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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3.04 08:36 수정 2020.03.04 08:36
 

2월 29일자 '진실의 수호자들' 이름아래 나온 특집 기사 <조선일보 100년은 불의한 시대와의 투쟁> ⓒ 조선일보 PDF

 
조선일보는 창간 100주년(3월 5일)을 맞아 올 1월 1일 신년호에서 '진실의 수호자들'이라는 특집 기사를 시작했다. 첫 글에서 "거짓으로부터 민주주의의 본질인 사실을 지키는 세계 각지 '진실의 수호자들'을 만났다"면서 "팩트는 모래 위에 구축된 모든 거짓을 무너뜨린다", "거짓은 진실보다 빠르게 암세포처럼 번진다"라는 말들을 인용했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 등 주요 언론사 저널리스트들, 대학교수들을 만나 그들이 한 말을 전한 것이지만, '진실의 수호자들'이라는 제목으로 특집 기사를 계속 내보내는 것으로 보아, 조선일보도 '진실의 수호자'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분명하다.

2월 29일자 '진실의 수호자들' 이름 아래 나온 특집 기사 '조선일보 100년은 불의한 시대와의 투쟁'에서는 "조선일보 100년은 시대에 저항하고 권력과 맞선 세월이었다"고 했고, 또 다른 특집 기사에서는 "3·1운동으로 태어나, 불의한 시대에 저항했다"고도 밝혔다.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진실의 시간'
 

1986년 11월 17일자 조선일보 호외로 나온 <김일성 총 맞아 피살>라는 제목의 기사 ⓒ 조선일보 PDF

 
조선일보가 100년 잔치를 벌이면서 내어놓은 자화자찬은 화려하며, 그들이 주장하는 '진실의 시간'은 차고 넘친다. 과연 그러한가. 몇 가지 '반 진실'의 사례만 보자.
 
#1. 1986년 11월 17일자 조선일보 호외. '김일성 총 맞아 피살' 제목의 호외는 '휴전선 방송'  '열차타고 가다 총격 받았다'  '전방 북괴군 영내에 일제히 반기 올려'  '군부 중심 심각한 권력 투쟁 진행중인 듯'이 주요 내용이다. 김일성 북한 주석은 이 호외 발간 후 8년 뒤 1994년 7월 8일 사망했다.

#2. 2013년 8월 29일 6면. "김정은 옛 애인 등 10여 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연인으로 알려진 가수 현송월을 포함해 북한 유명 예술인 10여 명이 김정은의 지시를 어기고 음란물을 제작 판매한 혐의로 지난 20일 공개 처형된 것으로 28일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처형당했다는 현송월은 2018년 2월 6일 140여 명의 북측 예술단 삼지연관현악단을 이끌고 북한 여객선 만경봉 92호 편으로 강원도 묵호항에 도착했다. 이후 2월 8일 강릉시 강릉아트센터 사임당 홀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기원 특별공연을 가졌고, 2월 11일에는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두 번째 공연을 가졌다.

#3. 2019년 5월 31일 조선일보 1면. "김영철은 노역형, 김혁철은 총살". 조선일보는 '대북 소식통'을 인용하여 "대미 협상을 총괄했던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도 혁명화 조치(강제노역 및 사상 교육)를 당했다고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보도 사흘 만에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공식 석상에 나타난 사진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함으로써 사흘 만에 오보로 밝혀졌다.

민주정부·민주화 세력에 대한 끝없는 저주, 증오, 분열의 행태

분단과 냉전체제의 이데올로기에 갇힌 조선일보에서 북한 관련 오보가 많은 것은 그다지 낯설지가 않다. 이런 보도를 하면서도 '진실의 수호자들'이라고 자처한다.

문제는 이런 '단순한 거짓'을 넘어 우리 사회에 훨씬 큰 해악을 끼치는 구조적 거짓, 언론권력의 오만, 강자와 수구기득권·분단 냉전 이데올로기, 민주정부·민주화 세력에 대한 끝없는 저주, 증오, 분열의 행태에 있다.

지난해 10월 24일 언론·노동·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이 출범하면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동아, 조선일보에서 해직된 언론인 모임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약칭), 조선투위는 아래와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영욕이 교차하는 조선·동아의 100년사를 한 줄로 정리하면 영예로운 날들은 짧았고, 거짓과 배신으로 점철된 치욕의 세월은 길었다...

우리 현대사의 굽이마다 간교한 곡필과 거짓으로 민족과 민중을 속이고 배신해 왔음은 그들의 지면이 웅변하고 있다.

박정희가 '10월 유신'을 선포할 때도, 그가 꼭두각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종신 대통령으로 선출될 때도, 긴급조치가 선포될 때도 그들은 독재정권을 미화하기에 바빴다...

유신 독재가 무너진 뒤 등장한 전두환 일당의 이른바 신군부에 대해서도 그들은 노골적인 추파를 던졌다... 조선일보는 전두환이 전군지휘관 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모든 국민이 크게 안도하고 고무되었을 것"이라고 낯 간지러운 교언영색으로 전두환을 찬양했다.

독재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찬가를 불러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은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자들의 권익 투쟁에 대해서는 싸늘한 시선을 보내거나 억지 논리를 동원해 비난했다...

그들은 사실 보도를 묵살하고 그저 침묵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면서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 일말의 가책도 없었다...

"압도적 행위가 부끄러운 과거"
 

책 <동아일보 대해부>와 <조선일보 대해부> ⓒ 정연주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은 또한 올해 1월 15일 조선, 동아일보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면서 '조선동아 청산이 언론개혁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1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잘한 일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수많은 역사적 기록들은 그 압도적인 행위가 부끄러운 과오로 더럽혀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계기'에 '결정적으로 선택한 보도행위'가 '반민족적' '반민주적' 과오였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특히 일제 강점기 암흑기에 우리 민중이 압제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해마다(1937년~1940년) 1월 1일이 되면 1면 머리에 일왕부처의 사진을 크게 싣고, 신문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려 놓은 채, 일제에 충성을 맹세했다.

'조선일보 대해부'(전5권. 문영희 김종철 김광원 강기석 공동집필) 서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조선일보는 '대정실업친목회'라는 친일단체의 간부 예종석 등이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창간을 주도한 '친일파 신문'이었다... 조선일보는 1939년 4월 17일 자 1면 사설에서 보는 이가 눈을 의심할 만한 내용이 들어 있다. "전쟁을 싫어하고도 평화를 얻을 수"는 없으므로 "한 번 경천동지의 전쟁"을 일으키라는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유럽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가는 길에 일본이 흔쾌히 가세하라는 뜻이다. 1940년 8월 폐간될 때까지 조선일보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별 차이가 없었다. 조선일보를 받아 들면 '천왕 폐하의 성은' '진충보국' '총후보국' '대동아 성전' 같은 말이 어지럽게 춤추고 있었다...

조선일보의 '친일 DNA'는 지난해 여름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문제를 비롯한 한일관계 갈등 때 두드러졌다. 1975년 3월, 조선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 모임인 조선투위는 당시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어느 나라 신문인가. 한국의 신문이 맞는가?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면서 묻고 있다. 조선일보는 일본의 수출규제문제를 둘러싼 한일관계에 대한 보도에서 노골적인 친일행태를 드러내면서 이 신문의 민족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공정성을 잃은 극단적인 편향보도는 한일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 주요 지면엔 악의를 담아 사실과 진실을 비튼 편향된 기사들이 끊임없이 실리고 있다...

조선일보의 초라하고 누추한 모습
 

2월 10일자 조선일보 <알립니다> ⓒ 조선일보 PDF


자랑스럽게 '진실의 수호자들'이라고 연일 지면 잔치를 벌이는 조선일보(그리고 중앙일보)가 코로나바이러스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을 때, 구독료를 자동이체하면 마스크 세트를 공짜로 준다는 광고를 게재했다. 마스크 사재기 행위를 스스로 자백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런 광고를 낸 바로 그날 조선일보 지면(2월 25일 자 14면. 사회면) 머리기사로 '마스크 사려고 난리인데... 정부는 마구 뿌리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인지부조화, 자기모순의 극치다.

'진실의 수호자들'을 외치면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일보가 이 엄중한 시기에 마스크 사재기나 하고, 그걸 '구독료 자동이체'의 미끼로 사용하는 모습이 초라하고 누추하기만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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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