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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06 11:53 수정 2019.08.06 11:53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 글쓴이 박정훈님은 배달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입니다.[편집자말]
 

배달대행 라이더들은 폭염·폭우에 대한 '안전판'이 전무하다. ⓒ 라이더유니온


배달을 위해 초인종을 누르면 손님이 문을 연다. 열리는 문과 함께 나오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흐르는 이마의 땀을 살짝 닦아준다. 감질나는 찰나의 바람마저 소중한 요즘이다. 고급아파트와 상가는 입구의 현관문만 열어도 차가운 기운으로 반겨주지만, 어떤 빌라는 입구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숨이 턱턱 막힌다. 배달해야 할 주소지에 엘리베이터 없는 4층과 5층, 옥탑방이라도 뜨면 두려움이 앞선다.  옥탑방에 도착하면 바닥의 초록색 페인트 위로 아지랑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피어오르는데, 아지랑이가 흔들리는 건지 정신이 아득해지는 건지 헛갈린다. 

1만 원 정도의 돈만 지불한다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제공되는 배달과는 달리, 폭염과 폭우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의 처지는 평등하지 않다. 도시 위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불평등의 관찰자가 바로 라이더다. 단순한 관찰자는 아니다. 본인들부터가 폭염과 폭우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당사자다.
 
폭염 대응, 누구에게 책임 물어야 하나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에서는 올여름 오토바이 위에서 잰 온도를 발표하고 있다. 강원도 원주에서는 48.9도를 기록했고, 서울은 43도를 기록했다. 고용노동부가 작업중지를 권고한 38도를 훌쩍 뛰어넘는 온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날씨가 더운 날, 추운 날, 비 오는 날, 미세먼지가 심한 날 배달주문은 폭발한다. 또 지난 초복과 중복에는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등에서 쿠폰을 뿌리는 바람에 라이더들의 핸드폰에는 콜을 알리는 알람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주문 폭주로 요기요 서버가 다운되기까지 했다. 새벽까지 골목골목을 누비던 라이더들도 '다운'됐다. 최근 머리가 어지럽다고 호소하는 라이더들이 늘어나고 있고, 더위를 먹어서 병원을 가는 라이더들도 있다. 돈 벌어서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런 규제가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위험한 일들이다.

내가 주간에 일하는 맥도날드에서는 주문이 너무 많거나, 폭우가 내리면 배달구역을 제한한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매장에서 대기할 수 있고 깨끗하고 시원한 얼음물과 아이스스카프 등을 제공받는다. 4시간 일하면 30분의 휴게시간을 부여해야 하고, 약속된 시간보다 많이 일하거나, 밤 10시 이후에 일을 하게 되면 연장근로수당과 야간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사업주는 늦게까지 혹은 무리하게 일을 시키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장치 하나하나가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기업이 이런 조치들을 제대로 취하지 않아 노동자가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사측을 상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문제는 내가 맥도날드에서 퇴근하고 일하는 '배달대행'이다. 라이더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아무런 법적 장치가 없다. 일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 하지만 폭염을 피하려다가 생계의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라이더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과연 고용노동부가 지휘·감독할 수 있는지, 한다면 플랫폼회사가 해야 하는지, 조그만 배달대행업체가 해야 하는지, 음식 가게가 해야 하는지, 소비자가 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

폭염을 피해 쉴 수 있는 공간조차 없다. 지난해 나는 폭염수당과 너무 더운 날씨에는 배달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1인 시위를 했지만, 맥도날드 소속이 아닌 라이더들에게는 누가 폭염수당을 지불해야 할지, 작업 중지를 위한 앱차단이 가능하기나 할지 의문이다. 실제 지난달 라이더유니온은 동네의 조그만 배달대행업체와 폭염수당을 지급하도록 단체교섭을 맺었지만, 이 추가수당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음식가게의 동의, 나아가 손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박정훈씨는 지난해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 차상우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몇몇 플랫폼업체에서 폭염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배민라이더스 소속 라이더들은 500원의 폭염수당에 더해 우천시에는 우천할증을 받는다. 우버이츠도 악천후에 추가 할증을 지급한다. 여력이 있는 플랫폼업체들,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가진 자들이 먼저 나서면 된다. 충분한 노동의 대가는 라이더들이 살인적인 날씨에 무리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

월 60만 원에 달하는 오토바이 대여비와 하루 1만 원 정도의 기름값, 오토바이 관리비 등을 생각하면, 1시간에 5건 정도는 해야 최저임금과 비슷한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배달료를 보장하고, 라이더들이 무리하게 일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호법안들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나는 이것을 '안전배달료'라 부르고 싶다.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자
 
사실 기후위기를 말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불편한 마음이 든다. 환경을 파괴하는 대표적인 산업이 바로 배달산업이기 때문이다. 오토바이가 내뿜는 매연은 오히려 약과다. 포장에 들어가는 비닐과 플라스틱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폭염과 폭우에 가끔은 지구의 복수일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라이더들만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편하게 음식을 먹고 싶은 소비자들의 욕망과 배달을 통해 이윤을 얻는 음식가게, 이를 거대한 산업으로 만든 플랫폼과 대기업까지 모두의 책임이다. 문제는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를 옥외노동자들과 쪽방에 사는 취약계층, 그리고 지구가 온몸으로 진다는 것이다. 이제는 이 책임을 나누어져야 하지 않을까? 안전배달료가 도입되기 위해서도, 환경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가 도입되기 위해서도, 모두가 조금씩 손해를 감수하고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지난 7월 25일 라이더유니온이 주최한 '폭염에 폭우까지 라이더가 위험하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은영 녹색당 미세먼지 기후변화 대책위원장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6월말에 국회에서 기후변화 토론회를 하는데,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 반팔차림의 일반인들에겐 너무 춥고 슈트를 입은 의원들에겐 적합한 온도였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여름을 몸에 새기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폐지줍는 노인들의 검게 탄 손과, 선명한 러닝셔츠 자국은 우리가 고스란히 담은 올해의 더위를 보여준다. 전 국민에게 문자를 보내는, 쉽지만 효과 없는 일을 하는 것보다는 이 몸속 깊숙이 새겨진 이 불평등을 없애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배려내가 음식을 픽업하러 가는 강서구의 한 음식가게에서 라이더들이 가게안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의자를 마련해주었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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