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원고료주기
등록 2018.10.03 11:25수정 2018.10.19 11:38
1991년 대학 2학년 때, 식품가공학과 전공 필수과목인 수산가공학 수업을 들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몇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그때 한참 '참치 캔' 선전을 할 때였다. 참치 캔에 든 DHA(물고기 기름 속에 존재하는 불포화 지방산)를 먹고 머리가 좋아지려면 하루에 한 트럭 분을 먹어야 효과가 있을까 말까 하다는 이야기와, 생선회는 무미(無味)·무취(無臭)라 구별하기 어렵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한 트럭 분의 참치 캔 이야기는 다들 웃어넘겼지만, 생선회가 무미·무취라는 것에는 다들 '에이, 설마' 하며 교수님의 말씀을 반신반의했다. 간장이나 초장이 그래서 필요하다는 말씀이었다. 다만, 근육 조직이 달라 자주 접하는 생선을 씹는 느낌으로는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교수님 말씀의 핵심이었다. 

지금이야 숙성한 회를 맛보기 쉽지만, 숙성회가 익숙하지 않았던 그 당시에 생선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숙성이라고 한 가지 더 알려주었다. 단백질이 효소에 분해되면서 글루탐산 등 감칠맛 성분이 증가해야 제대로 생선회가 맛이 든다고 했다.

생선회를 눈 감고 먹는다면
 
생선회는 눈을 감고 먹는다면 어종 구별은 불가능에 가깝다. 눈으로 근육 모양새를 보고 판단할 수는 있어도 향과 맛으로는 구별이 힘들다.

생선회는 눈을 감고 먹는다면 어종 구별은 불가능에 가깝다. 눈으로 근육 모양새를 보고 판단할 수는 있어도 향과 맛으로는 구별이 힘들다. ⓒ 김진영

 
생선회는 눈을 감고 먹는다면 어종 구별은 불가능에 가깝다. 눈으로 근육 모양새를 보고 판단할 수는 있어도 향과 맛으로는 구별이 힘들다. 참돔, 민어, 농어 세 가지 회를 안주로 소주 한 잔 마신 적이 있다. 주인장의 설명을 들으며 회 모양새만 기억하면 세 가지를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한잔 술이 두 잔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어려워진다. 물론 모양새로는 구별할 수 있지만 맛으로 절대 구별하기 어렵다. 초밥왕의 '쇼타'나 맛의 달인인 '지로' 정도가 돼야 구별하지 않을까 싶다. 

이름을, 혹은 모양새를 모른다면 세 가지 회의 맛은 구별하기 어렵다. 8월 말 세 어종의 가격 차이는 크다. 한여름에 수요가 달리는 민어가 가장 비싸고, 참돔이나 농어 가격은 비슷하다. 올해는 민어가 많이 잡혀 예년에 비해 가격이 내려갔지만, 낚시로 한 마리씩 잡아올린 건 그물로 잡은 것보다 가격이 몇 배나 비쌌다.

몇 주 전, 동해로 황열기(표준명 노란볼락) 낚시를 다녀왔다. 황열기는 볼락과의 생선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럭과 사촌지간이다. 우럭은 회유하지 않고 텃새처럼 태어난 바다를 벗어나지 않지만, 황열기는 수심이 깊은 바다에 살다가 산란 때는 낮은 바다로 올라온다. 

낮은 바다라고 해도 사는 곳이 동해안이다 보니 황열기가 잡히는 곳의 수심은 60~100m 정도다. 잡히는 때가 따로 정해져 있어 황열기는 고급 어종으로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30cm 조금 넘는 것이 몇만 원 할 정도로 우럭보다 몇 배 비싸다. 

그렇다면 '황열기가 우럭보다 비싼만큼 맛도 더 좋을까?'라는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확실히 답할 수 있다. 몇 마리 잡은 황열기와 포획금지 크기를 겨우 넘긴 대구포를 떠서 전을 부쳤다.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하고 달걀 옷을 묻혀 부치고 나니 뭐가 뭔지 구별이 안 되었다. 질감으로 부드러운 건 대구, 약간 씹는 맛이 있는 건 황열기로 추측했다. 

담백한, 다시 말하자면 맛이 심심한 게 특징인 흰살생선은 회뿐만 아니라 조리해도 맛으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혹시나 해서 조림이나 구이를 해봐도 식감의 차이가 조금 날 뿐이었다. 서해의 작은 포구로 출장 갔을 때 먹었던, 잡어 취급받는 노래미(놀래미) 구이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잡어 취급 받던 곰치, 물메기, 전어가 지금은
 
몇 주 전, 동해로 황열기(표준명 노란볼락) 낚시를 다녀왔다. 황열기는 볼락과의 생선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럭과 사촌지간이다.

몇 주 전, 동해로 황열기(표준명 노란볼락) 낚시를 다녀왔다. 황열기는 볼락과의 생선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럭과 사촌지간이다. ⓒ 김진영

 
크기가 2m까지 자라는 돗돔을 말할 때 '전설'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크기에 상어도 잡아먹는다는 소문, 일 년에 몇 마리 잡히지 않는 희소성까지 더해져 전설의 물고기가 되었다. 1990년대까지 전라남도 신안의 작은 섬 가거도에는 돗돔잡이 배가 12척이나 있을 정도였으니 지금처럼 그렇게 전설 속의 물고기는 아니었다. 

일본에 출장갔을 때 다른 생선과 함께 돗돔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한 접시에 다른 회와 같이 나왔는데 별반 맛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그냥 먹어왔던 생선회와 큰 차이를 못 느꼈다. 오히려 제철 맞은 전갱이가 내 입에는 더 착착 달라붙었다. 

돗돔을 다른 생선과 먹다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고급 생선과 잡어의 구분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다. 돌돔·참돔·감성돔과 자리돔, 민어와 조기에서 차이는 다른 것보다는 잘 잡히는 것과 덜 잡히는 것의 차이일 뿐, 맛의 관점에서는 큰 차이는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비싼 생선이 꼭 가장 맛있고 싼 생선이 맛없는 건 아니다. 생선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입맛에 맞느냐는 거다. 아무리 비싸도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맛없는 거다. 그것이 아무리 전설의 물고기일지라도. 세상에 잡어는 없다. 잡어 취급 받던 곰치나 물메기, 그리고 전어가 계절의 진미로 대접받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각각의 맛을 몰랐을 뿐, 잡어(雜魚)는 없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클럽아이콘14,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