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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7.13 12:01 수정 2020.07.13 12:15
'조문하면 박원순 편, 조문 안 하면 피해자 편' 같은 이분법을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런 이분법은 옳지도 않고 위계를 이용한 성범죄 해결과 예방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몇 사람들이 이런 이분법을 자꾸 만들어 간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7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문하지 않겠다는 글을 올리면서 피해자와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같은 날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비슷한 글을 올렸다. 2차 가해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댓글창은 반말과 여성혐오적 욕설로 도배가 됐다. 그런가 하면 영향력 있는 남성 인사들이 두 의원의 입장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는 "조문은 강제가 아닙니다. 안 가겠다고 상주에게 통보하거나 선언할 일이 아닙니다. 똥오줌은 가립시다"라고 말했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조문 안 하겠다고 떠들어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싶은 것 이해합니다"면서 "하지만 '하고 싶은 것'과 '해도 되는 것'조차 분간 못 하는 건 좀 한심하다"고 했다.

조문하지 않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입장을 황교익씨, 전우용씨를 포함해 많은 이가 사적인 메시지로 이해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워서 조문하기 싫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조문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연대하며 2차 가해에 반대한다는 말은 사적인 입장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이다.

죽음에 대한 애도, 그 다음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인간 박원순에 대한 애도와 추모는 슬픔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 대부분이 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가 살아돌아오길 바랐다. 시신이 발견됐다는 속보가 떴을 때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유를 막론하고 어떤 순간에도 생명은 소중하다.

일각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서울시장의 위력을 이용한 성추행 의혹과 그 이후 일어난 일들은 반드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해석돼야 한다. 법조계, 정치계, 시민사회 등 많은 이가 머리를 맞대어 이 죽음의 의미를 읽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위력을 가진 이가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문제, 남성을 상사로 둔 여성의 노동 문제, 피고소인 사망 등으로 수사 기관이 수사를 더 할 수 없어졌을 때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 유명인 관련 사건에 쏟아지는 보도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를 정상화하기 위한 방법 등을 반드시 논의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죽음을 슬퍼만 하는 사회는 정체된 사회다.

죽음을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해석한다는 말은 나쁜 말이 아니다. 많은 죽음이 반드시 이렇게 해석돼야 한다. 부모에게 학대 당한 어린이의 죽음, 적폐와 비리 때문에 희생된 고등학생들의 죽음, 해고 노동자와 철거민의 죽음 등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죽음의 의미를 읽어왔다. 그 의미를 읽어야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와 비슷한 죽음이 없지 않았다. N번방에 가입했던 이력이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도를 했고, 비공개 스튜디오 촬영회의 핵심 피의자였던 실장 또한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이런 죽음의 의미를 읽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길이기도 하지만 다시는 이런 죽음을 만들지 않을 방법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위력을 증명한 사람들

반면 어떤 정치인은 애도와 추모 이상의 '정치적 행동'으로 가해자의 건재한 위력을 확인시키기도 했다.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어머니 장례식에 조문하면서 "우리 아버지도 내가 징역살이할 때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끌다가 수감된 적이 있다. 이 말은 안 전 지사가 마치 민주 투사로 억울하게 옥에 갇혔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안 전 지사에게 감옥 다음이 있을 거란 의미로 읽힐 수도 있다. 옥에 갇혔다가 풀려나 국회의원이 됐고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자신처럼 안 전 지사도 그럴 수 있다는 뜻이 전제돼 있다. 이 후보자는 안 전 지사가 정치인으로서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확인시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이 대표는 박 시장 빈소 조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기자에게 질문을 받았다.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에 관한 질문이었다. 이 대표는 "예의 없는 후레 자식"이라 막말을 했다. '후레 자식'이라는 말은 어른이 버릇없는 젊은이들한테 쓰는 말이다. 이 대표가 이 말을 쓴 맥락은 "어디 어른한테"라기보다는 "어디 서울시장한테"에 더 가깝다. 이유는 이 대표가 앞에 했던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대표는 조문을 마치고 나와서 기자들 앞에 서자마자 박원순 시장의 업적을 읊었다.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뜻과 철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3선 서울시장으로서 영원히 영향력이 있을 거란 걸 보여줬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이 가진 위력을 동원해 성범죄를 저질렀다. 박 시장도 자신의 전 비서에 대한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동료 정치인은 장례식장에 가서 그들이 가진 위력을 도리어 증명해 보였다.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가해의 도구였던 위력을 꺼내서 보여준 것이다.

박 시장의 죽음, 남성 정치인이 조문 정치로 보여준 남성 연대. 이를 바라보면서, 류호정 의원과 장혜영 의원을 포함해 #박원순_시장을_고발한_피해자와_연대합니다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 서울시 5일장에 반대하는 수십만 명이 조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말을 사람이 죽었는데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거나 죽음을 조롱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이는 조문 정치가 행해지는 남성 연대에 동참하지 않겠단 뜻이고, 민주당이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동안 피해자 옆에 있겠다는 선언이며, 다시는 동료 그리고 상사에게 성범죄 당하는 피해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래서 나도 시민 분향소에 가지 않았다. 서울의 상징과도 같았던 최장수 시장이 명을 달리해서 슬프다. 하지만 이렇게 명을 달리했기에, 또한 장례식장에서 공고한 남성 연대가 위력을 떨치고 있기에 조문할 수 없었다.

벌써 2차 가해가 넘쳐나고 있다. 어떻게 유출됐는지 알 길이 없는 진술서가 돌아다니고, 피해자의 신상을 캐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자신도 좋아서 엉겨붙은 거 아니냐", "관노와 잠자리한 이순신도 잘못한 거냐"는 악성 댓글도 부지기수다. 진상 파악과 피해 회복, 예방, 2차 가해 방지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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