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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2.25 20:49 수정 2020.02.25 20:49
 

강제철거되는 노량진 수산시장 노점상 굴착기가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의 노점상이자 농성장을 부수고 있다. 상인들이 키우던 고양이 2마리도 굴착기 잔해 더미 속에 빨려 들어갔다. ⓒ 박김성록

 

강제철거 이후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이 잔해 더미 위에 앉아있다. ⓒ 박김성록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모두가 존중받고 누구나 삶에서 차별 없이 살아가는 공정한 도시를 꿈꾸고 있다. 이 구청장은 "집 걱정, 밥 걱정 없이 모두가 인간적, 사회적, 경제적 품위를 누리며 살아가는 곳을 만들고 싶다"며 "궁극적으로 사람이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누구나 살고 싶고 머물고 싶은 동작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구청장님이 지난해 7월, 헤럴드경제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잊진 않으셨겠지요.

저는 이 말씀을 진심이라 믿고 싶지만, 지난 21일 금요일 새벽에 벌어진 일을 보면 진심이라 믿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구청장님 말씀은 거짓말에 가깝습니다.

그 새벽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누구보다 구청장님이 잘 아실 것입니다. 동작구청 직원 100여 명이 새벽 3시에 노량진역 1번 출구 앞으로 출근했으니까요. 고용된 용역 400명, 경찰 400명도 그 시각에 노량진역 앞으로 왔습니다.

투쟁 중인 구(舊)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 80여 명과 10여 개의 노점을 없애기 위해 추운 새벽에 약 천 명이 왔습니다. 구청장님이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서울시 조례에는 동절기(12월~2월) 강제집행(철거)을 하지 말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항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집행은 진행됐고 굴착기도 동원됐습니다. 

굴착기는 노점상을 부쉈습니다. 수산시장 상인들이 돌보던 고양이, 보름이와 달님이까지 잔햇더미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고양이들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고양이도 잃고, 일터도 잃은 상인들에게 용역은 말했습니다.

"계속 그렇게 집 없이 살아 씨XX들아.", "장바닥에서 굴러먹은 X들."

구청장님, 여기가 "모두가 존중받"는 동작구 맞습니까? "인간적, 사회적, 경제적 품위를 누리며 살아가는" 노량진 맞습니까? 

상인들이 노점상 차린 이유가 "집 걱정, 밥 걱정" 때문입니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 상인들은 강제철거 이후 다시 천막을 세우고 투쟁을 이어간다. ⓒ 박김성록

  
이 구청장은 "이같은 풍부한 자원을 활용해 노량진을 문화·상업의 중심지로 만들고 이를 거점으로 구 전역을 자족가능한 경제중심의 도시로 한단계 진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청장님이 지난해 4월에 아시아경제와 한 인터뷰 내용입니다. 노량진을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로 만드시겠다고요.

노량진을 문화·상업의 중심지로 만든 사람들이 수산시장 상인들입니다. 1971년부터 지금까지 노량진을 수산시장 명소로 만들었습니다. 어떤 동네가 장소성을 가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장소에서 살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장소성이 형성되고, 사람들이 오고 가고, 명소로 소문나고, 주변 상권까지 살아납니다. 그냥 구 시장 철거하고 리조트 뚝딱 지어 장소성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상인들의 50년 역사가 없었으면 노량진은 노량진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신(新) 시장 지어줬는데 안 들어가고 떼쓴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 재생할 때 원주민을 이주시키려면 수평 이동이 전제돼야 합니다. 이건 보상이 아니라 당연한 조치입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50년간 장사하면서 역사와 상권을 이렇게 만들어놨는데, 이사 가야 한다면 같은 조건으로 이사 가야 합니다. 상인들의 50년 노동의 가치를 무시할 게 아니라면요.

하지만 신 시장의 점포 면적은 구 시장보다 훨씬 좁아졌는데 월세는 약 2배가량 비싸졌습니다. 상인들이 반발하고 신 시장 입주를 거부하자 수협은 신 시장의 빈 점포를 경매로 넘겨버렸습니다. 새로운 상인들이 신 시장에서 장사하게 됐고, 끝까지 반발한 구 시장 상인들은 수평 이동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일터를 빼앗겨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누구나 "집 걱정, 밥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노점상을 차린 것입니다. 당장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하니까요.

또한 이 노점상은 투쟁 농성장과도 같습니다. 쫓겨났지만 떠날 수 없기 때문에 노량진역 근처에 노점상을 차려 '우리가 아직 여기에 있다', '우리는 쫓겨날 수 없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량진역을 오가는 서울시민과 동작구민에게 구 시장 상인들의 현실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구청장님, '노점상이 불법이니 밀어야겠다' 생각하시기 전에, "노량진을 문화·상업의 중심지로 만"든 구 시장 상인들이 어쩌다 "집 걱정, 밥 걱정"을 하게 됐는지를 먼저 생각해 주십시오. 구청장님이 이런 걱정 없는 동작구 만드신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쫓아내는 게 도시 재생입니까?
 

화분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의 노점상을 철거한 자리에 동작구청이 놓은 화분. ⓒ 은석

 
도시재생사업의 핵심은 주민이 떠나는 도시가 아닌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주민이 계속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번엔 지난해 10월, 아시아경제와 한 인터뷰입니다. 주민이 떠나는 도시를 만들지 않으시겠다고요.

상도 4동, 잘 알고 계시지요. 모르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제2의 용산으로 불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2007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사람이 집 안에 있는데도 해머로 집 벽을 부수고, 소송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철거를 진행해 철거민들이 두려움에 떨었던 곳입니다. 이곳엔 원래 300가구가 살았습니다. 하지만 막무가내식 강제철거로 대부분 떠났습니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아직도 이곳에 사람이 삽니다. 지난해 12월, KBS 보도에 따르면 상도 4동에 50년간 산 이상기씨는 현재 비닐 천막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집은 10년 전에 헐렸지만 동네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봄이 오면 약 800세대가 살 수 있는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비닐 천막마저도 잃게 생겼습니다. 구청장님이 2014년부터 지금까지 동작구 구청장으로 있으셨으니 상도 4동 상황도 잘 아실 것입니다. 

50년 상도동 토박이 이상기씨처럼 50년 장사한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도 쫓겨났습니다. 현재 폐쇄된 구 시장 자리에는 복합 리조트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이거 도시 재생 맞습니까? 구청장님이 도시 재생할 때는 도시의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50년 산 원주민이 떠난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50년 장사한 상인이 떠난 시장에 리조트를 지으면 도시가 그렇게 통시적으로 이어집니까?

주민이 떠나지 않는 도시가 도시 재생 사업의 핵심이라 하셨는데, 못 떠난다는 주민을 되레 쫓아내시면 어떡합니까. 못 떠난다는 상인 80여 명을 왜 인력 천 명이나 동원해 쫓아내려 하셨습니까. 노점상 다 부수고, 고양이들까지 쓰레기차에 실은 후 그 자리엔 화분이 놓였습니다. 이 꽃은 도시의 어떤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꽃입니까. 주민 내쫓은 자리에 놓은 화분이 도시의 미관에 어떤 도움이 됩니까. 리본을 매단 총칼 같습니다.

이창우 구청장님, 노량진 상인들은 다시 천막을 세웠습니다. 노점상이자 농성장입니다. 또 부수면 또 세울 것입니다. 도시에서 살아 움직이는 건 아파트나 리조트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건 화분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도시 재생은 아파트에 살고 리조트에 갈 수 있는 일부 사람만 잘사는 게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상인이 상인의 자리에서, 고양이는 고양이의 자리에서 잘사는 게 도시 재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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