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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8.11 13:10 수정 2020.08.11 13:11

2017년 7월 15일 오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 18회 퀴어문화축제에서 무대행사가 끝난 직후 퍼레이드가 진행 되고 있다. ⓒ 이희훈


2017년,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다. 비가 와서 날이 습했지만 신이 났다. 이런저런 부스를 구경하고 행진 트럭을 따라 흥겹게 걷고 있을 때였다. 예수가 나타났다. 얼어 붙는 것 같았다. 여기서 예수를 보다니. 예수 코스프레를 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정말로 예수를 본 것처럼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예수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예수님, 저 아시죠?" 나는 양성애자다. 나를 아냐고 물은 것은 내가 양성애자인데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예수는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한다는 걸 알면 나를 사랑할 것이다. 예수가 말했다. "그럼요." 눈물이 쏟아졌다. 그날은 꿈만 같았다. 동성애는 죄라고, 예수에게 돌아오라고 악을 쓰는 개신교인이 무섭지 않았다. 예수가 나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예수의 사랑을 실천한 목사는 목사 자격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소속이자 수원 영광제일교회 담임 목사인 이동환 목사다. 이 목사는 2019년 8월에 열린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성소수자를 축복했다. 그는 "우리는 누구나 축복이자 선물이다. 우리의 삶, 우리의 숨, 우리의 사랑과 시간이 모두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있나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했다.

감리교엔 교리와장정이라는 교회법이 있는데, 그 법 3조 8항을 보면 마약법 위반, 도박,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했을 때 정직, 면직, 출교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이동환 목사는 이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됐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있다"고 한 말이 마약, 도박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고 목사가 종교 재판을 받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신의 사랑과 축복을 모든 이에게 나눠준 일이 마약, 도박급 범죄로 치부받은 것도 놀라운데 지난 7월 28일엔 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 감리교 동성애대책위원회라는 곳에서 이동환 목사의 축복을 N번방 범죄에 비유한 성명을 발표했다. 동성애대책위원회는 이동환 목사가 성소수자를 축복한 일이 N번방 범죄자를 축복한 일과 같다고 설명했다. 위원회 구성원을 살펴봤다. 감리교 소속 원로 목사와 장로로 구성돼 있었다. 교단의 기득권 세력이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기감 교단 소속인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가 교단 법정에 회부됐다. 이러자 대책위는 6월 24일 교단 본부가 있는 광화문 동화빌딩 앞 광장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 지유석


하지만 희망이 있다. 교단 권력에 맞서는 이들이 있다. 이동환 목사를 지지하는 교단 구성원은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도 이동환 목사를 지지하고 나섰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여학생회를 포함해 여러 동아리가 이동환 목사 지지 성명을 냈다. 30·40대 젊은 목회자 140명도 이동환 목사는 죄가 없다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교단 선배는 성소수자를 N번방에 비유하는데, 후배는 앞다퉈 이동환 목사와 함께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동환 목사를 포함해 젊은 신학생과 목회자는 사람을 살리고 축복하는 길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간다. 자격을 따지지 않는 축복, 두려움 없는 축복, 누구든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축복을 향해 나아간다. 이동환 목사는 "우리는 계속해서 편견의 벽을 허물며 사랑의 지경을 넓혀갈 것입니다. 단언컨대 어떤 존재도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이 무엇보다 앞서는 가장 지고의 법입니다"라고 말했다. 차별 없는 신의 사랑 앞에 우리는 모두 존엄하다고 이야기한다.

바라는 것은, 우리에게 성소수자를 축복하는 목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너를 안다, 너를 축복한다,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목사가 있었다면 열아홉 살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육우당을 포함해 많은 성소수자가 더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육우당은 유서에 "술,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 이 여섯 가지가 제 유일한 친구입니다"라고 썼다. 묵주는 천주교에서 기도할 때 어루만지는 도구다. 육우당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기도했고 신을 자신의 친구라 여겼다. 우리에게 성소수자를 축복할 목사가 더 많이 있었더라면 육우당과 같은 성소수자를 한 명이라도 더 살렸을지 모른다.

이동환 목사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정직, 면직, 출교 중 한 가지 처분을 받게 된다. 현재도 재판에 회부된 상태라 수원 영광제일교회 직임이 정지된 상태다. 이동환 목사는 차별 없이 받은 신의 사랑을 차별 없이 돌려줬을 뿐이다. 그런 목사를 잃을 수도 있다고 하니 젊은 육우당과 먼저 간 많은 이가 눈 앞에 아른거린다. 하지만 젊은 신학생과 목회자는 축복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세상에선 성소수자, 성소수자를 축복한 목사, 성소수자를 N번방에 빗댄 원로 목사와 장로 모두 함께, 차별 없으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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