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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4.07 20:31 수정 2020.04.07 20:31

당신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 무엇을 공유하려 합니까? 그의 나이, 고향, 출신 등을 공유하려 든다면 무척 고루하고 위험한 시도다. 그 물음 하나만으로도 상대방을 순식간에 멀어지게 할 수 있다.

가장 자연스럽고 안전한 방법은 지금 함께 마시고 있는 차나 술의 향기와 맛을 공유하는 것이다. 향기와 맛은 모두가 느낄 수 있고,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고, 정해진 답이 따로 있지 않아서 연기처럼 가볍게 공유할 수 있다. 그 가벼움이 당신을 세련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향기와 맛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
 

술의 색과 향과 맛을 보다. ⓒ 막걸리학교

 
맛이 어떠냐고 물으면, 있다 없다라거나, 좋다 안 좋다고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단순하고 무심하다. 작은 사물에 눈길 줄 겨를 없이 아주 바쁘게 살아온 사람이거나, 맛 따위는 상대방과 공유할 의지가 없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기 십상이다. 사물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마음의 여유도 있는 사람이라면, 맛을 형용하려 들 것이다. 맛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달콤하다거나, 은은하다고 표현할 것이다.

흔히 맛은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매운맛이 사전적인 오미인데, 요사이는 매운맛 대신에 감칠맛을 꼽기도 한다. 오미 중에서는 단맛과 신맛의 폭이 넓어서인지, 그에 관련된 어휘들이 풍부하다.

단맛의 어휘를 좀 낱낱이 열거해보면, 다디달다, 달콤하다, 달곰하다, 달큰하다, 달큼하다, 달금하다, 달차근하다, 달착지근하다, 달짝지근하다, 달달하다, 달보드레하다, 들큼하다, 들부드레하다, 들쩍지근하다, 들척지근하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신맛의 범위도 넓어서 시어터지다, 시디시다, 시큼털털하다, 시쿰하다, 시큼하다, 새콤하다, 새큼하다, 새금하다, 새치근하다, 시치근하다, 새지근하다, 시지근하다, 새척지근하다, 시척지근하다 등 다양하게 나뉜다.
 

식물 속에서 향수를 추출하고 있는 실험실, 홍대앞 젠틀몬스터의 홍보매장에서. ⓒ 막걸리학교

 
이 어휘를 모두 적용해서 맛을 느껴보기란 쉽지 않다. 미각 어휘가 풍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표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만 형용사의 사용은 개개인이나 공동체의 경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또 형용사만으로는 정확하게 맛을 전달하기 어렵다.

향과 맛을 좀더 세밀하게 표현하려고 고민해본 이라면, 어떤 사물에 비유하거나 추억을 실어 표현한다. 어느 자리에선가 술을 마시면서 상대에게 맛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제비 둥지를 털어서 맛본 듯하다"고 답했다.

제비 둥지를 맛본 적은 없지만, 그 맛이 어떠한지는 알 것 같았다. 제비집이 흙과 지푸라기로 구성되어 있으니, 흙맛과 짚맛이 돈다는 뜻이겠다. 향과 맛을 연상되는 사물에 실어 표현하니 쉽게 이해되고 재미있었다.
  
향과 맛의 표현을 체계화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커피 아로마휠, 와인 아로마휠, 맥주 플레이버휠(Flavor wheel)들이 있다. 전문 바리스타나 소믈리에들은 반드시 참조하는 표인데, 미각과 후각에 관심있는 이들도 참고할 만하다.

그렇지만 그 원형 표를 보면서 한국인이라면 낯선 개념어들에 당황하게 된다. 깎은 잔디 냄새, 말안장 냄새는 상상이 되지만, 젖은 양모나 제랴늄향이나 정향나무향은 쉽게 떠오르지가 않는다.
 

국립농원과학원에서 만든 전통주 플레이버휠. ⓒ 국립농업과학원


그런데 와인 아로마휠이나 맥주 플레이버휠을 보고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최근에 국립농업과학원 발효가공식품과에서 전통주 품질평가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전통주 플레이버휠'을 만들었다.

국립농업과학원의 표현을 빌면, "우리 전통주의 맛과 향을 한국인이 쉽게 연상할 수 있는 단어로 표현"하고, "향기와 맛을 떠올릴 수 있는 단어들을 유형별로 묶어 원형의 판에 체계적으로 배열"했다.

전통주 맛 향기 원형판의 대분류는 미각과 후각으로 나누고, 미각의 상위 항목은 두 가지인 입안 감촉과 맛으로 나누고, 후각의 상위 항목은 열한 가지인 꽃, 과일, 곡물, 견과류, 한약재, 풋내, 단내, 향신료, 유제품, 발효, 불쾌취로 나누었다. 미각의 하위 항목에 열네 개의 개념을 배치하고, 후각의 하위 항목에 아흔한 개의 개념을 배치해서 둥근 판을 만들었다.

흥미롭게도 이 원형판에는 외국 술에서 맛 볼 수 없는 한국적인 개념어들이 들어 있다. 감초, 대추, 도라지, 쑥, 황기 등의 한약재들이 들어가 있고, 간장, 메주, 누룩도 발효향의 범주로 들어가 있다. 고슬고슬하게 갓 지은 밥이나 밥솥에 누른 누룽지 향에서는 우리의 일상과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무엇을 공유할 것인가? 떠오르는 게 없다면, 당신 앞에 놓인 잔 속에 담긴 음료가 되었든 술이 되었든 그 향과 맛을 공유해보라. 그 맛을 보면 연상되는 사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물은 내가 언젠가 맡아보았거나 맛본 적이 있는 추억 속에 존재한다. 그 추억은 어느 시간과 어떤 공간을 불러낼 것이고, 새로운 이야기도 함께 불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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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