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5 18:28최종 업데이트 20.07.03 12:45
  • 본문듣기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 일대. ⓒ 이희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세네카의 이 표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한 것을 라틴어로 바꾼 것인데, 대부분 철학자들은 '정치적'에서 '사회적'으로 이전되는 형용사가 함의하는 연속성과 변이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표현 안에는 동물 일반에서 떨어져 나와 인간 특수로 서겠다는 인문학적 의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 인간은 모든 동물의 생물학적 일반 본성을 필연적으로 공유하지만, 동시에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수 본성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는 뜻이다. 여기서 생물학적 영장류로서의 인간과 인문학적 인류로서의 인간이 구별된다.


따라서 생물학적 인간의 삶에 관계되는 모든 자연법칙들은 다른 동물들도 배제하지 않고 함께 관여한다. 바이러스도 그렇다. 바이러스와의 공생이나 투쟁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이 그렇다. 그래서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바이러스라 하더라도 인문학적 질병이라 보지 않고 영장류에게서 발견되는 생물학적 질병으로 분류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 사이에 전염되는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생물학적 방역체계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과 함께 접근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그 차원에서 2020년 한국은 비로소 인문학적 방역체계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류에 제공한 셈이다.

그런 한국에서 생물학적 역학관계와 흡사한 방식의 사회적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차별과 혐오는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성이 있고, 그 독성과 확산 속도는 바이러스보다 강하고 빠르다.

지난 5월 7일 용인 66번 확진자가 연휴기간 이태원의 클럽과 주점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되고, 그 클럽이 성소수자들이 많이 찾는 장소라는 사실 또한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 후 이번 사태와 관련한 사회적 비난은 일부의 방역수칙 위반과 부주의에 대한 것에서 모든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것으로 빠르게 옮겨 붙었다. 그리고 그 확산 속도는 전광석화와 같았다.

원인도 약자의 몫
 

성소수자 혐오 유발 단어 사용한 MBN의 <굿모닝 MBN>(5/8) ⓒ MBN


특정 사건으로 인한 집단분노는 그 원인과 대책이 묘연할 경우 대개 그 사회 내부의 소수자들을 향한 증오로 모아진다. 소수자들 가운데 사건과 관계되는 일탈행위가 실제 나오고 안 나오고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분노의 대상이 된 것은 구체적 행위와 관계없는 존재 자체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유럽인들은 유대계 시민들과 외국인들을 향한 무차별적 멸시와 집단 학살을 일삼았고, 1923년 일본의 간토 대지진 당시에도 조선인에 대한 혐오, 폭력, 집단 학살이 예외 없이 자행됐다.

이번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사건은 2월 대구 신천지 교회 집단감염과 부분적으로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이 크다. 당시 문제가 됐던 것은 해당 종교 자체의 집회 방식과 포교활동 방식이 바이러스를 쉽게 유포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사태의 경우 성소수자라는 정체성 자체가 그들을 클럽의 좁은 공간으로 모여들도록 하지는 않는다. 어느 사회에서나 일탈이 나올 수 있듯이 그들 가운데 일탈이 나온 것일 뿐, 모든 성소수자들이 클럽이나 혹은 좁은 공간을 좋아할 것이라는 근거는 없다.

이번 집단감염 사태의 본질은 방역의 원리와 늘 반대편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경제의 원리가 경기회복이라는 제법 설득력을 갖춘 논리로 방역의 끈을 느슨하게 만든 결과라는 데에 있다.

이처럼 돈의 논리 앞에서 피해는 늘 성소수자들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의 몫이다. 바이러스의 책임 소재를 놓고 벌이는 마녀사냥식 낙인찍기는 성소수자뿐 아니라 인종, 출신, 성별 약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초기부터 지금까지 도처에서 벌어지는 아시아인 특히 중국인을 향한 멸시와 폭력의 사례들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정부에 대한 여러 국가들 그리고 세계보건기구(WHO)의 눈치 보기, 눈감아주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차이니즈 머니(chinese money)와 차이니즈 피플(Chinese people)은 다르니까…

결과도 약자의 몫
 

4월 7일 미국 <워싱턴포스트> 보도.(숨을 멎게 하는 결과, 다른 곳보다 월등히 큰 흑인 사회의 코로나19 피해, 'Those numbers take your breath away': Covid-19 is hitting Chicago's black neighborhoods much harder than others, officials say) ⓒ 워싱턴포스트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의 큰 몫 역시 사회적 약자들에게 오롯이 돌아간다. 코로나19의 최대 피해국 미국의 내부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백인과 기타 다른 인종에 비해 흑인의 감염자수와 사망자수가 월등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달 7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국민들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인종별로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숨을 멎게 하는 결과, 다른 곳보다 월등히 큰 흑인 사회의 코로나19 피해, 'Those numbers take your breath away': Covid-19 is hitting Chicago's black neighborhoods much harder than others, officials say)
  

시카고 지역 확진자 현황 (5월 13일 기준) ⓒ https://www.chicago.gov

  

시카고 지역 사망자 현황 (5월 13일 기준) ⓒ https://www.chicago.gov

  

이 신문은 시카고의 경우를 들어 미국 코로나19의 피해는 흑인 사회에 집중됐다면서 시카고 인구 중 흑인은 32%임에도 사망자의 72%가 흑인임을 보여준다. 5월 13일 업데이트된 시카고의 확진자수를 보더라도 백인은 3992명인데 반해 흑인은 8100명으로 나타났고, 사망자의 경우도 백인 287명에 반해 흑인은 717명에 달한다.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의 다른 보도에 따르면 전국 규모를 봐도 거의 유사한 결과가 나온다. (놀라운 흑인사회의 코로나19 감염률과 사망률, The coronavirus is infecting and killing black Americans at an alarmingly high rate)
 

백인이 다수를 이루는 카운티 2879개의 경우 인구 10만 명당 확진자수는 39.8명으로 조사됐다. 반면 흑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131개 카운티에서는 인구 10만 명당 확진자수가 137.5명에 이른다.

 
워싱턴DC를 제외한 미국의 3140개 카운티 가운데 백인이 다수를 이루는 카운티는 2879개에 달한다. 이곳의 경우 인구 10만 명당 확진자수는 39.8명으로 조사됐다. 반면 흑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131개 카운티에서는 인구 10만 명당 확진자수가 무려 137.5명에 이른다. 사망자수의 경우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카운티의 경우 10만 명당 1.1명인데 반해 흑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카운티에서는 10만 명당 6.3명에 달해 6배나 높은 수치를 보인다.

흑인들이 코로나19 피해에 더 많이 노출되는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백인들보다 평소 기저질환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같은 날 CNN에 따르면 흑인들이 평소 당뇨병, 심장병, 폐질환 같은 기저질환을 백인들보다 많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건강보험 혜택 역시 백인들보다 적게 받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실직률도 백인들보다 높아 생활고에 시달릴 가능성 또한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들의 주거지역이 교외나 시골 지역보다 바이러스 전파가 용이한 도심 밀집 지역에 많은 것도 역시 원인으로 꼽힌다. 인종간의 구별이 생물학적 근거가 아닌 사회적 근거에 의한다는 뜻이다. 이때 구별은 차별이 된다.
 

'자택 대피 명령' 항의하는 미국 미시간 주민 14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따른 미국 미시간 주의 자택 대피 명령에 항의하는 집회에서 한 주민이 방독면을 쓴 채 국기를 들고 있다. ⓒ 랜싱 AP=연합뉴스

 
생물학적 구별이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는 인간의 몹쓸 병은 성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실업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는 미국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타격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CNN 보도로 확인됐다. 11일 CNN은 과거와 달리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에서는 남성 실업률이 13%인 반면 여성 실업률은 15.5%로 집계되고 있다며 미국 노동부의 통계를 인용해 보도했다. 물론 여성 가운데 특히 흑인(16.4%)과 히스패닉계(20.2%) 등 백인 외의 여성 실업률이 더 높은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유는 위기 상황에서 먼저 해고되거나 먼저 없어질 일자리의 근무자가 여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고용일수록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많다는 뜻이다.

동물과 구별되는 특수한 존재로서의 사회적 동물인데 왜 동물적 질병 앞에 서면 그들의 사회적 본성마저 동물화 되어갈까.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프리미엄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