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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2.06 11:21수정 2019.02.06 11:32
어제부터 불린 쌀을 가루 내고는 찐다. 찐 가루를 수십 번 치댄 다음 기계에 넣으면 이내 가래떡이 줄줄 나오기 시작한다.

어제부터 불린 쌀을 가루 내고는 찐다. 찐 가루를 수십 번 치댄 다음 기계에 넣으면 이내 가래떡이 줄줄 나오기 시작한다. ⓒ 김진영


초등학교 가기 전, 어렸을 때다. 신정(매년 1월 1일)을 지나 구정(1980년대까지는 설날을 구정이라고 했다)이 다가오면 설렘이 커졌다. 구정을 쇠기 위해 엄마가 커다란 빨간 다라이(대야)에 떡쌀을 담그는 날 밤에는 잠을 설쳤다. 다음날 새벽, 떡방앗간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가래떡에 대한 기대감이 잠을 쫓았다. 

빨간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방앗간에 가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첫 새벽, 어슴푸레한 골목길 안쪽에 있는 방앗간. 엄마보다 더 부지런한 이들이 벌써 떡을 뽑고 있었다. 어제부터 불린 쌀을 가루 내고는 찐다. 찐 가루를 수십 번 치댄 다음 기계에 넣으면 이내 가래떡이 줄줄 나오기 시작한다. 일정한 길이로 방앗간 아저씨가 떡을 자르면 물을 받아 놓은 다라이로 떨어졌고, 그걸 바로 꺼냈다. 

찬물 샤워를 잠깐 했지만 여전히 열기를 품고 있는 가래떡을 집으면 뜨끈뜨끈 했다. 한 입 크게 물면 길게 늘어지며 끊겼다. 따듯함, 씹을수록 나는 단맛(당시에는 흰 가루를 넣었는데 지금 보면 뉴슈가, 사카린 종류였다), 그리고 쫄깃쫄깃한 식감이 밤잠을 설쳐 반쯤 감겼던 내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갓 나온 떡은 참 쫄깃했다.

시중에 저렴한 떡들이 차고 넘친다
 
첫 새벽, 어슴푸레한 골목길 안쪽에 있는 방앗간. 엄마보다 더 부지런한 이들이 벌써 떡을 뽑고 있었다.

첫 새벽, 어슴푸레한 골목길 안쪽에 있는 방앗간. 엄마보다 더 부지런한 이들이 벌써 떡을 뽑고 있었다. ⓒ 김진영

 
요즘은 서로가 바쁜지라 가래떡을 만들지 않고 설날에 먹을 만큼만 산다. 우리집도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들어 놓은 떡을 샀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가래떡이 예전 맛 같지 않았다. 비스듬히 썬 떡국이든, 길게 자른 가래떡이든 예전 맛이 아니었다. 사카린 단맛이 안 나서가 아니다. 식감이 달라졌다. 

어릴 적 가래떡에 잠을 설쳤던 기억이 유전자에 저장이 됐는지 딸아이도 가래떡을 좋아해 가끔 시장에서 몇 줄 사다 먹는다. 흰 설탕, 조청, 꿀에 찍어 먹는 것보다는 그냥 먹는 것을 좋아한다. 옆에서 같이 먹다 보면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진다. 씹는 맛이 쫄깃쫄깃한 게 아니라 진득진득한 식감 때문이다.
  
시중에 저렴한 떡들이 차고 넘친다. 수입 쌀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천 원짜리 한두 장이면 떡 한 팩을 산다. 가래떡이나 바람떡을 보면 반투명의 밝은 흰색이 아니라 회색빛이 돈다. 모양은 떡인데 씹으면 진득거린다. 쌀보다 타피오카, 옥수수 전분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방앗간에서 파는 가래떡도 정도 차이일 뿐 전분을 사용한 것들이 꽤 된다. 

전분은 다방면에서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빙수떡이나 찹쌀떡이고, 빵으로는 깨찰빵이나 도넛 전문점에서 파는 차진 식감을 가진 도넛이다. 다들 전분을 사용해 쫄깃한 맛을 냈다. 만두피나 수제비에도 전분이 들어간다. 밀크티에 들어가는 펄에도 타피오카 전분이 들어간다. 우리가 먹고 있는 많은 것들에 전분이 들어 있다. 희석식 소주의 재료이기도 하다. 

떡에 전분을 사용하는 이유는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금 더 저렴하고, 조금 더 딱딱해지는 걸 지연시켜주기 때문이다. 전분은 시간이 지나면 노화(전분이 말랑한 상태에서 딱딱해지는 것) 된다. 갓 지은 밥의 말랑함과는 달리 시간이 지난 밥은 딱딱해진다. 

한 번 노화된 것은 다시 말랑한 상태가 되기 힘들기에 노화 관리는 이익과 직결된다. 노화가 지연될수록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밥이나 빵을 냉장 보관하지 말고 냉동 보관하는 이유도 이같은 노화와 관련이 있다.

냉장과 냉동, 고기와 떡은 다르다
 
찬물 샤워를 잠깐 했지만 여전히 열기를 품고 있는 가래떡을 집으면 뜨끈뜨끈 했다. 한 입 크게 물면 길게 늘어지며 끊겼다.

찬물 샤워를 잠깐 했지만 여전히 열기를 품고 있는 가래떡을 집으면 뜨끈뜨끈 했다. 한 입 크게 물면 길게 늘어지며 끊겼다. ⓒ 김진영

 
전분은 실온이나 냉장 상태에서는 빠르게 노화가 진행된다. 대신 냉동하면 노화 진행이 멈춘다. 떡이나 빵을 냉동했다가 꺼내서 전자레인지 등에 덥히면 다시 말랑한 식감이 된다. 그런 탓에 냉장 떡이 드물다. 떡국이나 떡볶이 떡처럼 끓여먹는 떡만 냉장한다. 끓여먹는 떡이라고 해도 냉장 보관이 길어지면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먹고 남은 떡은 대개 냉동고에 넣는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냉동한 떡이 낫다. 노화가 진행되지도 않거니와 공장에서 급속 냉동을 하기때문에 차라리 식감 면에서는 냉장 떡보다 더 낫다. 다만, 냉장한 떡보다 2분 정도 더 끓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냉장 떡이 냉동 떡보다 더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냉동고기와 냉장고기를 구분하다가 생긴 버릇이 아닐까 싶지만, 맛의 관점에서는 냉동 떡이 낫다. 

탕수육의 '부먹'과 '찍먹'처럼 떡볶이에도 '밀떡'과 '쌀떡'의 치열한 논쟁이 있다. 개인의 입맛 차이일 뿐 무엇이 더 낫다는 건 없다. 만든 지 하루가 지나지 않은 떡으로 만들 때는 쌀떡이 조금 더 낫다. 말랑함과 쫄깃함, 그리고 떡볶이 양념을 잘 흡수한다. 쌀떡과 밀떡의 장점을 고루 갖고 있다. 

아침나절에 동네 떡집에서 떡을 사다가 떡볶이를 해보면 맛이 전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떡 하나만 바뀌어도 떡볶이 맛이 달라진다.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도 아니거니와,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없다. 맛없게 만든 사람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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