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3 08:05최종 업데이트 20.05.1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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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8일 오전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사건의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수사결과는 가히 '멸문지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질고도 혹독하다. 예전에 멸문지화는 대역죄를 저지른 죄인에 대한 형벌이었는데 '검찰 개혁의 아이콘'이라는 것만으로도 검찰에는 대역죄였을까. 그런데 정경심 교수의 기소 내용을 보며 개인적으로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문으로 치면 0.5단짜리 기사 10개를 모아 5단짜리 1면 머리기사를 만들었군".

김종구 전 <한겨레> 편집인이 지난해 11월 28일자 신문에 쓴 칼럼 중 한 부분이다. 칼럼 필자가 "가히 '멸문지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질고도 혹독하다"고 한 이유는 여러 가지일 터다.

첫째, 수사에 동원된 검사와 수사관 숫자가 200명이 넘고, 수사 개시 30일 만에 70여 회에 이르는 압수수색이 있었다. <한겨레> 김이택 논설위원이 "(검찰) 특수부의 칼을 대학생 자기소개서에 한줄 등장하는 이들까지 줄줄이 불러대는 건 '비례와 균형'의 수사가 아니다"('김이택 칼럼'. 2019. 10.16)라고 했을 정도로 검찰 수사는 전방위적이고 압도적이었다.


이른바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불공정 문제와는 별개로, 검찰 수사는 '비례와 균형'이라는 말이 초라할 정도로 일방적이고 거침이 없는 '검찰 권력의 남용'이었다. 더구나 패스트트랙 사건, 윤석열 총장의 처가와 관련된 사안, 채널A 사건에서 보이고 있는 검찰의 극히 미온적인 수사 태도와 비교해 보면 '비례와 균형'이라는 말은 설 자리가 없다.

전방위적, 압도적, 그리고 매우 정치적인 검찰의 수사
 

2019년 9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조국 법무부 장관 자택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 관계자들이 입구를 빠져 나와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둘째, 검찰의 수사는 그 시기, 방법, 의도에서 매우 정치적이었다. 검찰의 강제수사가 장관 인사청문회 전에 전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검찰 수사가 청문회 과정을 압도하려는 적극적인 '정치행위'였다.

게다가 정경심 교수에 대한 1차 기소는 정 교수에 대한 조사도 한 번 없이 인사청문회 당일 한밤 중에 이뤄졌다. 그리고 기소가 발표된 자정 이전에 이미 야당 쪽으로 사전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법사위 야당 의원들은 인사 청문회 후반부 "정경심 교수에 대한 기소가 이뤄질 경우 조국 장관 내정자는 사퇴할 것인가"라면서 사퇴를 압박하는 질문을 쏟아냈다.

셋째, 검찰의 시각, 검찰의 주장, 검찰의 프레임에 갇힌 검찰발 기사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확인되지 않는 일방적 검찰 기사들이 '단독' '속보'의 이름을 내걸고 홍수를 이뤘다. 단군 이래 가장 많은 양의 기사가 최단시간에 쏟아져 나왔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거의 8개월 전, 나는 이 시리즈 3회분 <조국이 '정말 참기 어렵다'고 한 기사, 내가 분석해 봤다'>라는 글에서 9월 23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딸 서울대 인턴증명서, 조국 '셀프 발급' 의혹'과, 같은 날 한국일보 1면 머리기사 '검, 정경심 소환 불응에 체포영장 최후통첩' 두 기사를 소개했다.

둘 다 사실과 다른 오보였다. 9월 23일 하루 치 기사, 그것도 1면 머리기사가 이런 정도였으니, 그동안 쏟아져 나온 검찰발 기사들이 얼마나 검찰의 일방 주장을 옮기는 왜곡되고 편향된 것인지, 한 단면을 보여준다.

국민청원 대상이 된 SBS 보도

지금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SBS 거짓보도에 공식 사과 요청 및 이아무개 기자 처벌 요청'이 올라와 있다. 이달 4일에 국민청원 사이트에 오른 이 청원에는 지금 7만 2000명 넘는 이들이 서명을 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노무현 대통령님 논두렁 시계 기사뉴스 조작 방송을 하고 공식 사과 한마디 없던 SBS에서 또 다시 정경심 교수님의 PC에 총장 직인이 파일 형태로 발견되었다면서 '단독'이라고 큰 소리치며 보도했습니다. 검찰은 이걸 빌미로 정경심 교수와 가족들을 수 개월간 괴롭혀 왔습니다...

논두렁 시계도 그렇고, 총장 직인 파일도 그렇고 SBS 그 외 언론사들의 가짜뉴스를 이렇게 스스럼없이 쏟아내는 것은 아무런 제재나 처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진상규명, 공식 사과 방송, 이아무개 기자 등 거짓 기사를 쓰는 언론인 처벌 등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했다.

검찰과 언론의 주홍글씨 효과
 

2008년 7월 19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 PDF

 
나는 언론과 검찰, 이 둘의 일심동체적 공생관계를 직접 겪어 보았다. 2008년 9월, 죄목도 무시무시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기소되기도 전에 나는 언론에 의해 이미 중죄인으로 낙인찍혔고, 나의 인격은 여지없이 파괴되었다.

기소되기 한 달 반 전에 이미 조선일보는 "KBS 정연주씨, 사장 더 하려 국민에게 1500억 원 손해 끼쳤나"라는 사설을 실었다. 기소되기도 전에 수구언론은 나를 그렇게 중죄인으로 확정지었다.

이런 주홍글씨의 낙인 효과는 컸다. 2008년 8월 KBS를 떠난 뒤, 그리고 기소되기 전인 그해 8월 말, 대학 동기 한 명을 만났더니 그런 이야기를 했다. KBS 사장 계속 하려고 그렇게 무리한 짓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재판은커녕 기소되기도 전에 나는 중죄인, 파렴치범이 되어 버렸다.

검찰과 언론의 합작에 의해 중죄인, 파렴치범으로 낙인찍혔을 때 견디기 힘든 것은 직접적인 가해행위뿐 아니라 "아닌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주변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였다.

재판이 열렸으나... 검찰 일방의 이야기는 그대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2월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대비 전국 지검장 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유성호

 
검찰 수사단계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방적 이야기가 재판이 벌어지면 조금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재판이 시작되면 검찰은 오로지 한 쪽의 당사자일 뿐, 수사단계에서 정보를 독점한 우월적 지위자가 더 이상 아니다. 검찰의 주장, 검찰의 기소 내용은 변호인와 피고인의 다른 주장에 의해 자주 뒤집힌다.

그러기에 재판이 시작되면 검찰과 변호인 양쪽의 균형 잡힌 주장과 뉴스가 나오리라는 기대가 있어 왔다. 그러나 진실과 공정이라는 저널리즘 기본을 뒤로 내던진 채, '단독' '속보'의 클릭 장사를 하고, 또한 정파적 시각으로 사물을 재단하는 다수의 한국 언론 행태를 보면 그건 지나친 기대인 것 같다.

실제 지금 정경심 교수 재판 과정에서도 일방적 보도 경향은 분명하게 보인다. 오전 재판에서는 주로 검찰 신문이, 오후 재판에서는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오전 검찰 신문 내용과 공소 사실이 여전히 기사들의 주를 이룬다. 오후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뒤집히거나, 오전 주장의 근거가 무너지는 사례들이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반영한 기사는 그리 많지 않다.

오전 재판 때는 꽤 많은 기자들이 재판을 지켜보다가 오후 재판에서는 그 숫자가 크게 줄어드는 모양이다. 마감 시간 때문이라느니, 제작 과정에 쫓기기 때문이라느니 하는 현실적 한계를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세상에나, 이게 기자들이 할 소리인가. 그런 '현실적 한계' 때문에 왜곡되고 마는, 그래서 어느 일방의 이야기만 전달되는 결과는 누가 책임지는가. 왜곡보다는 침묵이 천 번 만 번 나은 법이다.

다수의 기성 언론이 이런 행태를 계속 보이는 한편으로 혼자서 하루 종일 재판을 지켜보는 1인 유튜버들이 등장하였고, 이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게다가 재판이 끝난 뒤 피고인 측 변호인이 전하는 브리핑 내용이 유튜브를 통해 생생한 육성으로 가감 없이 전달되고 있다. 기성언론의 한계와 종말적 상황에서 태어나고 있는 새로운 언론 풍경이다.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한 디지털 신세계는 한쪽으로 치우친 보도의 실체를 비춰 보여주는 거울의 역할도 한다. 이런 가운데 일부 언론이 전체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모습은 희망적이다. 그런 보도가 당연한 것인데, 그것이 희망으로 보이는 것이 바로 오늘 한국 언론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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