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어물 인간'을 아십니까?

청춘을 불사를 대학생들을 언제까지 메마르게 둘 것인가?

등록 2007.12.07 21:57수정 2007.12.1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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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옥 기자는 충남대학교에 재학중입니다.

'건어물 인간'이란 정서와 일상이 메마른 부류를 일컫는 말이다.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청춘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때가 바로 20대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 대부분은 '건어물 인간'의 생활을 자처하고 있다.

 

'건어물 인간' 관찰기

충남대학교 사회과학대 행정학과 3학년 이모씨는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 작년 말부터 공무원 학원에 등록하면서 공무원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씨 책상 앞에는 생활 계획표가 붙여져 있다. 그녀는 하루의 시작과 끝은 물론이요, 하루의 생활을 계획표대로 지키고 있다.

 

이모씨의 하루 시작은 새벽 6시다. 아침 일찍 학교 정문 근처에 있는 공무원 학원에 가기 위해 서둘러 준비를 한다. 학기가 시작되면서 종합반에서 단과반으로 옮긴 이씨는 일주일 중, 삼 일을 학원에 간다. 월요일은 국어, 화요일은 영어, 수요일은 한국사 수업을 들으면서 공무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가고 있다. 학원에 가지 않는 날엔 자습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로 곧장 들어와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한다. 저녁을 먹고서는 공무원 시험 대비를 위한 문제집을 풀고 있거나, 과제 또는 토익 공부를 한다. 이씨는 "공무원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다들 이러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씨가 유일하게 생활 계획표를 버리는 날은 주말뿐이다. 그러나 외출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도 나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고 쇼핑도 하고 영화관도 가고 싶지만 나가면 피곤해서 돌아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일주일 내내 휴식이 없게 된다"면서 "공무원 준비하랴, 학과 공부하랴, 리포트 쓰랴 그것만으로도 정신없다. 나에게는 스트레스 푸는 것보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주일 동안 이씨의 생활을 관찰한 결과, 특별한 외출이 보이지 않았다. 반복된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그것 자체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녀는 외출 대신 기숙사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였다. 기숙사 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신의 핸드폰에서 음식점 전화번호를 찾고, 쇼핑을 원하면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고, 영화가 보고 싶으면 불법 다운로드를 자행한다.

 

이씨는 스스로 '건어물 인간'임을 인정했다. "공무원 준비를 시작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버리게 된 것 같다. 공무원이 되기 위한 생활이 내 중심인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건어물 인간' 건조법 파헤치기!

 

'건어물' 건조법에는 크게 '천일 건조'와 '인공 건조'의 두 가지가 있다. '천일 건조'는 자연 그대로를 이용, 경비가 들지 않고 '인공 건조'는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건어물 인간의 건조법 역시 위의 방법과 같다.

 

'천일 건조법'은 외적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연스런 개인 성향에 의해 건조된 것을 말한다. 천일 건조법은 크게 귀차니즘족과 나홀로족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귀차니즘족은 만사가 귀찮아 잘 움직이지도 않고 심지어 먹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밖에 나가는 것을 귀찮아하므로 대부분의 문화생활은 집에서 해결한다.

 

영화관 대신 불법 다운로드를 자행할 뿐더러, 외식은 배달 음식으로 쇼핑은 인터넷으로 해결하는 것이 그들의 생활이다. 나홀로족은 말 그대로 혼자 노는 것을, 혹은 혼자 생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을 지칭한다. 그래서 이들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혼자 노는데 익숙하다.

 

이들은 먹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라도 당당히 혼자서 번잡한 음식점에 앉아 밥을 먹고,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혼자서 영화를 즐긴다. 사람들과의 관계와 배려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이들은 현대에 와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인공 건조법'이다. 인공 건조법은 외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대개 취업준비로 인한 결과다. 특히 대학생 3~4학년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취업의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치열한 취업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대학생들은 학원과 도서관으로 몰려든다. 자격증에 가산점을 주는 기업체들이 많아지면서 취업 준비생들은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에서부터 한자, 실내건축기사, 사회조사분석사 등 다양한 자격증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취업에서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영어실력을 키우기에 여념 없다. 갈수록 높아만 가는 취업문, 취업 준비생들은 근심 마를 날 없다. 휴식과 자유 반납은 이들에게 불가결한 일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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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어물 인간 테스트 당신은 어떠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 서윤옥

▲ 건어물 인간 테스트 당신은 어떠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 서윤옥

 

누가 그들을 메마르게 했는가

 

올해 전체 취업률은 76.1%. 지난해보다 조금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정규직 취업률은 56.8%로 지난해보다 오히려 1.6% 하락했다. 특히 4년제 대졸자들의 취업률은 68%로 전문대나 일반 대학원 졸업생보다 낮다고 한다. 게다가 정규직 취업률은 48.7%에 불과했다. 이 말은 대학을 졸업해도 셋 중 하나는 취업을 못하고 취업을 해도 정규직은 열 명 중 다섯 명도 안 된다는 말이 된다.

 

대학의 재수, 삼수, 사수가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좋은 정규직을 얻기 위해 취업 재수, 삼수, 사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재수, 삼수로 부모님께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저학년부터 취업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방학을 취업 공부기간으로 잡고 계획을 잡아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근본 원인은 일자리 창출이 안 되는 것과 아울러 산업계 수요를 넘는 대학졸업자 공급에 있다. 취업준비생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만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실업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은 채 강요만 하는 정부에 불신만 높아가고 있을 뿐이다.

 

언제까지 말릴 작정이야?

 

기업들은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인재를 뽑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틀에 맞춰진 인재만을 찾고 있다. 그 틀에 맞추기 위한 학생들의 힘겨운 싸움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정부 역시 언제까지 아이를 달래듯 '사탕 줄 테니, 그만 뚝해'  말뿐이다. 장기적인 일자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기업들의 투자마인드를 움직이고 청년 실업에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일자리 창출이야 말로 대학생들에게 오아시스다.

 

최근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일자리 창출을 통한 청년실업 해결"라는 답변이 나왔다. 이는 청년층에 취업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삶을 이제는 정부와 기업이 돌아봐 주었으면 좋겠다. 

가장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시기에 이들이 더 멀리 내다 볼 수 있도록 말이다.

2007.12.07 21:57 ⓒ 2007 OhmyNews
#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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