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사퇴 요구에도 당당한 현병철, 이유가 있다?

현병철 위원장 1년 4개월...MB에 충성하고, 상임위원 사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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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ld84)등록 2010.11.27 20:50
취임 후 1년 남짓 숱하게 들어온 사퇴 요구에 이제는 면역력이 생긴 것일까. 인권위원회를 점거하고 "당신의 사퇴가 위원회를 살리는 길"이라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에도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흔들림이 없었다.

문경란·유남영 상임위원들이 현 위원장의 독단적 인권위 운영에 반발해 사퇴한 이후,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사퇴 요구에 그는 오히려 당당했다. "인권위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어느 위원장 못지않은 성과가 데이터로 남았다"며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비호하기도 했다. 8일 열린 전원위원회 회의장에서 인권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현 위원장 면전에서 비판을 가해도 그는 내내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우려했던 인권에 대한 '무지', 현실에 그대로 반영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독단적인 인권위 운영에 반발해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이 임기 중 사퇴하는 등 국가인권위원회가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현병철 위원장이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실제 현 위원장은 취임부터 녹록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현 위원장이 위원장직에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인권사회단체들은 극렬하게 반대했다. "인권과 관련된 연구 결과는 찾을 수 없고, 인권 현장에서 뭘 했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민법 및 노동법 전문가이긴 했으나 인권현장에서의 경험은 전무했다. 현 위원장 스스로도 "인권위와 인권현장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후 논문 중복게재 의혹까지 불거져 도덕성에 흠결을 입었으나, 현 위원장은 정권의 뜻대로 '위원장' 직함을 달았다.

인권위원장은 되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인권에 대한 '무지'가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현 위원장이 임명되기 전만해도 한국이 ICC(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 유엔에서 인권을 논의하는 삼대 축 중 하나) 의장국을 수임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졌었다. 그러나 인권위는 지난해 7월 의장국 후보 출마 자체를 포기했다.

김만흠 전 비상임위원은 "현 위원장이 임명될 무렵, 인권위가 ICC(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의 의장국이 될 차례였는데 현 위원장이 스스로의 자격지심 때문에 포기해 버렸다"며 "그때 이명박 대통령이 한창 국가 브랜드를 강조할 때였는데 스스로 좋은 기회를 차버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의장국이 될 경우 의장으로서 현 위원장이 해야 할 세계 인권에 대한 역할이 막중한데 이를 감당할 능력이 부족해 출마 자체를 하지 못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현 위원장은 취임 직후,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처음에는 폐지 의견을 밝혔다가 이후 이를 뒤집어, "인권에 대한 소신도 없다"며 진보·보수 시민단체 모두로부터 퇴진을 요구 받기도 했다. 지난해 9월에는 "인권위가 행정부에 속한다"고 말해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무자격자'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진 것은 물론이었다.

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 촉구 시민인권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현 위원장의 독단적인 인권위 운영에 항의하며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MB 향한 현 위원장의 충성 서약

사회적으로 인권위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인권사회단체들은 "현 위원장이 임명된 이후 부결된 사건들, 'PD수첩 사건, 이른바 박원순 명예훼손 소송 사건, 민간인 사찰 사건'들은 정권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건들"이라며 "이 사건들에 대한 논의가 부결되었다는 것은 바로 정권의 심기,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일종의 충성 서약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 위원장이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며 용산 참사 관련 인권위 의견 표명을 반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9월 퇴임한 최경숙 전 상임위원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2009년, 용산참사 관련해서 인권위에서 의견을 내기 위해 의안을 제출했고, 과반수이상의 위원들이 의견 표명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위원장이 갑자기 '독재라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회의를 폐회해버렸다. 인권위 위원장으로서 인권 사안에 대한 전문성이나 지식 이전에 조직을 운영하는 일반적인 합리성은 가질 수 있는데, 그런 합리성조차 갖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처럼 정권에 거슬리지 않게 행동하려 애쓴 현 위원장은, "(현 내정자는) 학장 ·학회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하여 조직관리 능력이 뛰어나 인권위 조직을 안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현 위원장을 내정한 청와대의 바람을 실현하는 데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최경숙 전 상임위원은 "없던 조항을 만들어서 정책교육국장을 임명하고, 외부인사 영입이 일반적이었던 사무총장직을 내부 승진으로 채우는 등 위원장이 인사권을 통해 조직을 장악했다"며 "인권이 중요시 되어야 하는 인권기구로서 후퇴해도 보통 후퇴한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현재 인권위의 고위직은 현 위원장의 라인으로 채워지고 있는 상황. 승진을 위해서 혹은 찍히지 않기 위해서 현 위원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최경숙 전 상임위원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위원장과 관련된 기사나 인권위에 호의적이지 않은 기사가 났는데 거기에 인권위 직원의 워딩이 있으면 현 위원장이 '이 말 한 사람 누구냐, 감사해라'고 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인권위 내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걸 말하지 못하는 위축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시끄럽지 않고 조용한 인권위가 만들어진 것이다.

"국정감사만 지나면..." 그의 생각은 이뤄질까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 ⓒ 권우성

이러한 인권위를 감내해내던 상임위원 2명이 "더 이상 두고 보지 못하겠다"며 지난 1일 사퇴의사를 밝힌 것은 '인권위 운영규칙 일부 개정안'의 전원위 상정이 계기가 됐다. 현 위원장의 권한은 크게 확대되고 상임위의 권한은 대폭 축소하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였다.

문경란 상임위원은 "껍데기뿐인 인권위를 물려줄 수 없어 인권위의 상황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사퇴를 결심했다"고 토로했다.

상임위원들의 자진 사퇴 이후 현 위원장을 향한 퇴진 요구는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상황. 그러나 현 위원장은 "두 위원이 왜 사퇴하셨는지 모르겠다"며 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본래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현 위원장의 뻔뻔함에 다시 한 번 놀랐다"며 "이 정부는 뻔뻔함이 인사 자격 기준인가 보다"라고 꼬집었다.

명숙 활동가는 "현 위원장이 8일 오전 간부회의 때 '국정감사만 지나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발언했다고 한다"며 "그의 당당함 뒤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나라당이든 어느 쪽에서든지 간에 모종의 언질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인권위에 대한 국감은 9일 국회에서 열릴 예정. 현 위원장의 확신대로 국감만 넘기면 거취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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