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34
원고료로 응원하기
본문듣기 등록 2020.05.06 12:38 수정 2020.05.06 14:03

펜실베이니아 주의 프레스크 아일 주립공원. ⓒ 강인규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도 호수로 출근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이 닫힌 이 곳에서, 여전히 열린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글 쓰고 책도 읽다 돌아갑니다.

저는 지난번 미국의 코로나독감 상황을 전하면서, 미국이 한국과 이탈리아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미국이 어느 길로 갔는지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글을 쓴 지 두 주만에 미국은 확진자와 사망자 모두에서 세계 최대의 피해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관련기사 : [미국서 띄우는 편지] 힘내세요, 한국이 다른 나라의 희망입니다 http://omn.kr/1n10l)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4월말을 기점으로 사망자 증가세가 누그러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매일 2-3만 명대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고, 하루에도 1-2 천 명대의 미국인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요. 게다가 몇몇 주들이 성급히 경제 재개를 시도하면서, 확진자가 다시 느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5월 5일(현지시간) 미국 확진자 수는 124만 명에 달하고, 사망자는 7만 2000명을 넘어섰습니다. 미국의 확진자 수는 세계 2~6위인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을 모두 합한 뒤 중국 확진자까지 더한 것보다 많습니다. 미국의 확진자 수는 전 세계의 3분의 1, 사망자는 4분의 1 이상을 차지합니다.

현재 제가 강의하는 대학을 포함, 미국 내 거의 모든 학교가 봄학기는 물론 여름학기까지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 상태입니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가을학기도 교실수업을 못 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교실 수업 재개를 고려하고 있는 한국 상황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차이는 코로나독감 대처에 대한 두 나라의 상반된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는 100만 명당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비교해 보면 뚜렷이 드러납니다. 미국의 100만 명 당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각기 3700명과 210명이 넘습니다. 확진자는 한국의 17배, 사망자는 무려 42배에 달합니다. 
 

미국 확진자 증가 추이. 4월 중순부터 감소하던 확진자 증가세가 같은 달 말부터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볼 수 있습니다. ⓒ Worldometer

     
'마스크 필요 없다'던 보건당국

미국이 최악의 진원지가 된 것은, 부실한 공공의료체계와 더불어, 늑장 대처와 정책 혼선이 되풀이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스크 착용 문제 하나만 봐도 그렇습니다. 미 보건당국은 일반인이 마스크를 써야하는지에 대해 체계적 지침 하나 내리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4월 초까지도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공식입장은 '마스크는 환자와 의료진만 쓰면 된다'였습니다. "일반인들은 아예 마스크 사지 말라."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가던 2월 말, 연방 공중보건국장(Surgeon General)이 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요구한 내용입니다. 그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습니다.

"마스크는 시민들의 코로나독감 예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모두가 마스크를 찾는 바람에 의료진이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게 되면 이들 목숨과 공동체 모두가 위험해진다."

모든 시민이 마스크를 쓰는 게 불필요한 정도를 넘어, 공중보건에 해가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이미 2월 중순에 미국의학협회저널에 '무증상 전파' 가능성을 제기한 논문이 발표되었기 때문입니다.

'환자'와 '건강한 사람'이 증상만으로 잘 구분되지 않는다면 '환자만 마스크를 쓰면 된다'는 말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확진자가 마스크를 쓰는 게 타당하다면, 만일을 위해 모두가 쓰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마스크 수급은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입니다. 의료진이 쓰기도 부족한 방진마스크를 일반인이 착용하는 게 불필요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고성능 마스크는 의료진에게 양보하고, 시민들은 수술마스크(덴탈마스크)나 필터 교체가 가능한 천마스크 등을 쓰라고 말입니다.

마스크는 자신이 감염되는 것을 막는 예방의 목적 이외에, 내가 남에게 감염시키는 것을 막거나 늦추는 차단의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방진마스크 외에 어떤 재질의 어떤 마스크가 일반인에게 유용한지 말해줬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보건국장은 마스크의 종류나 재질도 구분하지 않은 채 그냥 '효과 없으니 쓰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관련,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회동한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한국 구청만도 못한 미국 보건당국

당시 한국에서도 방진마스크 외에 수술마스크나 면마스크도 예방효과가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를 밝히기 위해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은 마스크 성능을 검증 시험을 했습니다. 제가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은 시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었습니다.

올 2월에 서울의 한 부녀회가 마스크를 직접 만들어 이웃에게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제 마스크가 정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이를 검증해 줄 수 있는지 강동구청에 문의했습니다. 그리고 구청 측은 검증을 시의 전문기관에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 필터를 교체할 수 있게 만들면, 수제  마스크도 공인된 보건용 마스크(KF80)만큼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다. 
 

3월 4일 오후 서울 강동구청에서 자원봉사자로 나선 강동구새마을부녀회 및 주민들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면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강동구는 이날부터 한 달 동안 필터를 넣어 사용할 수 있는 면 마스크 2천개를 제작해 관내 어린이집, 복지시설 등에 전달할 예정이다. ⓒ 연합뉴스

 
부녀회의 성의와 정성이 놀랍고, 그 민원을 적극 수용한 강동구청 역시 칭찬 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정치적 의사결정뿐 아니라,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데도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준 탁월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방역 성과를 거둔 것이 결코 우연이나 운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는 일개 구청이 확인해 알려준 내용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보건당국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마스크 무용론'을 편 것입니다. 그러던 이들이 4월 초에 갑자기 '마스크 착용 권장'으로 입장을 선회합니다. 이미 미국이 확진자 수에서 중국과 이탈리아를 제치고 최대 피해국으로 부상한 뒤였습니다.

물론, 입장을 바꾸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감염과 전파 과정이 상세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새로 드러난 사실을 반영해 정책을 선회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고, 정책의 방향이 결정된 후에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미 보건당국은 이중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4월 3일에는 백악관에서 마스크 착용에 대한 브리핑이 열렸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자리에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질병통제예방센터의 권고에 따라, 시민들의 마스크 착용을 공식 권장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무증상 환자로부터의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꼭 안 해도 돼요. 난 안 할 거예요." 
   

'마스크를 쓸 필요없다'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공식 입장은 4월 초 '마스크 착용 권장'으로 바뀌었습니다. ⓒ CDC

 
이제 티셔츠 잘라 마스크 만들라고?

혼란스러운 메시지의 연속이었지만, 뒤늦게라도 마스크 착용을 제안한 것은 진일보 한 것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인터넷에 '마스크 착용법'을 올려놓았습니다. 주름 잡힌 아코디언 모양의 수술마스크를 예로 들며, 코에 닿는 부위의 철사를 눌러서 공기가 새지 않게 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문제는, 당시 이런 마스크 구하기조차 하늘의 별따기였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일반인이 방진마스크를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단 재고가 없기 때문에 구할 수 없고, 설사 있다고 해도 의료종사자가 아니면 판매하지 않습니다. 구입 가능한 것은 수술마스크나 천마스크 뿐인데, 이것조차 구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아마존, 월마트, 이베이 등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대다수가 중국에서 배송되는데, 도착하는 데 한 달이 족히 걸립니다. 운이 좋다면, 중국산 마스크를 대량 구매해 둔 판매자나, 집에서 수제품을 만들어 파는 상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배송시간은 짧지만 품질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돈만 받고 물건을 보내지 않는 사기 사건도 종종 일어납니다.

이 사정을 모를 리 없는 보건당국이 대책을 내놨습니다. '없으면 직접 만들어 쓰라'는 것입니다.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자상하게 제작법을 인터넷에 올려놓았습니다. 모두 세 가지인데, 천을 재단한 뒤 재봉틀로 만드는 방법, 손수건을 접어 고무줄 두개를 거는 방법, 그리고 꿰매지 않고 가위질만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저 역시 마스크가 필요했기에 이 요령들을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일단 첫 번째는 현실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 재봉틀 먼저 주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아무리 봐도 얼굴에 오래 걸려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은 세 번째뿐인데, 이 방법은 '체면'은 둘째 치더라도, 차단효과를 장담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결국 세 가지를 모두 포기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마스크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위해 학교 도서관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부직포 가방이 희생되었습니다.)
 

미 보건당국이 제안한 마스크 제작법에는 티셔츠를 잘라서 만드는 방법도 포함돼 있습니다. ⓒ CDC

 
'국뽕'이라고요? 글쎄요

미국의 상황을 불평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 미국의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주정부들이 나서서 적극 대처했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닫고, 극장, 놀이공원, 술집 등 '비필수적인' 업소들을 강제 폐쇄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를 내린 것도 주정부였습니다.

제가 사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경우, 슈퍼마켓 등의 실내 공간에서는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합니다. 이처럼 지역차원의 대응이 없었다면, 미국의 피해는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초반에 신속하고 단호히 대처했다면, 희생자와 경제적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펜실베이니아 주의 한 슈퍼마켓 체인.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한쪽 방향으로 이동하는 '일방통행' 제도를 시행 중이다. ⓒ 강인규


미국은 현재 또 다른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미완의 상태에서 '경제 재개'의 시동을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량 확산 없이 경제의 숨통을 틔울 수 있을지, 상황이 급속히 악화해 미래를 모를 폐쇄와 차단의 과거로 회귀할지 말입니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사태를 겪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 강박을 훌훌 털어내도 좋을 뿐 아니라, 이미 털어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일각에서는 성공적 방역에 자긍심을 느끼는 시민들을 '국뽕'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이 표현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뽕'이란 무비판적 민족주의를 우스갯말로 표현한 것인데, 공동체의 성취에 자부심을 갖는 게 왜 나쁜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을 맹목적 국가주의로 판단하는 것은 자기냉소일 뿐 아니라, 매우 빗나간 분석입니다. 한국 시민들이 느끼는 성취감 속에는 코로나 방역 일선에 뛰어들어 헌신한 의료진에 대한 존경과, 서로 나누고 격려한 이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 국가주의에 대한 학술논문을 기고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개발주의 시대에 주입된 '선진국'이라는 허위 관념을 비판적으로 고찰했습니다. '이제 겨우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는데, 허리띠 더 졸라매야….' 과거 권위주의 정부는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서구국가와 (부당하고 부정확한) 비교를 요구하는 동시에, 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억압했습니다.

한국인에게 '선진국'은, 남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자기 타자화' 기제이며, 다가서면 물러나는 신기루였습니다. 이제 한국인들은 더 나은 것을 갖기 위해 꼭 북미와 서구를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강박의 틀을 깨고 더 나은 것을,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실현할 자유를 얻은 것이지요.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참석자들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료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다. 덕분에 챌린지는 인스타그램 등 SNS에 '존경'과 '자부심'을 뜻하는 수어 동작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고 '#덕분에캠페인', '#덕분에챌린지', '#의료진덕분에' 등 3개의 해시태그를 붙이는 국민 참여 캠페인이다. ⓒ 연합뉴스

 
한국이 '선진국' 강박을 털어내도 될 이유

물론, 우리에게는 또다시 싸워가야 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천 화재사고에서 또 드러났듯, 생명보다 비용을 더 두려워하는 잔혹한 기업행위와, 이를 용인해 온 정치권의 공모행위입니다. 아울러 '위험의 외주화'로 요약되는 하청노동자와, 아예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안전한 일터와 안정된 삶을 위해서도 연대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뽕'이라는 냉소가 부당한 이유는, 한국인 대다수가 건강한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은 실정으로 얼룩진 신권위주의 정부를 탄핵했고,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면서도 일상화되었던 성폭력에 맞서 진일보한 입법을 이뤄냈습니다. 한국 시민은 자부심을 가질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숙제들 역시 하나하나 해결해 가리라 믿습니다.

이제 한국이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조심해야 하는 시기이겠습니다만, 한국인은 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부럽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댓글3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