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 11:10최종 업데이트 20.05.0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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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한 달 전 선언했다. 5월 11일 학교가 다시 개학을 하며 봉쇄령을 점진적으로 풀겠다고. 그 날이 마침내 코 앞에 다가왔지만, 역병은 생각만큼 삶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과연 이것이 실천 가능한 약속인지 모두가 의심하는 가운데, 정부는 예정대로 11일부터 "점진적이고 제한적인" 재개방을 확정했다. 7일 기준 여전히 629명의 신규확진자가 있고, 178명이 사망했지만, 모든 그래프는 이제 완연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정부가 이 대범한 결정을 내린 근거다.

적색과 녹색으로 나뉜 프랑스
 

적색과 녹색지역으로 양분된 프랑스 프랑스는 5월 11일부터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적색지역과 상대적으로 안전한 녹색지역으로 나누어, 점진적, 단계적으로 재개방을 시작한다. 적색지역은 프랑스 인구의 40%인 2720만명이 살고 있는 인구 밀집 지역이다. ⓒ 프랑스 정부 제공

 
재개방이 제2의 감염자 폭발 계기가 되지 않도록, 정부는 감염의 정도에 따라 프랑스를 녹색과 적색으로 나누고 각기 다른 재개방 원칙을 적용한다. 감염자들 대다수가 몰려 있는 4개 지역, 일드프랑스(파리, 수도권)와 북동쪽에 위치한 3개 지역(오트드프랑스, 부르고뉴 프랑쉬꽁테, 그랑테스트)이 적색, 나머지가 녹색지역이다.

봉쇄령 때엔 1km로 제한되어 있던 이동의 자유가 오는 11일부터 반경 100km 이하로 확대된다. 이는 가족 또는 직업 관련의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 그 사실을 명기한 이동증을 소지해야만 다닐 수 있는 거리를 의미한다. 여전히 10인 이상의 회합은 금지되는데 여기엔 종교시설, 결혼, 가족잔치 등도 포함된다. 장례식만은 20명 이하의 참석자(가족)를 초청하는 선에서 가능하며, 공동묘지도 개방된다.


일드프랑스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대형 쇼핑센터를 포함한 다수의 상업시설이 문을 열게 된다. 기존에 문을 열 수 있었던 필수품 판매시설·공공시설 외에 카센터, 컴퓨터 매장, 공구점, 담배가게, 세탁소, 미장원, 서점 등도 영업을 재개한다.

레스토랑·까페 등은 여전히 포장판매나 배달 등의 영업형태 이외에 문을 열 수 없다. 호텔은 룸서비스를 통해서만 손님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 사람들이 밀접한 공간을 점유해야 하는 공연장, 영화관 등 문화시설들은 원칙적으로 재개방에서 제외된다. 유럽 내 국경은 적어도 6월 15일까지는 여전히 닫혀 있을 예정이다. 대중교통 내에서의 마스크 착용은 필수가 된다. 이를 어길 시엔 135유로(약 18만 원)의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다.

유치원부터 점진적 개학

지난 3월 16일부터 일제히 잠정 폐쇄된 학교들은 4월초에 있던 2주간의 부활절 방학을 제외하면, 5월 11일까지 약 1개월 2주간 문을 닫아왔다. 그 동안은 인터넷을 통한 화상 수업, 이메일을 통한 과제 제출 등을 통해 수업이 진행돼 왔다.

집에 있는 중학생 딸의 경우를 보면, 인터넷 화상을 통해 토론 수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선생님이 지정해준 책들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논술형으로 답하는 과제를 제출한다.

예체능 수업 또한 실내나 집 앞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운동에 대한 예시를 교사가 전달하기도 하고, WHO가 알리는 코로나19 시기에 지킬 수 있는 건강수칙 등을 알려 주고 이에 대한 필기시험(체육)을 치르게 한다. 감금과 해방을 주제로 하는 사진 한 컷씩 찍어서 보내기(미술), 교사가 정해준 블루즈, 재즈 음악을 듣고 청음 시험(음악)을 보는 등 다채로운 방법으로 수업들이 진행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감금 중학생 아이가 봉쇄령이 내려진 기간에 미술숙제로 찍은 <감금>을 주제로 한 사진 ⓒ Kalli Tromeur-Mok

 
여전히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다수의 의학 전문가들이 개학 시기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내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개학을 결단하게 된 것에 대해 마크롱은 인터넷을 통한 수업이 계속 이어질 경우 학생들 간의 학습 불평등이 커진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자녀를 둔 부모들의 경제활동 복귀를 위해 아이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무책임한 결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그동안 봉쇄 방침에 따라, 영업을 중단해야 했던 모든 자영업자들에게 생활지원금 1500유로(약200만원)을 3월, 4월 2개월간 지급해 왔고, 마찬가지 이유로 일시적 실업에 처한 노동자들에겐 임금의 84%를 지급해 왔다. 봉쇄령 이후에도 약 50%의 노동자들은 재택근무 등을 통해 평상시와 다름없는 일을 해왔지만, 38% 노동자들은 부분적 나머지는 완전한 실업에 처했고, 이들의 생계는 정부가 부담해 왔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서민임대주택 거주자들의 집세를 감면해 주는 정책을 실행하기도 했다.

봉쇄령이 지속될 경우 정부가 짊어져야 하는 재정적 부담을 덜기 위해 경제를 너무 성급히 재가동시킨다는 비난이 거세지자, 정부는 "부모의 자발적 판단" 따른 결정에 맡긴다는 카드를 내놓았다. 원한다면 개학을 한 후에도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 있어도 좋다는 허가인 셈이다.

프랑스의 등교는 나이 어린 순으로 진행된다. 탁아소(0-2세), 유치원과(3-5세) 초등학교(6-11세)의 80%는 5월 12일에 다시 문을 연다. 정부는 학교의 개학 여부를 각 지역의 시장들의 재량에 맡겼고, 20% 가량의 시장(감염자가 많은 지역)은 이를 거부했다. 정부는 탁아소는 10명 이하,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같은 공간 안에 15명 이하의 아이들만 수용하도록 하며 그밖에 사회적 거리 두기, 칸막이 설치, 교실 방역 등 개학하는 학교들이 준수해야 할 조건들을 제시했다.

중학생은 5월 18일부터 녹색지역의 경우에 한하여 1·2학년이 등교를 시작하고, 3·4학년은 5월 말에 등교한다. 적색지역의 중학생과 전체 고교생에 대해서는 5월 말에 가서 6월 개학이 가능할지 판단할 예정이다. 대학생은 9월 개학을 일찌감치 결정했다.

어린 나이부터 등교 시작을 하도록 한 것은 어릴수록 감염의 위험이 낮게 나타나는 코로나19의 특성에 따른 판단이라고 정부는 밝힌다. 6월중 치르도록 되어 있는 바칼로레아 시험과 중학생들의 졸업시험도 일제히 취소되었다. 대학입시에서는 2학기(3학기제)까지의 성적만을 가지고 평가하기로 했다.

미뤄진 예술계의 봄, 덜어진 예술가들의 수심

5월 11일 다시 상업활동을 재개하는 대부분의 상업시설들과 달리 소규모 박물관, 미술관, 서점을 제외한 모든 공간은 여전히 닫혀 있게 된다. 각별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문화계를 위해 정부는 지난 3월에 내놓은 약 300억 원 규모의 문화계 지원책(갤러리, 공연장 등 문화공간 지원)에 이어 5월 6일 2차 대책을 내놓았다.

공연·영화·음악·방송계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나 스태프들은 그들을 위한 특수한 실업급여제(앵떼미르땅)에 따른 실업급여를 봉쇄기간 중에 수여하고 있었으나, 문제는 다음 해다.
 
앵떼미르땅이란?
직업 특성상 실업과 취업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편차가 큰 수입구조를 갖고 있는 해당 영역의 예술가와 스태프들을 위해 고안된 실업급여 제도로, 매년 507시간 이상을 해당 영역에서 일하면 각자의 급여 수준에 따라 정해진 실업급여를 다음해 수입이 발생하지 않거나 적게 발생하는 기간에 받을 수 있다.

연말까지 507시간의 예술 관련 노동시간을 채워야 앵떼르미땅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으며, 비슷한 수준의 실업급여를 내년에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문화계의 긴 방학은 7, 8월에 집중되어 있는 각종 축제들(아비뇽페스티발을 비롯한)이 전면 취소된 마당에 9월에 가서나 풀릴 전망이었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올 12월 대신 내년 8월까지로 507시간을 채워야 하는 기간을 연장해 주기로 했다. 그 때까지 예술인들과 해당 분야의 스태프들은 지난해 기준에 근거하여 계속 실업급여(평균 2322유로, 약 300만 원)를 수혜할 수 있게 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예술계 대표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예술인력들이 이 특수하고 불안정한 시기에 학교에 와서 예술을 통한 혁명적 수업들을 전개해줄 것을 청하기도 했다. 등교가 지역별로 불균등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이 상항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경계를 무너뜨리는 창의적인 교육의 실험장으로 활용해 달라는 주문이다. 또한 촬영이 중단된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서는 임시 보상 기금을 창설하여, 케이스별로 지원하기로 했고, 일제히 취소되어 버린 7~8월의 연극, 음악, 무용 페스티발 조직위들에 대해서도 피해를 파악하여 지원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프랑스인 65% "정부 불신"... 시험대에 서는 마크롱
 

지난 4월 뮐루즈 야전병원에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연합뉴스/EPA

지난 7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의 65%는 재개방을 성급히 준비하는 정부를 믿지 못한다고 밝혔다. 체감지수로는 그 이상이다. SNS에서도, 실제 삶에서도, 마크롱 정부를 지지하거나 칭찬하는 목소리는 코로나19가 프랑스에 상륙한 이후 접하기 힘들다. 이미 30건 이상의 소송이 마크롱 정부를 향해 제기되어 있고, SNS 상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마크롱을 비롯한 정부관료들을 단두대로 끌고가는 모습을 담은 만평이 올라온다. 

분노한 시민들이 당장 반정부 시위부터 할 것이 두려운지, 정부는 5천명 이상의 사람이 모이는 모든 회합을 금지시켰고, 7월 중순까지 비상시국 상황을 연장시켰다. 전쟁 중엔 장수를 교체하지 않는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무책임과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여론이다. 이제 간신히 역병이 잦아드는가 싶은 시점, 5월 11일 시작될 실험으로 프랑스는 다시 한 번 위험한 시험대 위에 서게 된다.
 
코로나로 추진력 얻은 '녹색 도시' 파리

파리(200만)와 파리 외곽도시들(1000만)을 포함하여 하나의 권역을 구성하고 있는 일드프랑스는 프랑스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곳이며, 이동 인구나 경제활동인구도 가장 많은 곳이어서 재개방 시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파리시장 이달고의 선택은 자전거 도시 파리다. 지난 재임기간 동안에도 녹색 파리를 최우선 시정 과제로 두어 왔던 이달고 시장은 파리시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는 유서깊은 거리 리볼리가에 승용차 이동을 제한하고, 자전거 길을 마련하는데 이어 파리시내 30개 거리에 추가로 자전거 길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이는 타인과의 접촉이 없는 1인 교통수단인 동시에, 장기적으로도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파리는 지난 2개월에 걸친 이동통제 기간 동안 대기 오염도가 크게 줄어들고, 세느강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등 맑고 청량한 도시의 모습을 오랜만에 되찾을 수 있었다.

'녹색 도시 파리'를 모토로 삼는 이달고 시장으로선 이러한 파리의 모습을 코로나 시대 이후에도 지켜가는 것이 관건이다. 시민들의 자전거 사용을 극대화 하기 위해 오래된 자전거 수리비용을 지원하기도 하고, 지역별로 자전거 주차시설을 추가로 설치 하기도 한다. 또한 대중교통에 사람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에는, 출퇴근 이외의 목적으로는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게 할 방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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