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 19:54최종 업데이트 20.10.0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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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이 자연 지리적으로 하나의 대륙인데도 둘로 분리하는 것은 인문지리적 이유 때문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이동과 교류가 얼마나 수월한가의 문제가 구분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래서 강, 호수, 산맥 등 자연지리적 조건이 다시 변수가 되고 아시아와 유럽도 통상 그렇게 구분된다. 

유럽에서 동쪽으로 이주한 슬라브족의 한 갈래인 러시아인들은 오래전부터 동쪽으로는 우랄산맥까지, 남쪽으로는 카스피해와 캅카스산맥까지 그들의 활동영역을 한계 지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유럽 경계선이다. 


16세기 이후 러시아는 동쪽으로 남쪽으로 끝없는 확장을 꾀했고 그렇게 확보된 동쪽 땅이 우랄산맥 너머 시베리아였다. 17세기 이후 러시아 세력은 동북아시아 끝 태평양까지 이르러 세계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게 됐다. 당시 시베리아는 소수 유목민족들의 터전이었고,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큰 저항 없이 넓은 영토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옥한 땅과 쓸 만한 항구가 부족한 러시아는 남하정책을 꾸준히 시도했고 그런 러시아가 선택할 수 있는 어쩌면 거의 유일한 방법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캅카스 지방으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좁은 캅카스 지방을 나란히 이중으로 막고 있는 두 개의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이 산맥이 대 캅카스 산맥과 소 캅카스 산맥이다.  

캅카스, 신화의 땅에서 분쟁의 땅으로
 

아르메니아 - 아제르바이잔 갈등 ⓒ 연합뉴스

 
진짜 문제는 그 다음. 캅카스산맥을 넘으면 러시아는 튀르크와 페르시아라는 만만치 않은 두 세력과 코앞에서 맞닿게 된다. 그렇게 러시아에 캅카스산맥은 우랄산맥처럼 쉽게 넘을 수 있는 선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베리아를 향한 거칠 것 없는 동진 확장과 달리 러시아의 남진 확장은 캅카스 북쪽에서 멈추게 된다. 

캅카스산맥 너머 북쪽에 러시아가 버티고 있는 이상 튀르크와 페르시아로서도 이 산악 지역은 북방 한계선이 되었고,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캅카스 지역은 거대 세력들의 완충 지대 역할을 해 왔다. 오늘날의 터키와 이란 그리고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이 지역은 그래서 유럽의 끝지점이 되기도, 아시아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캅카스'라는 지명은 오래전 그 지역에 살았던 카우카스인들에서 유래한 것인데, 영어에서 흔히 백인을 의미하는 '코카서스'도 같은 어원이다. 유럽의 동쪽 끝에 있는 영험한 산악 지역이 그들 문화의 출발점이라고 믿었던 유럽인들은 특히 18세기 자신들의 민족주의적 뿌리가 코카서스 지방에서 시작됐다고 확신했다. 결국 서양어 특히 영어에서 코카서스 인종(Caucasian)이 백인을 뜻하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쓰이게 됐다. 물론 이러한 백인의 코카서스 기원설은 과학이라기보다 신화에 가깝다. 

그보다 훨씬 앞서 우리에게 더 익숙한 또 다른 신화도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죄로 제우스 앞에 잡혀간 프로메테우스는 캅카스산에 묶여 매일 이곳에 사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감수해야 했다. 헤라클레스가 구해주기 전까지. 신의 전능에 도전한 인간을 향한 벌이 행해진 곳이 바로 이곳 캅카스 지역인 셈이다. 고대인들은 제아무리 간이 큰들 아무 두려움 없이 캅카스산맥을 넘기는 어려웠을 게다. 캅카스산맥을 넘으려는 이들에게는 발 앞 낭떠러지보다 하늘에서 언제 부리를 겨누고 날아들지 모르는 독수리가 더 무서웠을 것이 틀림없다.

이렇듯 지정학적으로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이 지역은 과거부터 신비로운 신화의 원천이 되기도 했고 백인 문화의 시원(始原)으로 숭배되기도 했다. 

역사와 신화의 땅 캅카스가 분쟁의 땅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세기부터다. 물론 그전에도 주변 세력들의 일방적 지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때부터 주변 세력들의 확장이 노골화되고 그에 따른 충돌이 본격화된 것. 앞서 기술한 주변 3대 세력은 각각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 제국으로 무장해 캅카스 지역을 한 뼘도 남김없이 분할 갈취하게 된다. 

20세기 들어 이 지역의 최종 승자는 러시아가 되는 듯했다. 공산 혁명의 바람에 힘입어 이 지역을 모두 소비에트로 만든 러시아(소련)는 소 캅카스산맥 이남 지역까지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게 된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와 함께 이 지역의 독립운동은 거세지고 대 캅카스산맥 이남 지역에서는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세 나라가 독립을 이루게 된다. 

대 캅카스산맥 이북 지역에서도 독립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의 지배가 상대적으로 더 강했던 이곳 민족들은 공화국의 지위는 얻었지만 사실상 러시아 국가의 지방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의 행정구역 가운데에는 지방과 공화국이 구별되지만 그들의 정치적 권한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방이 바다와 산맥으로 둘러싸인 좁은 지역에 유난히 다양한 소수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캅카스 지역에는 현재도 사용되는 언어가 100개가 넘는다. 이들 민족들은 크게 종잡아도 30여 개가 되는데 더 크게 분류하자면 세 개의 어족으로 묶을 수 있다. 코카서스 계열의 민족들이 구성하고 있는 나라가 조지아, 인도유럽어족이 구성한 나라가 아르메니아 그리고 알타이 계열의 민족이 건설한 나라가 아제르바이잔이다. 

이렇게 보면 왜 서구 세력이 상대적으로 아르메니아와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고 터키가 아제르바이잔과 민족적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만하다. 소련 체제에서도 물론 이들 간에 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팍스 러시아나(Pax Russiana)가 붕괴된 이후 그나마 하나의 국가 틀 안에서 유지되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나고 독립국가 생성을 넘어 영토 분쟁이 본격화 하기 시작했다.

이념이 사라진 공간에 민족이 들어서면서 예기치 못한 비극이 20세기 말부터 지구촌 도처에서 본격화됐다. 동유럽에서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붕괴하면서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갈등은 민족자결의 순수한 원리를 넘어 인종청소라는 반인륜적 비극을 불러오기도 했다. 

아제르바이잔 땅에 사는 아르메니아인
 

국제법적으론 아제르바이잔 영토지만 실효적으론 아르메니아가 지배하는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개전 사흘째인 29일(현지시간) 아르메니아 병사가 아제르바이잔 진영을 향해 포를 발사하고 있다. 2020.9.29 ⓒ 연합뉴스

 
캅카스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간단한 선긋기로 국경을 정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민족 구성과 이들의 지역 분포가 상황을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하게 만들었다. 조지아 내부에도 소수민족들의 독립을 향한 목소리가 결코 작지 않고 실제 독립에 준하는 자치 지역을 구성하고 있는 지역들도 있다. 하지만 현재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벌어지는 분쟁은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현재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부에 있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과거 아제르바이잔의 지배를 받다가 러시아에 복속되는 과정에서 끝없는 유혈 분쟁이 있었는데 소련의 해체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아제르바이잔 영토에 복속됐다. 

하지만 이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은 무장봉기 끝에 사실상(de facto) 독립에 준하는 지위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이들은 아르차흐공화국이라는 국가를 자칭하고 있다. 물론 국제사회는 공식적으로(de jure) 이들의 국가를 승인하지 않고 여전히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인정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 지역의 독립을 공식 인정하기에는 전 세계에 이와 유사한 너무나 많은 자치구들이 있다. 아르메니아 정부는 당연히 이 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고자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것이 현재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있는 분쟁의 배경이다. 요컨대 아르메니아는 사실상 같은 민족의 땅인 이 지역을 자신들의 영토로 합병하고 싶어한다. 아제르바이잔은 자신들의 영토를 점령하고 있는 아르메니아인들과 이 지역을 탐하고 있는 아르메니아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이 배경 속에서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의 주권을 주장하는 아르차흐공화국과 아제르바이잔 간의 충돌이 일어난 것이 지난 9월 27일이다. 아제르바이잔 정부군과 아르차흐공화국은 군사적 대결뿐 아니라 민간인에 대한 공격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양측의 공식적 피해는 집계되지 않고 있으나 최소 2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양측의 주장을 합하면 최대 수천명이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  

앞서 기술했듯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민족과 문화의 뿌리가 전혀 다르다. 게다가 그 뒤에는 각각 이들과 정서적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문명, 그리고 터키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문명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터키는 아제르바이잔을 군사적으로 원조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 

물론 터키의 군사행동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이미 서유럽 국가들과 동지중해 자원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데다 섣불리 개입할 경우 러시아와 이란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다. 국제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프랑스와의 갈등 관계도 신경이 쓰인다. 아르메니아와 프랑코포니(La Francophonie, 불어권 국가들의 연대기구) 정회원국으로 함께 하고 있는 프랑스는 동지중해 갈등을 겪었던 터키와 캅카스에서 또 만나게 되는 상황이다.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으로 남겨놓고 있는 미국은 사실상 이 지역 분쟁에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자신들이 공을 들이고 있는 일대일로 송유관 사업이 하필 이 지역을 지나간다. 입장이 애매할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의 팽창과 소멸, 그 사이에 낀 소수 민족들의 몸부림은 여전히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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