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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22 14:03 수정 2019.08.22 14:03

성남에서 시작된 청년기본소득이 경기도 전역으로 확대 시행 중이다. 사진은 광명시 기본소득 홍보 포스터. ⓒ 경기도


기본소득은 누구에게나 일정 소득을 주자는 아주 간단한 원리 위에 작동되는 정책이다. '음의 소득세'라는 이름으로 닉슨 시절,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제안에 의해서 진짜로 시행될 뻔했다.

그 시절 논의의 영향으로 알래스카주에서 실제로 실시한다. 그 지역의 자원을 팔아 남은 돈으로 세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구에게나 일정액의 소득을 주어야 할까?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가 아닐 수 없다.
 
그 후에 오랫동안 잠자던 기본소득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역설적으로 밀턴 프리드먼의 극단적인 시장주의에 의한 신자유주의의 후폭풍이다. 경제적 격차가 사회적 격차를 발생시키면서 공동체가 붕괴하고 다음 세대가 경제적 약자가 되는 현상이 선진국 전반에 걸쳐서 펼쳐졌다. 그리고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면서 AI가 실업의 공포를 만들었다.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 방안이 국민투표에 올라가기도 했다.
 
기본소득은 출발부터 보수, 그것도 극단적인 자유 시장주의자 쪽에서 먼저 나온 논의다. 사회주의 시절, 혁명을 논의하던 좌파 쪽에서 기본소득 같은 것을 얘기하면 '개량주의자'라고 무시당했을 얘기다. 시장 근본주의 시각에서 봐도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체제 안정적 장치다. 지금도 유럽에서의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은 좌우로 나뉘지는 않는다. 좌파에서도 반대가 많다.

기본소득을 위해서 기존에 있던 복지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할텐데, 이게 오히려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잘 작동하고 있는 복지 장치들을 기본소득을 위해서 축소하거나 폐지할 것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이래저래 모든 국민에게 일정 소득을 주자는 기본소득 논의는 여전히 국가 차원에서의 대규모 시행을 놓고 찬반이 끊이지 않는 주제다.

극단적 자유시장주의가 낳은 산물, 기본소득
 
역설적이지만 한국에서 기본소득과 가장 유사한 논의가 전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12년 대선, 박근혜 진영이었다. 노인수당을 전격적으로 도입하자는 공약이 나왔고, 재산 유무 등 수당의 전제 조건 없이 나이 요건만 해당하면 모두에게 일정 금액을 주겠다는 논의가 진전되었다. 물론 실제 이행 단계에서는 이게 기본소득의 전단계라는 것을 인지하였는지, 재산과 연동시키는 방안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런 기본소득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청년수당이다. 서울시 방식과 성남시 방식이 약간 차이가 나는데, 성남시 방식은 지역화폐와 연계해서 기본소득 정책의 또 다른 축을 만들어내었다. 이 방식이 커져서 경기도의 청년수당이 되었다.

결국 청년수당은 청년 정책과 동시에 기본소득의 전단계라는 두 가지 함의를 가지고 전개되는 중이다. 박근혜 정부는 서울시의 청년수당에 대해서 격렬하게 반응하였는데, 이 시점 정도에 한국의 보수들이 기본소득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을 정리한 것 같다.
 
'기본소득 전단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청년수당은 이후에 분야별로 다양한 기본소득 논의를 촉발시켰다. 금액으로는 크게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중요한 논의는 농업 쪽에서 나왔다. 지자체에서 '농민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농민들에게 주는 지원금을 실험적으로 진행하는 중이다.

향후 어떤 의미로든 직불제 특히 쌀직불제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다들 동의하는 일이다. 특히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쉬는 데에 대해서 보조금을 주는 것에 대해서도 이래저래 지적이 많다.

결국 직불제를 세원으로 해서 농민들에 대한 지원방식을 전환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미 EU나 일본에서는 청년농업직불금 등의 명분으로, 청년 농민들에게 지원을 주고 있다. 이름이야 뭐든, 청년들이 농를 짓는다는 이유만으로 규모나 재산과 상관 없이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방안은 점차 확산될 것이다. 한국 농업만 그 흐름에서 빠질 수는 없다.

논의의 진화 : 노인수당, 청년수당, 농민수당...
 

2017년 8월 정부의 청년수당 직권취소에 항의하는 뜻으로 서울시가 서울도서관 외벽에 내걸었던 대형 현수막. ⓒ 김경년

  
지난 지방선거에서 광주 지역에서 문화예술인 기본소득이 공약으로 제시된 적이 있다. 일부 한류나 상업적으로 성공한 문화 분야 일부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문화인과 체육인의 삶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문화경제로의 전환을 위해서라도 이 사람들에게 좀 더 실효성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여기에 기본소득 논의가 얹혔다. 현실로 나오는 것은 시간 문제다.
 
전면적인 형태의 기본소득을 국가 차원에서 논의하기에는 아직은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분야별로 진행되는 기본소득 논의와 도입을 막을 힘도 없다. 특수 분야에서 먼저 시행하는 형태가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에 시행된 아동수당까지 더 한다면 특수 분야, 특수 영역에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소득을 지급한다는 것에 대한 반감도 많이 줄어든 상태다. 아동수당에서 생겨난 기술적 논의는,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해서 재산과 소득을 점검하는 행정적 비용이 그걸로 줄이는 세금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본다면, 우리는 '개문발차 기본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개별적 도입이 지금 활발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전면적 기본소득은 아직 멀었지만, 그렇다고 분야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나 도입마저 지지부진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이 기본소득의 최전선일 수도 있다.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분야별 지원책이 지금 정리정돈 되는 중 아닌가?

전면 도입 가능성은 요원하지만...
 
소득과 관련되어 지금까지 논의된 제도로는 이미 상당 부분 도입된 생활임금이 있고, 아직 전면화되지 않은 건설노동자에 대한 적정임금(prevailing wage)이 있다. 최소한 관급공사에 대해서만이라도 건설노동자에 대해서 제대로 된 임금체계를 시행하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논의가 되어 있는데, 기본소득을 이 연장에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는 아직 체계화된 논의를 하지 않았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산별적인 기본소득 논의를 '보편성'을 저해하는 불순한 시도 정도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개문발차 기본소득'이라는 눈으로 본다면 그래도 조각조각, 분야별로 기본소득에 유사한 형태의 제도들이 많아지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 싶다. 분야별로 기본소득형 수당들이 늘어난다면 전면적 시행시 발생하는 사회적 불안도 적지만, 무엇보다도 선택지 자체를 넓히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학자들이나 언론에서 뭐라고 하든, 총선과 같은 선거 국면이 새로운 제도가 제시되고 도입되는 경연장이기도 하다. 2020년 총선에서 전면적이고 보편적인 기본소득 논의가 공약으로 나올 가능성은 아직은 없다. 그렇지만 청년수당이나 농민 기본소득이 좀 더 확대되고 다양화된 방식으로 제시될 가능성은 아주 높다. 문화인 기본소득 같은 경우는 정부안으로 전격적으로 제시될 가능성도 있다.
 
전업주부들의 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게 젠더 경제학에서는 오랫동안 중요한 이슈였다.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 그리고 그들에게 보상할 것인가, 이건 어려운 질문이다. 기본소득이라는 관점에서는 그들에게도 소득이 지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문제 역시 앞으로 우리가 대답해야 할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아동에게도 수당을 주는데, 그들을 직접 돌보는 부모에게는 왜 수당을 줄 수 없는가? 그걸 그냥 주는 게 출산율 문제에 도움이 되는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가? 그런 질문들이 다음 단계의 질문 아니겠나 싶다.
 
내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

내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는, 이 제도가 실업에 의한 국민적 공포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영영 버림받을 수 있다는 고립감이 청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준다. 그래도 우리의 경제 공동체가 개인들에게 행복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아주 버리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최소한의 연대 의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사회학자 엄기호가 한국 사회에 대해서 했던 말이다.

"아무도 버리지 않는다", 이게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 사회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안전망을 잘 만든 나라가 기술혁신의 속도도 더 높았다.

"내 자식만..", 이런 황당한 사회의 다음 단계를 우리는 상상하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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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제, 환경-자원 문제에 대한 전문가. 경제학 전공. 기후변화협약 UNFCCC 기술이전 전문가그룹 아시아지역 대표 이사 현대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역임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창립회원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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