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26 13:36최종 업데이트 19.12.2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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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충징시 거리. ⓒ 김기동


한국인이 중국인을 만났을 때, 몇 번 만난 사이도 아닌데 심지어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중국인이 한국인을 '친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한국인은 중국인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면 중국인이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고, 중국인이 동년배면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친구라고 부른다며 자신을 100% 신뢰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중국에서 '친구'라는 호칭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친구'라는 의미와 전혀 다르다.

한국 사전에서 친구는 "가깝게 오래 사귄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나이가 같은 사람만 서로 친구라고 한다. 자신보다 나이가 1살이라도 많으면 형·누나, 자신보다 나이가 1살이라도 적으면 남동생·여동생이라고 부른다. 또 서로 친구라고 호칭하는 경우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사이에만 가능하다. 그래서 나이가 같더라도 오랫동안 깊게 사귀지 않았으면 친구라고 호칭하지 않는다.


반면에 중국 사전에서 친구는 "나이, 성별, 지역, 종족, 사회 직위에 관계없이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친구이기 때문에 중국인이 친구를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도 여러 가지다. 먼저 새로 알게 된 사람은 '새 친구(新朋友)'라고 부른다. 보통 자신의 나이를 기준으로 위, 아래 10년 차이까지는 그냥 친구라고 부른다. 자신의 나이보다 10년 이상 아래면 '어린 친구(年輕朋友)'라 하고 10년 이상 위면 '늙은 친구(年長朋友)'라고 한다.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통역하는 사람이 이런 용어의 개념 차이를 모르고, 중국어 '친구(펑여우)'를 한국어 '친구'로 통역하면, 한국인이 오해할 소지가 크다.

왜 이런 용어의 차이가 생겼을까?

삼강오륜과 삼강오상

한국인에게 유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삼강오륜'이라고 대답한다. '삼강'은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부부의 관계를 정의하고, '오륜'은 이에 덧붙여 노소(나이가 많고 적음)와 친구(나이가 같음)의 관계를 정의한다.

중국인은 '삼강오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 사전에는 '삼강오륜'이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중국인은 '삼강오상(三綱五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삼강'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삼강'과 의미가 같고, '오상'은 '인의예지신'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나이에 따라 '노소'와 '친구'의 차이를 구분하는 '삼강오륜'이라는 용어가 없다. 그래서 중국인은 나이 차이를 엄격히 구분하여 형, 누나, 친구, 남동생, 여동생으로 호칭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럼 유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한국인은 '삼강오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중국인은 '삼강오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이유는 뭘까. 

중국에서는 공자 유학 이후로 발전한 유학 사상을 '신유학'이라고 부른다. 기원전 136년 한나라 시대 동중서라는 사람이 공자의 유학에 공자의 유학 사상에는 없는 '천인감응'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덧붙인다. 이 사상이 공자의 유학 사상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신유학이라 칭한다. 그 후부터 새로 만들어지는 유학 이론은 모두 신유학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중국 신유학에는 공자가 말하지 않은 내용도 들어있고 심지어는 공자의 유학 사상과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도 있다.

한국에는 신라 시대 유학이 처음 전래했지만, 유학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건 조선 시대다. 조선 시대(14세기) 한국에 전래한 유학은 남송 시대 주희가 만든 신유학 성리학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성리학을 유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중국에서는 성리학을 원래 유학에서 발전·개량·변형된 신유학 사상으로 여긴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이 유학이라고 생각하는 성리학은 중국에서는 신유학으로 남송 시대 잠깐 100년 동안 유행한 유학 이론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중국 유학을 받아들이면서 주희의 성리학 내용만을 유학이라고 생각하고, 성리학 이전의 유학 사상과 성리학 이후에 중국에서 새로 만들어진 유학 사상에 대해서는 연구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송나라 시대 주희의 유학 해석서 ‘사서집주’ ⓒ 바이두

 
특히 한국에서는 1400년부터 1900년까지 공무원 시험(과거) 과목 교재로 주희가 쓴 유학 해석서 <사서집주>를 정했기 때문에, 한국인은 주희의 성리학이 곧 유학이고, 그 이외의 유학 해석 책에는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사서집주> 내용과 다른 유학 해석 방법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다 

'삼강오륜'에서 '삼강'은 공자 말씀이고 '오륜'은 맹자 말씀이다. 맹자는 기원전 300년대 사람이지만, 중국에서 유학자로 널리 알려진 것은 중국 송나라 시대 '주희'(서기 1130년~1200년)가 그가 만든 성리학에서 맹자를 소개하면서부터이다.

그래서 성리학을 '신유학'으로 남송 시대 잠깐 100년 동안 유행한 유학 이론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중국에서는 '삼강오륜'에서 '삼강'이라는 공자의 말씀을 잘 알지만, '오륜'이라는 맹자의 말씀은 잘 모른다.

'지천명'도 다르게 해석 
 

중국 어린이들이 공자 사당을 방문하여 공자를 참배하는 모습 ⓒ 김기동

 
'나이 오십이면 지천명'(五十而知天命)은 유교를 만든 공자 말씀이다. 그런데 <논어>에 나오는 지천명에 대한 해석은 한국과 중국에서 전혀 다르다. 

한국 사전에서는 지천명을 "사람이 나이가 오십이 되면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하늘의 명령이나 원리를 안다"라고 해석한다. 중국 사전에서는 "사람이 나이가 오십이 된 후에야,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라고 해석한다.

사업이나 업무로 중국인과 접촉하는 한국인은 한국과 중국 모두 유교 문화권으로 사고방식과 행위 양식이 비슷할 거로 예측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인은 직접 중국인과 접촉하여 그들을 겪고 나서,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 양식이 한국인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그러면서 중국인의 생활 모습이 전혀 유교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중국인이 유교를 부정하는 문화혁명(1966~1976) 10년을 겪으면서 완전히 유교적인 생활 방식을 잃어버렸다고 판단하기 쉽다.

2500년 전 중국에서 공자의 유학 사상이 시작되었다. 긴 세월 동안 중국에서 유학을 부정하고 없애려고 시도한 시대는 많았다. 진나라 시대, 한나라 초기, 당나라 시대, 원나라 시대, 중국 국민당 시대, 중국 공산당 시대 모두 유학 사상을 없애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방식의 근저에 있는 유학 사상을 몰아내지 못했다.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김기동의 차이나 클래스' 연재를 마칩니다. 1년여 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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