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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05 10:25수정 2019.06.05 11:33
손바닥만한 밴댕이를 손질한 회가 꽃처럼 피었다. 밴댕이 회를 깻잎에 싸서 초장대신 막장을 얹어 먹었다. 녹진한 밴댕이 맛을 막장과 깻잎의 향이 잡아 줄 듯 싶었다. 생각한대로 셋의 조합은 잘 맞았다.

손바닥만한 밴댕이를 손질한 회가 꽃처럼 피었다. 밴댕이 회를 깻잎에 싸서 초장대신 막장을 얹어 먹었다. 녹진한 밴댕이 맛을 막장과 깻잎의 향이 잡아 줄 듯 싶었다. 생각한대로 셋의 조합은 잘 맞았다. ⓒ 김진영


6월, 해수욕장 개장을 알리는 소식이 들린다. 바깥 온도는 5월부터 이미 30도를 넘었다. 봄이다 싶었는데 이미 여름이다. 육지는 여름이지만, 바다는 아직 봄이다. 공기보다 온도가 서서히 오르락내리락 하는 물의 특성 탓에 바다는 여태 봄이다.

만리포 해수욕장이 개장해도 바다 수온은 18도. 차가움을 참으며 발 담그고 물장구치기 좋아도 아직 해수욕은 어렵다. 사람에게는 차가운 수온이지만 밴댕이에게는 최적 온도다. 밴댕이는 지역 사투리이고, 반지가 맞다. 

흔히 국물 낼 때 쓰는 디포리가 원래는 밴댕이다. 많은 사람이 반지라는 이름 대신 밴댕이를 사용하면서 원조 밴댕이는 디포리라고 불린다. 디포리조차도 디(뒤)가 포(퍼)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군산 지역에서만 유일하게 원래 이름대로 반지라고 부르고 있다. 

겨우내 깊은 수심에 머물던 밴댕이가 5월이 되면 기수역(汽水域)으로 몰린다. 기수역은 큰 하천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이다. 풍부한 플랑크톤을 먹으려는 작은 물고기와 이를 쫓는 큰 물고기가 공존하는 건강한 생태계다. 

우리나라를 흐르는 큰 강 대부분의 끄트머리에는 하구언이 있다.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강의 끝을 막았다. 낙동강, 금강, 영산강은 하구언을 설치했지만, 한강은 북한과 접경이라 막을 수가 없었다. 한강과 끝에서 만나는 임진강도 마찬가지다.

'밴댕이 마을' 간판이 걸려 있는 후포항
 
제철 맞은 밴댕이를 맛보러 경기도 김포 대명항에 갔다. 김포에서 강화도로 넘어가는 초지대교 초입에 있는 대명항. 김장철이 되면 새우젓 사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 가운데 하나다.

제철 맞은 밴댕이를 맛보러 경기도 김포 대명항에 갔다. 김포에서 강화도로 넘어가는 초지대교 초입에 있는 대명항. 김장철이 되면 새우젓 사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 가운데 하나다. ⓒ 김진영

 
대명항 어판장 곳곳에 막 잡아 온 밴댕이를 부리고 있었다. 대명항 밴댕이도 강화도 인근 해역에서 잡는다. 잡은 밴댕이는 배보다는 강화도 포구에 기다리고 있는 차를 이용해 어판장으로 보낸다. 배는 시간도 오래 걸리거니와 기름값이 많이 든다.

대명항 어판장 곳곳에 막 잡아 온 밴댕이를 부리고 있었다. 대명항 밴댕이도 강화도 인근 해역에서 잡는다. 잡은 밴댕이는 배보다는 강화도 포구에 기다리고 있는 차를 이용해 어판장으로 보낸다. 배는 시간도 오래 걸리거니와 기름값이 많이 든다. ⓒ 김진영


한강, 임진강이 서해와 만나는 지점에 기수역이 있고, 강화도가 있다. 그래서 넓은 갯벌과 풍부한 먹이가 있는 강화도 해역으로 밴댕이가 몰린다. 5월이 되면 강화도 주변으로 인천이나 김포 대명항에서 출항한 배들까지 밴댕이를 잡으러 온다.

제철 맞은 밴댕이를 맛보러 경기도 김포 대명항과 인천시 강화군 후포항(선수포구)으로 갔다. 김포에서 강화도로 넘어가는 초지대교 초입에 있는 대명항. 김장철이 되면 새우젓 사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 가운데 하나다. 

대명항 어판장 곳곳에 막 잡아 온 밴댕이를 부리고 있었다. 대명항 밴댕이도 강화도 인근 해역에서 잡는다. 잡은 밴댕이는 배보다는 강화도 포구에 기다리고 있는 차를 이용해 어판장으로 보낸다. 배는 시간도 오래 걸리거니와 기름값이 많이 든다. 잡는 배와 잡은 밴댕이를 옮기는 배, 그리고 차를 이용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한다.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 해안도로를 타고 후포항으로 갔다. 항구라기보다는 작은 포구 정도의 크기다. '밴댕이 마을' 간판이 있지만 왜 밴댕이 마을인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후포항이 강화도에서 밴댕이가 가장 많이 나는 포구라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이 또한 아는 사람만 안다.

후포항 어판장에는 선장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등을 맞대고 있다. 이름은 어판장이지만 따로 생선을 파는 곳은 없다. 여럿이라면 신선한 밴댕이를 회, 무침, 튀김으로 내는 코스가 좋지만, 혼자인 탓에 회를 주문했다. 무침은 인천 연안부두 밴댕이 거리나 군산에서 먹어봤기에 고려하지 않았다. 밴댕이 맛을 오롯이 즐기기에는 구이나 튀김보다는 회가 제격이라는 판단도 한몫했다. 

손바닥만한 밴댕이를 손질한 회가 꽃처럼 피었다. 밴댕이 회를 깻잎에 싸서 초장대신 막장을 얹어 먹었다. 녹진한 밴댕이 맛을 막장과 깻잎의 향이 잡아 줄 듯 싶었다. 생각한대로 셋의 조합은 잘 맞았다. 막장의 짠맛을 잡아줄 밥을 더하니 완벽한 맛이었다. 예전에 먹은 밴댕이 무침보다 확실하게 밴댕이 맛을 더 잘 음미할 수 있었다. 

생밴댕이를 넣어 묵은지로 만든 '밴댕이 김치'
 
밴댕이 회를 먹다가 지난해 경기도 평택에서 먹은 밴댕이 김치가 생각났다. 생밴댕이를 김장할 때 넣어 묵은지로 만든 것이다. 김치와 함께 숙성한 밴댕이의 맛은 보기와 달리 발효 치즈 맛이 났다. 고소함과 함께 은은한 치즈 향이 나서 풍미를 더해줬다.

밴댕이 회를 먹다가 지난해 경기도 평택에서 먹은 밴댕이 김치가 생각났다. 생밴댕이를 김장할 때 넣어 묵은지로 만든 것이다. 김치와 함께 숙성한 밴댕이의 맛은 보기와 달리 발효 치즈 맛이 났다. 고소함과 함께 은은한 치즈 향이 나서 풍미를 더해줬다. ⓒ 김진영

 
밴댕이 회를 먹다가 지난해 경기도 평택에서 먹은 밴댕이 김치가 생각났다. 생밴댕이를 김장할 때 넣어 묵은지로 만든 것이다. 김치와 함께 숙성한 밴댕이의 맛은 보기와 달리 발효 치즈 맛이 났다. 고소함과 함께 은은한 치즈 향이 나서 풍미를 더해줬다. 강화도에서도 밴댕이로 김치를 담그지만 생밴댕이가 아니라 젓갈로 담근 것을 사용한다. 

올라오기 전에 죽어버리는 밴댕이 성격 탓에 속 좁은 사람을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속담처럼 현지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게 밴댕이 회다. 물론 냉동한 것도 회로 내지만 아무리 냉동기술이 좋아도 현지의 맛보다는 떨어진다. 

밴댕이는 7월이 금어기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뼈는 억세지고, 산란한 직후라 맛이 떨어진다. 계절의 맛을 내는 것이 민어나 방어처럼 특별하거나 비싼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밴댕이 회 한 접시 3만 원이면 아직 봄이 떠나지 않은 바다의 맛을 즐길 수 있다. 

5월과 6월의 밴댕이는 봄 바다 맛을 품고 있다. 계절 맛을 품고 있는 별미다. 계절 별미를 조금 저렴하게 맛 보려면 물때를 봐야 한다. 물때는 밀물과 썰물의 시간표다. 밀물과 썰물의 해수면 높이 차가 많이 날수록 밴댕이가 많이 잡힌다. 보통 사리 물때라 한다. 

서해에서 나는 것들을 사러 어판장에 가기 전에 물때를 확인하고 가면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물때는 검색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밴댕이뿐만 아니라 꽃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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