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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4.29 13:46 수정 2020.04.29 13:46
위기는 극복되더라도 상처를 남긴다.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지나는 동안에도 어떤 사람들은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니고 살던 집에 계속 살았다. 금모으기 운동 참 대단했다고, 그렇게 온 국민이 똘똘 뭉친 덕분에 잘 이겨냈다고 기분 좋게 그 때를 추억할 수도 있다. 그런 한편, 위기를 잘 넘기지 못 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충격이 너무 커서 그대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 삶이 무너지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꿈은 절망이 됐던 사람들, 그리고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위기가 남긴 상처가 깊었다는 것은 그 이전과 이후로 한국사회 전반의 지향점이 달라졌다는 데서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안정성'에 대한 강력한 집착이다. 직업 선택에서 이 경향은 뚜렷하게 보인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개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감성으로 인해서 진로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듯 했다. 이런 흐름은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확 줄었고 의사, 교사, 공무원의 인기가 치솟았다. 이전에도 인기가 있던 직업들이기는 하지만 이 때 이후로는 기형적이라 할 정도로 쏠림이 심해졌고, 지금까지도 계속 그렇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7년 실시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 중 'IMF 외환위기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한 응답. ⓒ 황세원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는 해외 유학, 해외 취업을 지향하던 기세가 확 꺾였다.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영미권 명문대를 나와도 고소득 직종에 진입하고 그 사회의 주류로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던 인력들도 대거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두 번의 위기가 지나고 남은 것은 더욱 극심해진 국내 입시 경쟁이고, 수십 만 명의 공시족이다. 그리고 안정된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 하면 극도로 비참해질 수 있다는 공포, 그런 경우에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각자도생 법칙에 대한 깨달음이다.

위기는 안정성에 대한 집착을 남긴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COVID-19) 위기는 어떤 결과를 남길까. 다행히 선제적인 방역과 현장 전문가들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기여로 인해서 우리나라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나아 보인다. 선망해 온 선진국들에 비해서 우리의 시스템이, 실력이, 시민의식이 뒤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남긴 사건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앞의 두 위기 때 나타난 현상은 이번에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안정된 일자리'를 차지해야만 한다는 강박, 그리고 여기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 한 사람들에 대한 관용 없는 태도, 이 두 가지가 엉겨서 만들어내는 양극화 말이다.

로버트 라이시 미국 UC 버클리 교수(전 노동부 장관)는 지난 26일 영국 매체 <가디언>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 코로나19 사태로 미국 사회에 4가지 계급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 계급은 원격 근무를 할 수 있는 사람들(The Remotes)이다. 전문가, 관리자, 기술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미국 전체 노동자의 35% 정도를 차지한다. 이들은 노트북 컴퓨터와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업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임금을 받는다. 좀 지루하고 걱정은 되겠지만 다른 세 계급에 비하면 아주 괜찮은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계급은 필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The Essentials)이다. 미국 노동자 중 30% 정도에 해당되는 사람들로 간호사, 돌봄 노동자, 농부, 식품 생산과 물류, 의약품, 위생 관련 노동자들, 경찰, 소방관, 그리고 군인들이다. 이들은 위기 상황에서도 계속 일을 하므로 생계는 유지할 수 있지만 위험에 노출된다. 감염을 막아 줄 보호장구는 부족하고, 아파도 쉬기 어렵고, 학교들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자기 자녀들은 돌봄 공백에 놓인다.  

세 번째 계급은 임금을 받지 못 하는 사람들(The Unpaid)이다. 이번 위기 속에서 무급휴가를 받았거나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로, 대면 서비스를 하는 소매점과 식당 등 직원들로부터 신생 기업들, 테크 기업들, 소비재 제조업체 노동자들로까지 확대돼 가고 있다. 이 비중은 전체의 25%에 육박한다. 그리고 마지막인 네 번째 계급은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The Forgotten)이다. 교도소와 불법체류자 수용소,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민 노동자들의 숙소, 원주민 보호구역, 노숙인 쉼터와 요양소 등에 있는 사람들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거의 불가능한 환경에서 밀집해 있어 감염 위험이 높다.

지금은 입시 경쟁이 심해지는 중

우리나라의 상황도 대체로 비슷하다. 안정된 일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받던 월급을 계속 받고,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경험도 하는 동안 그 밖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협받는다. 정부는 '고용안정 특별대책'이라는 것을 발표하고 고용안정지원금 등을 통해서 최대한 일자리를 지켜준다고 하는데, 그 대상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는 사람들이고 보통은 안정된 일을 해온 사람들이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다. 불안정하게 일 하던 사람들은 이런 혜택도 받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현실을 목도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첫 번째 계급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꼭 대기업 정규직이 아니어도 좋으니 자유로운 일을 하고 싶다던 사람들, 월급이 적어도 좋으니 나다운 일을 하겠다고 용기를 내던 사람들, 수가 많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분명한 방향을 가졌던 이 사람들은 요 몇 달 사이에 인생 행로를 크게 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 위기 때마다 많은 청년과 청소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또는 '나는 늦었다면 내 자식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첫 번째 계급에 들어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어쩌면 입시 경쟁이 더 극심해지는 중, 더욱 더 각자도생 사회가 되는 중인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계속 가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이미 우리가 겪어온 그 문제들이다. 입시는 부동산과 연결돼 있고, 지역 불균형 발전으로 이어진다. 이는 일자리 불균형과 연결되며 다시 입시 문제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진다. 안정성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 부모 세대의 자원까지 털어서 넣는 동안에 노인들의 노후 안정성이 위협받고, 돌봄을 가족 내에서 감당할 수 없어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정부가 얼마 전부터 '커뮤니티 케어'와 같이 공동체 안에서 돌봄이 이뤄지는 시스템을 제안하고 나선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것이다. 문제는, 각자도생으로 살아오는 동안 공동체가 거의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커뮤니티가 없는데 어떻게 커뮤니티 케어를 한단 말인가? 안정성을 얻으려고 모두가 발버둥치는 동안 다른 쪽의 안정성이 사라져 왔던 셈이다.
 

경기도가 1인당 10만원씩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현장 신청이 시작된 지난 20일 오전 경기 수원시 권선1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접수창구 앞에 시민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다. ⓒ 연합뉴스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안전망

코로나19 위기가 남길 상처로 이런 문제들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을까? 그러지 않게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다행히 지금은 이전 어느 때보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높다. 재난지원금을 선별적으로 지급하려다가 보편 지급으로 선회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국민들에게 진짜 필요한 지원을 하기 위해 고민하는 정부가 존재한다는 점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정부가 꼭 해야 할 일, 나중까지 생각해서 지금 해야 할 일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은 수십 수백 가지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한 가지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긴급 재난 지원이 필요 없는,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에도 이미 우리 사회에는 일을 하면서도 불안정한 사람들, 성실하게 살지만 한 번 삐끗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떨어질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각자 다른 날 맞닥뜨렸던 위기들은 결코 외환위기, 금융위기, 이번 바이러스로 인한 위기보다 작다고 할 수 없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마다 삶을 포기해왔다는 것을 높은 자살률이 보여준다.

그들에게는 재난지원금이 없었고, 고용안정지원금이 없었고, 확대 적용되는 실업급여가 없었다. 특수형태고용노동자와 프리랜서들까지 포괄하는 긴급 지원금, 대학생들을 위한  등록금 지원이 없었다. 아파서 쉬는 동안의 비용과 치료비를 정부가 온전히 부담해주는 일도 없었다. 그러니까 힘들 때 정부가 도와준다는 '안정감'이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전례 없이 시도됐던 지원들이 앞으로도 유지되도록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는 점을 '뉴 노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차피 전일제, 지속고용, 집합근무를 은퇴 시점까지 쭉 하는 사람들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대규모로 노동자를 고용하던 산업이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옮길 수 있다.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될 수 있다. 기술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한동안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데 시간을 들일 수도 있다. 일정 기간 일을 안 하고 지낼 수도 있다. 임금노동 없이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일들을 하면서 살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모든 경우를 일상적인 일로 여겨야 한다. 온전한 가난 또는 '일 할 수 없는 상태'임을 증명하는 사람만을 선별해서 지원하는 복지 체계는 이런 사회에 맞지 않으므로 새로운 복지 체계를 짜야 한다. 이를 지탱할 수 있도록 세금 체계도 고쳐가야 한다.

몇 달 전에 이런 얘기를 했다면 아마도 정부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는 말을 들었을지 모른다. 우리나라가 무슨 복지국가라도 되느냐는 말도 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아니다. 긴급 위기 대응을 할 수 있는 정부라면 일상적인 위기 대응을 위한 시스템도 만들 수 있다. 복지국가로 이름난 나라들보다 우리가 뭘 못 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런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만 하다면, 어쩌면 이번 위기는 상처를 남기는 게 아니라 희망을 준 변곡점이었다고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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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기자,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홍보팀장으로 일했고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에서 사회적경제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LAB2050 연구실장으로 일하며 '좋은 일'을 주제로 연구해 왔다. 현재는 일in연구소 대표이며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