을 하고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깨처진 청년의 부활을 기대하는 분들이, 고투를 거듭하고 있는 청년학생운동을 조금만 더 응원해주면 좋겠다. 머지않아 '빵'뿐만 아니라 '권리'에 대해서까지 거대한 공감을 이룩해낼 창조적 소수자들을 따뜻하게 지켜봐주면 좋겠다.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문제는 세계관이고, 권리를 깨닫는 감수성이며, 그걸 실천할 수 있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이상욱님은 현재 인권연대 청년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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