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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8.04 15:20 수정 2020.08.04 15:20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폭스뉴스 선데이 인터뷰 도중 자료를 보여 주며 "미국이 세계에서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 폭스뉴스선데이 유뷰브 화면 갈무리


지난 7월 19일 (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폭스뉴스의 시시프로그램 <폭스뉴스 선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미국이 세계에서 코로나로 인한 치명률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I think we have one of the lowest mortality rate in the world")라고 주장했습니다. 진행자가 "미국 코로나 치명률이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높다"("We have the seventh highest mortality rate in the world")고 하자 그에 대해 반대로 생각한다며 한 이야기였습니다.

진행자나 트럼프 대통령 둘 다 치명률(Mortality rate)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진행자는 인구 100만 명당 사망자 수를 기준으로 미국의 사망자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많다고 이야기 한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확진자 대비 사망자를 기준으로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라고 한 것입니다. 실제로 8월 1일 현재 미국의 확진자 대비 사망자의 비율은 3.3%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에 비해 훨씬 낮은 35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 최다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대책을 이야기 하는 대신 유리한 통계만 골라서 사망률이 낮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왼쪽이 <더 선>의 보도, 오른쪽이 그 기사를 인용한 <중앙일보>의 보도입니다. MBC는 이 보도가 허위라고 지적했습니다. ⓒ 이봉렬


지난 7월 17일에는 <중앙일보>를 비롯한 몇몇 언론에 "한국 김치가 바이러스 차단 역할, 코로나 사망자 줄였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온 이유 중 하나가 김치라는 프랑스 연구진의 분석이 나왔다"는 겁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타블로이드판 황색신문 <더 선>이 프랑스 연구진의 연구 논문을 분석해 보도한 기사를 한국 언론이 다시 인용 보도한 것인데, 며칠 뒤 MBC는 "팩트의 무게" 코너를 통해 <더 선>의 이 기사 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하는 보도를 내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사망률이 나라별로 열 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 원인을 두고 여러가지 조사와 분석이 잇따르고 있는데, 이렇게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 자꾸만 나오면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8월 1일 기준으로 전세계 코로나 치명률(이하 확진자 대비 사망자 수)은 대략 3.85% 수준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처럼 10%가 넘는 나라들도 있고, 한국, 호주, 러시아처럼 2% 내외인 나라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코로나 치명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답은 싱가포르입니다.
 

한 명이라도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나온 나라 가운데 치명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싱가포르입니다. 치명율이 높은 나라 20개국과 한국, 싱가포르만 표에 넣어서 비교했습니다. ⓒ 이봉렬


싱가포르는 8월 1일 현재 확진자 수 5만2205명에 사망자 27명으로 0.05%입니다. 잘못 적은 게 아닙니다. 0.5%가 아니라 0.05%로 한 명이라도 사망자가 나온 188개 나라 가운데 사망률이 가장 낮습니다.

싱가포르는 한때 방역 모범국으로 불렸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월 7일부터 감염병 대응시스템인 도스콘 경보를 주황색으로 발령하고 외국인의 입국제한, 의심환자 자가 격리 및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를 실시해서 코로나 확산을 어느 정도 통제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3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는 기숙사에서 코로나 환자가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4월 초 싱가포르 최대 이주기숙사 단지인 풍골 S11 기숙사에서 환자가 나온 이후 하루 천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두 달 간의 서킷브레이커를 선포하고 대부분의 사업장과 학교를 닫고, 외식과 불필요한 외출을 금지시켰습니다. 기숙사의 이주노동자들은 별도의 격리시설을 만들어 분산 시켰습니다.

두 달간의 서킷브레이커 기간과 1단계 규제 해제 기간이 끝난  6월 말부터 사업장과 학교는 모두 문을 열었고, 5명 이내의 소규모 모임과 외식 정도가 가능해진 상태입니다. 환자 발생 추이를 보면서 하나씩 하나씩 단계적으로 규제를 해제하고 있는 중입니다. 7월 중순이 되어서야 극장 문을 열었는데 50명 이내로 인원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8월 1일 현재에도 하루 200명 이상 환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인구 570만 명의 도시국가 싱가포르에서 200명은 한국으로 치면 2000명에 가까운 수치나 다름없습니다. 확진자 수는 5만2205명으로 세계에서 42번째로 많고, 인구 100만 명 당 확진자 수를 기준으로 하면 13위로 아주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만 놓고 보면 싱가포르는 아직도 코로나19와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싱가포르가 어떻게 사망률만큼은 세계 최저를 기록할 수 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감염된 사람들 대다수가 젊고 건강한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바로 회복이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전체 확진자 5만2205명 가운데 이주노동자의 수가 약 95%인 4만9327명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가볍게 앓은 후 나았을 뿐 아니라 기숙사 단위로 대규모 검사를 통해 양성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무증상인 이들도 많았습니다. 27명의 사망자 가운데 이주노동자 기숙사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젊고 건강한 이주노동자들을 통계에서 제외하더라도 싱가포르의 코로나 확진자 치명률이 낮은 건 변함이 없습니다. 전체 확진자 가운데 이주노동자를 확진자 수에서 제외하고 계산을 해도 싱가포르의 지역감염자 숫자(외국에서 온 사례 포함)는 2179명으로 치명률은 1.24%가 됩니다. 여전히 낮은 수치입니다.

환자의 대부분이 젊고 건강했다는 것 말고 또 어떤 게 치명률에 영향을 줬을까요? 그에 대한 설명은 싱가포르 현지 언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 설명에 "판데믹 초기에 위급하지 않은 수술을 연기시켜서 코로나 환자들을 위한 병원시설을 더 많이 확보했다"라는 설명이, 기사 요약으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젋고 건강한 이주노동자들이었고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지않았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세계 최저의 사망률의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이 간단한 걸 많은 나라들이 해내지 못했던 겁니다 ⓒ The Straits Times 화면 갈무리


지난 6월 25일 싱가포르 대표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스>에 "싱가포르의 코로나19 치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Why Singapore has relatively low Covid-19 death rate)"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해당 기사 역시 다수를 차지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빠른 회복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 다음으로는 의료시스템이 붕괴되지 않은 점을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코로나 환자의 발생이 증가하기 시작하던 4월 초부터 싱가포르 엑스포(Singapore Expo), 창이 전시장(Changi Exhibition Centre) 등 대규모 전시 시설을 환자 격리 시설로 개조하였습니다. 여기에 증세가 미미한 환자, 병원에서 치료 후 회복기에 있는 환자들을 격리 수용한 후 증상에 따라 치료를 진행하였습니다.
 

싱가포르 엑스포(Singapore Expo)에 마련된 대규모 환자 격리시설입니다. 가벼운 증상의 환자 및 치료 후 격리가 필요한 환자들이 이런 시설에서 임시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 싱가포르 보건부 (MOH)


발생 환자의 90% 이상을 이와 같은 시설에 수용했기 때문에 하루에 천 명씩 환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병상이 부족한 상황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외에 긴급하지 않은 수술은 모두 미루도록 조치함으로써 의료진과 의료기기의 수급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한국이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전염병 예방을 위한 많은 개선이 있었던 것처럼, 싱가포르는 2003년 사스(SARS) 사태 이후 전염병 예방을 위해 인적 물적 준비를 많이 해 왔습니다.

싱가포르는 코로나19 조기 발견을 위해 검사도 상당히 많이 진행했습니다. 인구 백만 명당 검사 수는 22만5667만명으로, 인구 백만 명이 넘는 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검사를 진행한 나라입니다. (8월 1일 기준. 참고로 한국은 백만 명당 3만 명 수준입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대부분의 중환자 치료를 담당했던 싱가포르 국립전염병센터(NCID : National Infectious Diseases)의 링 리 민(Ling Li Min) 박사는 "초기 치료가 잘 되어 중환자실로 가야 하는 환자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provision of better initial treatment has contributed to the smaller number of ICU cases)"고 해당 기사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7월 31일에는 이와 같은 발언을 확인해주는 기사가 또 실렸습니다. "싱가포르 확진자 중 0.3%만이 중환자실(ICU : intensive care unit)로 옮겨졌다(Just 0.3% of cases in S'pore admitted to ICU)"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지금까지 확진자 가운데 0.3%인 128명만이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했고, 가장 많을 때도 32명이었으며, 지난 7월 14일 이후로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가 한 명도 없다는 내용입니다. 5만 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중환자실이 부족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싱가포르 확진자 가운데 0.3%인 128명만이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지난 7월 14일 이후로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27번째 사망자 이후 2주 이상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 The Straits Times 보도 갈무리


두 보도를 요약하자면, 환자 대부분이 젊고 건강했으며, 인구 대비 세계 최대 수준의 검사를 통해 감염 초기에 확진자를 가려냈으며, 발빠르게 확진자 격리시설을 세우고, 급하지 않은 수술을 미루는 등의 조치를 통해 충분한 의료시설을 확보한 것이 코로나 치명률을 낮추는 데 주효했다는 분석입니다. 결국 의료진과 시설, 장비가 충분했기 때문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통계를 이용한 숫자 놀음으로 그 순간만 모면하려고 하는 어느 나라 지도자의 발언이나 외국 황색언론의 가십성 기사를 인용하며 이게 다 김치 덕이라는 식의 언론보도보다는 싱가포르 언론의 분석이 훨씬 더 신뢰가 갑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사망자 301명, 치명률 2.1%로 세계 평균보다도 낮습니다. 수치로만 보면 한국 역시 검사 및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유지되는 이유가 인원과 시설이 충분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인원이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밤낮으로 일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챌린지까지 하고 있는 "의료진 덕분에"가 말 그대로 의료진의 수고 덕분이어야 하지, 의료진의 밤낮없는 희생 때문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수고하는 의료진이 지치지 않도록 충분한 인적 물적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세계 최저의 치명률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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