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0
원고료로 응원하기
본문듣기 등록 2020.05.14 10:28 수정 2020.05.14 10:36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광주정신포럼 토론 ‘미래세대가 5.18을 기억하는 새로운 방법’ (가운데가 필자) ⓒ 문정은 제공

나는 1986년생이다. 80년 5월을 직접 겪지 않은 오월 이후 세대는 5.18을 어떻게 만나게 될까. 어린 나의 기억 속 5.18은 학교 수업을 통해서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알게 된 상식과 교양 수준이 아니었다. 내게 5.18은 무섭고 두려워 모른 척 하고 싶은 진실이었다.

집 근처 5.18 기념공원에서, 국립묘지와 상무관 등 광주 곳곳에서 끔찍한 사진과 서술을 마주했다. 일상적인 공간에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는 이 증거들은, 그날의 진실을 선명히 말하고 있다. 도시 곳곳이 오월을 품고 있어 외면할 수 없는 곳, 나는 광주에 산다.
 
80년대생에게 5.18이란 무엇인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올해로 40년이 되었다. 인간으로 따지면 중년의 시기로 접어드는 것이다. 2020년 봄, 우리에게 5.18 광주정신은 무엇일까.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으로 압축할 수 있는 오월 정신은,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에 눈 뜬 시민과 젊은이들이 민주화 운동의 주축이 되어 세상의 변화를 위해 헌신하며 만들어 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러한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는 정부'이다. 그러나 오월의 투사들이 그리던 대동세상, 오월의 정부는 아직 미완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당시 신군부 세력의 진압에 맞서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들이 '비상계엄 철폐', '유신세력 척결' 등을 외치며 죽음을 무릅쓰고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저항한 사건이다.

항쟁 기간 중 22~26일 닷새 동안은 시민들이 자력으로 계엄군을 물리치고 광주를 해방구로 만들어, 세계사에서도 유래가 드문 자치공동체를 실현했다. 10일간의 항쟁공동체에서 시민들은 역사의 고통에 응답하기 위해 죽음의 공포를 초월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고, 아무도 조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시민 공동체는 국가의 부정이 아니라, 바로 참된 공동체의 지향이었다.
 
계엄군에 의해 진압당한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상규명을 위한 끈질긴 투쟁으로 '광주사태'가 1995년 특별법을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됐고, 1997년 5.18은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다.

대법원 역시 신군부의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학살을 군사 반란과 내란죄로 판결했고, 광주 학살의 주범들을 사법적으로 단죄했다. 2001년에는 관련 피해자가 민주화 유공자로, 5·18 묘지가 국립 5·18 묘지로 승격되어 그 명예를 회복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1987년 6월 항쟁의 동력이 되어 민주주의 쟁취와 인권회복으로도 이어졌다.
 
5·18 민주화운동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고 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 귀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한국 민주주의의 밑거름 역할을 한 5·18 정신을 가슴 깊이 새겨가고 있다. 이제 그 정신을 민주·인권·평화·통일 등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제기된 과제로까지 확장하는 것이 40주년을 맞이한 오월 광주의 소명이다.
 
잊혀지고 비틀리고 모욕받는 오월 정신

 
그러나 오늘날 5·18의 정신을 지키는 것은 위태롭다. 광주의 비극을 은폐하기 바빴던 1980년대에는 5·18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조차 금기시되었던 만큼, 5·18을 드러내는 시도 자체가 용기이고 진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민주화와 5·18에 대한 복권을 거친 1990년대 이후, 광주는 오히려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심지어 종합편성채널들은 5·18의 북한군 개입설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극우 인터넷 사이트에선 5·18을 희화화하며 폄훼하는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전남대 김상봉 교수는 "민주화에 대한 존경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 광풍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가속화됐습니다. 구제금융 위기 때 없는 사람들이 금을 모아줬더니, 그들은 정리해고로 보답했습니다. '자기들끼리 호의호식하면서 우리는 희생시켰다'는 정서가 이때 싹텄습니다. 이제 왜곡된 역사의식이 사회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상황까지 왔어요." (김상봉, <철학의 헌정> 출판 인터뷰 중)

오월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민주화 운동으로 계승 발전시켜 온 주요 세력들은 이제 대한민국 정부를 구성했고, 슈퍼여당이 되었다. 이제 나는 묻고 싶다. 극심한 경제 양극화로 불평등이 세습되는 시대, 광주 정신의 적자인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저항할 것인가.
 
4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는 5.18의 진실을 밝히는 것에 지난한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5.18 특별법에 의한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전두환 관련 재판 역시 당사자의 적극적인 부인으로 무심한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오월 광주 정신의 보편적 해석을 넘어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재해석의 영역에 둘 것인가. 미래세대는 광주 정신에 무엇을 바라고 기대하고 있을까. 국가 폭력에 저항했던 80년 5월을 넘어 이제 오월 정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할 것인가.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5.18 광주 정신이 기억되고 계승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나은 민주주의를 통한 자기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문정은은 광주청년센터 센터장으로 일했고 현재는 광주광역시 일자리위원회 위원,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로 활동중이다. ⓒ 문정은 제공

미래세대가 5.18을 기억하는 방법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은 다른 무엇보다 지금의 청년 세대의 꿈과 도전을 가로막는다. 군부독재, 국가폭력 앞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이루었던 것처럼 이제는 경제, 정치 영역에서도 민주화를 이루고,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로서의 광주 정신을 구현해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주어져 있다. 이 같은 과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모 아니면 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광주의 정치적 선택에 대해서는 더 많은 토론과 이견이 필요하다.
 
다양해야 건강하다. 오래도록 호남과 광주의 소외와 차별의 정서를 골자로 하는 정치적 동원의 역사에서 이제는 건강한 견제와 비판이 가능한 정당체계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 골고루 먹고, 편식하지 않는 균형 잡힌 식단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밥상을 다채롭게 구성해야 한다. 김치찌개 아니면 된장찌개 말고, 비빔밥도 올리는 밥상으로 바꿔야 지금 광주가 해결해 나가야 할 다양한 과제를 마주할 수 있다.
 
40주년을 맞이한 5.18 광주 정신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다.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청소년, 청년, 이주민 등의 인권은 보장되고 있는지, 이를 위한 정치적 다양성은 제도적으로 보완되고 있는지 묻고 있다.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많은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도시를 원한다. 대통령, 시장, 구청장, 의회까지 단일 정당 독점 체제로 구성되어, 상호 견제와 건강한 비판을 통한 민주주의는 실종될 위험을 안고 있다. 축소되고 은폐되는 정치로 투명인간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있다.
 
이와 함께, 광주 정신을 구현할 사회통합형 일자리 성공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이자 노사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이다. 5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지난 1월 타결되었는데, 이 일자리는 기존 완성차업체 임금의 절반 수준으로 '적정임금'을 유지하는 대신, 줄어든 임금은 '사회임금'으로 보전해 나가는 모델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거·문화·복지·보육시설 등의 지원을 통해 부족한 임금을 채워간다는 사회통합형 일자리 창출 모델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기본 개념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 등을 골자로 한다. 고임금 제조업으로 여겨지는 완성차 공장을 짓되 임금을 줄이고 그만큼 일자리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다. 지역, 청년 일자리로 직접 고용 1000여 명, 관련 일자리에 1만여 명이 채용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를 단순히 기업 유치형 일자리 창출로 의미를 축소시키고 있는 상황을 멈춰야 한다. 오늘날의 광주 정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공동체 정신, 극심한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대한 저항과 노사민정 대타협을 골자로 하는 격차 완화 등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
 
2020년 슈퍼여당의 시대, 압도적 지지로 문재인 정부를 지탱한 광주는 이제 물을 것이다. 불의 앞에 저항했던 광주의 오월 청년들아, 이제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문정은씨는 와글의 <청년정치 와글와글> 편집위원으로, 광주광역시 일자리위원회 위원입니다.
댓글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와글은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사회 혁신의 아이디어를 실천으로 풀어낼 수 있는 캠페이너 트레이닝 프로그램의 개발과 교육’, ‘수평적 의사 결정이 가능한 기술을 접목시킨 시민 참여 온라인 플랫폼의 연구와 설계 및 운영’ 그리고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지닌 청소년, 청년, 시민들의 네트워킹과 실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