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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3.17 08:33 수정 2020.03.17 08:33
 

9일 오전 대구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 비상대책본부 앞에 시민들이 보낸 다양한 응원메시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조금씩 유행하기 시작했던 초창기만 해도 불안감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국내에서 확진자가 조금씩 발견되고 있었지만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에 확진자들은 내가 거주하거나 주로 생활하는 지역과는 비교적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런저런 뉴스가 전달되던 주말 나는 번화가에서 영화를 보고 밥을 먹었는데 극장은 사람들로 만원이었고 식당의 점원들은 아직 마스크를 끼기 전이었다.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과 달리 감염자 수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고 점차 나의 생활권 부근에서도 등장했다. 급기야 내가 이용하는 피트니스 센터에 확진자가 방문했고 센터가 2주간 폐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혼란한 시국에는 일부러라도 평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다짐했지만 마음의 동요는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일하던 사무실도 재택근무를 결정했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부근에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이 방문했다는 재난알림 문자가 울렸다. 근처의 망원시장은 확진자가 방문한 이후 이틀간 폐쇄를 결정했다.

점차 나 또한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되었고 그러자 두려워졌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이 사무실에 바이러스를 전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우리 사무실은 총 네 개의 단체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는 바이러스가 한번 퍼지면 네 개의 단체가 한 순간에 활동을 중지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그런 맥락을 떠나서라도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내가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재택근무까지 하는 건 너무 유난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지 딱 한 달만의 상황이었다.

'전파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결국 약 2주 정도의 재택근무 기간을 지나 회의를 할 겸, 다들 안녕하게 잘 지내는지 확인할 겸, 나와 동료들이 다시 모였다. 우리는 지금의 이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집에 떨어져 드는 생각과 감정을 속으로만 삭이던 우리에게 너무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전파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나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재택근무에 동의했던 동료들은 '내가 사는 동네도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안전한 곳이 아닌데, 괜히 사무실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낯선 바이러스를 향한 두려움 앞에서도 다른 사람을 먼저 걱정하는 그들의 모습이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지금까지 공유된 정보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기저질환을 이미 가지고 있거나 면역력이 낮지 않은 이상 감염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가능성은 극히 낮으니 말이다. 감염된 사람 중 80%가 경미한 증상을 앓았고 비교적 젊은 세대의 경우 증세가 거의 없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의 상황이 우리 이타심을 모조리 잃을 만큼 극단적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과연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쁘고 더욱 심각한 재난이 닥쳐왔다고 해도 우리가 지금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공포와 혼란 속에서 오로지 각자도생만을 생각하는 이들이 되었을까?

'재난'에 대한 통념과 다른 풍경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 겉표지 ⓒ 펜타그램

 
대규모의 재난과 이로 인한 공포와 혼란 속에서 오직 개인의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개인들, 이는 대재난을 상상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그림이자 재난 영화에서도 익숙하게 재현되어온 모습이다. 하지만 레베카 솔닛은 자신의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이러한 생각이 사실은 통념에 불과함을 주장한다.

이 책은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핼리팩스에서의 대규모 폭발, 독일군에 의한 런던 공습과 같이 20세기 초반에 벌어진 사건에서부터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뉴올리언스 홍수와 같이 비교적 근래의 대재난을 두루 살펴본다. 특히나 이 책은 재난의 참상을 기술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이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슨 일을 했는지를 충실하게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리하여 드러난 사실은 솔닛의 주장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가진 통념을 벗어난다. 이 책에는 재난 속에서 피어난 이타주의와 상호부조의 사례들로 넘쳐난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 곧바로 무료급식소를 만드는 사람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들, 위험에 빠진 재난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섬으로 몰려드는 보트들, 사고지역으로 달리는 기차를 멈추기 위한 전보를 보내기 위해 폭발의 한가운데로 뛰어든 사람들.

책은 단순히 흔히 말하는 '의인'의 사례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솔닛은 재난 속에서 개인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서로를 돌볼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원을 분배했는지를 관찰한다. 심지어 기존의 시스템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개인들은 이전과 다른 역할과 목적의식을 부여 받는 경우도 많았다.

오히려 우리가 아는 재난의 부정적인 그림은 '통념'에 사로잡힌 이들이 개입할 때 펼쳐졌다. '폭도가 된 군중'을 두려워한 나머지 군대를 투입하고 지역을 봉쇄해 사실상 재난 현장을 오도 가도 못 할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린 뉴올리언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흑인 폭도'에 대한 근거 없는 낭설과 허위정보는 무책임한 관료들과 언론을 통해 퍼져나갔고, 결국 재난 위에 인종차별 범죄까지 덮쳐지는 결과까지 만들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모습들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광주 남구 빛고을전남대학교 앞에 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구지역 환자의 쾌유를 기원하는 주민 펼침막이 걸려 있다. 광주는 병상 부족 문제를 겪는 대구를 돕고자 병상 공유에 나섰고 전날 7명의 대구지역 확진 환자가 빛고을전남대병원으로 옮겨졌다. ⓒ 연합뉴스

 
통념과 다른 상황은 과연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을까. 솔닛은 책에서 윌리엄 제임스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인용한다.

"일반적 불운의 날카로움은 고독이라는 특성에서 나온다"

그래서 솔닛이 적은 바와 같이 상실이 일반적인 일이 될 때, 우리는 고통으로 고립되는 대신 그 안에서 동병상련을 느끼게 된다. 이는 단지 '상실'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 불안, 위기감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러한 '동병상련'은 연대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아야 한다는 호혜의 마음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물론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하자 폭력적인 반응을 보였던 개인들, 특정 국가의 입국자들을 막아야 한다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은 언론을 통해 '혼란에 빠진 대중들'의 얼굴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이 보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들은 아직 '위기와 두려움'을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개인들이 아닐까. 마스크만 낀다면, 국경만 봉쇄한다면, 바이러스의 위협은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국면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은 더 이상 이 세계에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공간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같은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함께 이 위험을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같은 위험이 어떻게 개인들에게 다른 결과를 전했는지는 통찰해야 할 문제다. 특히나 사회적 취약계층이 더 많은 위험과 고난에 처한 상황에는 깊은 고민과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한 사람들, 동병상련을 느끼고 연대를 형성하고자 한 이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누군가는 더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마스크를 양보하자는 주장을 했다. 국경과 지역을 넘어 마스크와 구호물품이 교환되는 모습도 펼쳐졌다. 바이러스 확진자가 비교적 많았던 지역을 위해, 자기 지역의 병원을 개방하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재난 상황이면 늘 등장하는 십시일반의 기부행렬도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잦은 알코올 소독으로 손이 거칠어졌을 의료진들을 위해 핸드크림을 나누기도 했다. 나는 이런 모습들을 우리가 더 많이 적극적으로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재난 속에서 오직 개인들의 선량함에 기대자는 제안도 인간성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론도 아니다. 다만 솔닛이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주장한 것처럼 대규모 재난의 발생 주기는 점차 짧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진단하듯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얼마나 장기화될 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경험을 기억하며 그리고 사람과 사회에 대한 어떤 신념을 가지고 위기를 견뎌내야 할까. 나는 누구도 원하지 않은 재난 속에서도 그 질문에 대한 답만큼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 -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펜타그램(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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