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하면 된다? 답은 딴 데 있어요"

경기도 광주 청석에듀시어터 이기복 대표의 연극 교육 이야기

등록 2012.12.20 17:07수정 2012.12.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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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경안천변에 위치한 청석에듀시어터. ⓒ 지지봄봄


취재 전날(12월 5일), 폭설이 내려서 가는 곳마다 푹푹 빠지는 '뚝방길'을 헤멘 끝에 눈처럼 '하얀 건물'을 만날 수 있었다. 경기도 광주시 경안천 인근에 있는 '청석에듀시어터'. 중고등학교 공교육에 종사한 교육가이자 광주시 4개 극단의 리더기도 한 이기복(57) 대표의 '일생일대의 작품'이다.

일반 극장의 개념인 '시어터'(Theatre)에 '에듀'(Edu)라는 교육적 의미를 결합시켜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연극을 교육하고 연극을 중심으로 지역문화예술의 '인적(人的) 선순환 구조'를 꾀하기 위해 마련된 청석에듀시어터. "모아둔 돈과 집을 팔아 마련한 사제를 털어서 지었다"는 이 공간에서 이 대표는 "아마 이런 곳은 전국 최초일 것"이라며 들뜬 웃음을 지어보였다.

학교 교사, 제도 안에서 '제도 밖 연극' 가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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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석에듀시어터 이기복 대표 ⓒ 지지봄봄


1981년 당시 경기도 광주군에 있는 경화여중에 부임한 이 대표는 이 학교와 병설학교였던 경화여고를 옮겨가며 30년 동안 교단에 섰던 '전직' 학교 교사다. "군 전역하고 학교에 가니 생활지도를 맡기더라"는 이 대표는 "그 당시는 가정 형편 때문에 가출한 애들이 많았었는데 밖에 나가서 그 아이들을 잡고 와도 소용이 없더라"며 "그래서 생각이 난 게, 아이들에게 학교 수업 안 받아도 좋으니 나랑 연극 한 편 하자고 했다"고 첫 출발을 회고했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에서 활동했고, 군 입대 당시 지역 대학축제에서 연극 연출을 맡기도 했다는 이 대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82년 경화여중 내에 연극반을 만들어 당시 유명했던 윤대성 작가의 <별들 시리즈 : 방황하는 별들, 불타는 별들, 꿈꾸는 별들> 시리즈를 상연한다.

"이 시기에 대강당이 만들어져 방치되던 소강당을 아마 국내 최초로, '경화소극장'이라고 이름 붙여 학내 연극극장으로 만들었다"는 이 대표는 7차 교육과정 도입 당시 "교장선생님을 설득해 1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연극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연극의 가장 큰 교육적 효과는 자율성·협동성·창의성이라고 생각한다"며 "(연극을 통해) 자율성이 생긴 아이들이 눈이 빛나고, 남의 도움을 전제로 하고 있는 연극의 특성상 남을 인정하는 것부터 배우고, 또 만화적 상상력을 아이들에게 요구하면 끄덕끄덕하며 그걸 해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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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마련된 연극연습실에서 아크로바틱 기술을 연습하고 있는 전문 연극극단 단원들과 학생들 ⓒ 지지봄봄


현 공교육의 틀 안에서 불가능한 교육적 소재와 교육적 효과였기에 이 대표의 '연극 교육'은 학교 현장에서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이와 같은 '탈 제도'에 대한 우려에 대해 이 대표는 '연극'을 자신의 전공교과인 '도덕'의 수행평가와 연계했고, '영어교육'과도 연관 지어 자신의 프로젝트를 '영어연극 프로젝트'로 전환하기도 했다.

제도 밖 소제였던 연극 교육을 위한 일종의 '조율'이자 '타협'이었던 셈. 이 대표는 "2학기 끝 무렵 광주시에서 제일 큰 극장(1300석가량)에서 자신의 딸이 생기 넘치게 영어로 연극하는 모습에 학부모님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고 당시 반응을 설명했다.

경화여중·고등학교 연극반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대표는 2007년부터 광주지역 고등학교들을 설득해 고등학교 연합 청소년극단을 꾸리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광주지역 6개 고등학교가 이 극단에 참가했다. 이 대표는 "이렇게 길러 (연극이나 문화예술로 진로를 결정한) 제자들이 300여 명 가까이 된다"며 30년간의 교직 생활 성과를 이야기했다. 성과는 쌓이고 쌓여 광주시 고등학교 연극반은 전국청소년연극제에서 3회나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고.

이제는 제도 밖에서 '제도 안 교육현장'을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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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을 앞둔 청석에듀시어터 지하. 적지 않은 규모의 연극을 위한 소극장 까지 갖췄다 ⓒ 지지봄봄


30년의 교직 생활을 명예퇴직으로 마감하고, 이제는 학교 밖에서 학교 안 교육을 바라보는 입장이 된 이 대표. 그는 여전히 광주시 고등학교 연합 청소년 극단을 이끌고 있다. 그는 이 극단을 중심으로 현재 '청석에듀시어터'를 운영하고 있다. 총 72명으로 구성돼 있는 청소년극단 아이들은 거의 매일 이곳에 들러 저마다 연습도 하고 운동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긴단다.

아직 청석에듀시어터가 완공되지 않아 공간이 가득 차진 않았지만, 이곳은 지하 1개 층 지상 2개 층 등 약 300여 평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 대표는 그밖에 연극연습실과 학원 공간, 적지 않은 규모의 소극장, 이 대표 내외의 주거공간까지 마련했다. 이 대표는 "이 공간을 확장해 앞뜰에는 데크도 만들어 날이 좋을 때는 '주니어'뿐만 아니라 '시니어'들도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또 앞 부지를 매입해 장기적으로는 좀 더 넓은 규모의 교육 공간을 만들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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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 장구 장단을 연습 중인 아이들 ⓒ 지지봄봄


한편, 이 대표는 12월 31일 현직 교사들과 교육에 관심이 있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우체통'이라는 이름의 광주시 교육가 아마추어극단을 발족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이를 통해 연극이라는 문화예술교육소제를 두고 포럼 및 세미나를 개최, 광주시 초중고등학교나 지역 현장에 '교육적 효과' 유발을 꾀할 복안이 있다. 이 대표는 "내 꿈은 광주시 모든 학교에 우체통 단원들이 1명씩 배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흔히들 빠지는 공교육의 함정이 '하면 된다'는 건데, 공교육에 오래 몸담아 본 입장에서 오히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며 "공부로 안 되는 아이에게는 무조건 하라고 하기보다 빨리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나는 그 대안이 예술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지역 문화예술 욕구의 '선순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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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극단 단장인 박범현(18·왼쪽)군과 인터뷰를 위해 함께 방문한 고영직 문학평론가(오른쪽)의 모습 ⓒ 지지봄봄


이 공간에 속한 아이들은 어떨까. 기말고사 기간이었던 12월 초, 현장에는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위주로 자율적인 연극 연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광주고등학교 3학년 이대명(18)군은 "어렸을 때는 영화배우가 꿈이었는데, 처음에 연기를 배우기 위해서 연극 반에 들어오게 됐다"며 "연극의 연기와 영화의 연기가 다르다는 걸 느꼈지만 연극을 하고 나서 커튼 콜을 할 때, 조명이 비치고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을 때 '연극을 해야겠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매일 공부와 성적만을 강조하고, 복장 검사를 일삼는 학교에 화가 나고, 증오하기도 했다는 이대명군은 연극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난 뒤 "꿈이 있다고 하니 부모님도 응원해주시고, 친구들도 연극을 보러와 즐거워해줬다"며 "성공한 연극배우가 돼 넓은 곳에서 공연을 학 싶다"고 덧붙였다.

현재 청소년연극단 단장을 맡고 있다는 광주고등학교 3학년 박범현(18)군은 "중학교 때까지 미술을 했는데, 고등학교 입학 때 여러 가지 여건을 고민하다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며 "그 뒤에 연극에서 길을 찾았고, 나 역시 커튼콜이 올라갈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청소년극단 속 많은 아이들이 취미로 연극을 배우는 것을 넘어 미래의 진로로 연극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 대표는 현재 300여 명이 넘는 연극계 전문 종사자들을 길러냈다. 또 이중 40%가량이 다시 지역에 돌아왔기에 극단 파발극회나 극단 청석에듀시어터 등 전문 극단이 꾸려질 수도 있었다. 이런 선순환구조 덕분에 인구 30여만 명의 광주에는 총 4개의 아마추어·프로 극단이 운영되고 있다.

이 대표는 "지역의 문화예술욕구를 연극이라는 장르로 충족시킬 수 있다"며 "연극의 미래는 대학로가 아닌 지역과 교육에 있다"고 자신했다. 30여 년간 광주 지역 공교육 현장과 연극이라는 문화예술 장르 사이를 치열하게 고민한 그의 결실이, 사제를 털어서 지은 광주시 '청석에듀시어터'로 빛을 발하려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지지봄봄 블로그(http://gbom.net/68)에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 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이기복 #청석에듀시어터 #광주 #문화예술교육 #지지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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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우진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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