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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19.11.21 13:49 수정 2019.11.21 13:49
[최배근 칼럼 1] '함정'에 빠진 세계 경제, 다음 쓰나미에 준비됐나
[최배근 칼럼 2] 한국 경제 분기점은 1992년, 그 때 잘 대응했더라면
 

한국은 지속적으로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을 강화해왔으나, 이는 해외의 경제환경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는다. 사진은 부산항 부두에 쌓여있는 수출용 컨테이너들. ⓒ 연합뉴스


일자리 증가율의 하락 및 노동소득 비중의 하락에 따라 내수 취약성이 구조화되면서 수출에 대한 의존도는 급증하였다.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소득의 비중이 1991년 68.5%에서 2011년 55.5%까지 하락하는 동안 국민총소득(GNI) 대비 무역액(수출액) 비중은 1993년 49.3%(24.9%)에서 2011년 109.0%(55.3%)까지 급등하였다.

그러나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은 치명적 약점을 갖는다. 세계 경제 환경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 환경이 악화될 때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은 취약성을 노출하고, 내수가 구조적으로 취약한 한국의 상황에서 가능한 선택은 인위적 경기 부양이나 부채(미래소득 당겨쓰기)에 의존하는 것밖에 없다.

수출에 목을 매는 경제의 치명적 약점

예를 들어 닷컴 버블 붕괴에 따른 2001년 미국 및 세계 경기 둔화로 수출 증가율이 2000년 17.2%에서 2001년에는 -2.3%로 급락하자 김대중 정부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와 신용카드에 관한 규제 철폐 등 가계부채에 의존하는 경기 부양을 추진했다. 그 결과 신용 불량자가 360여만 명이나 발생했고 'LG카드 사태'가 터졌다.

당시에도 길거리 모집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규제개혁위원회는 그것에 대해 반시장적이라는 주장을 펴며 규제를 반대했다. 외환위기로 일자리 및 소득을 상실한 가계에 신용 조회도 하지 않고 카드를 마구 발급했으니 신용 불량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었고, '카드 사태'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지속 불가능한 부채 주도 성장의 덕택으로 2001년 4.9%로 떨어졌던 성장률이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에는 7.7%로 상승했으나, '카드 사태'가 터진 2003년, 즉 노무현 정부의 첫해에 3.1%로 추락했다.

여기서 한 가지 여담을 소개한다. 당시 노무현 정권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를 했던 한 인사는 '카드 사태'는 김대중 정부의 신용카드 규제 철폐의 산물인데 노무현 정부가 그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며 투덜거렸다. 당시 본인은 그의 지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지적하였다. 신용카드 정책으로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02년 성장률이 반등을 하였고 경기회복이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노무현 정부 2년차부터 글로벌 유동성의 급증과 더불어 미국 가계의 부채에 의존한 소비 증가, 그리고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중국 무역의 급증 등으로 한국의 수출도 급증하면서 성장률도 5%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FTA를 공격적으로 추진한 배경이다. 특히 미국의 가계부채 주도 성장은 금융화(사회의 채무화)와 동전의 앞뒷면을 구성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 것도 글로벌 유동성 급증에 따른 결과였다. 부동산 시장과 글로벌 금융의 동조화로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된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추진한 배경도 금융위기 직전 절정에 달했던 금융화 물결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금융허브 전략이 성과를 내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추진되었다면 미국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을 것이다.

수출 주도 성장과 한국식 산업화 모델의 종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2012년 9월 최경환 비서실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 실장은 후에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돼 '초이노믹스'를 밀어붙인다. ⓒ 권우성


금융위기로 수출 주도 성장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부채 조정으로 더 이상 이전처럼 소비(수입)를 늘릴 수 없게 되면서 미국의 수입 증가율이 급감하였고, 중국의 자급화로 중간재 수입이 급감하면서 금융위기 이전의 수출액 증가율에 비해 26%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교역의 감소와 그에 따른 성장 둔화로 기업 투자도 감소하며 다시 무역 감소로 이어졌다. 탈공업화에 이어 제조업의 두 번째 위기가 진행되기 시작한 배경이다. 제조업이 수출의 주력 산업이고 재벌 대기업의 주력 사업이 제조업이기에 한국 경제에서 수출과 제조업, 재벌 대기업 등은 동전의 앞뒷면을 구성한다.

2011년 이후부터 수출이 급감하면서 제조업 생산액이 정체하기 시작하고, 재벌 대기업의 제조업 성장이 후퇴한 배경이다. 산업별로는 세계 교역액이 감소하면서 해운업(예: 한진해운 파산) → 조선업(예: STX, 성동조선, 대우조선해양 등) → 글로벌 철강 공급 과잉과 트럼프발 철강 수출 쿼터 등으로 위기가 확산되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8개의 FTA 협정을 타결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총소득(GNI) 대비 무역액(수출액)의 비중이 2016년 76.6%(41.8%)까지 하락한 배경이다.

게다가 2013년 미국GM의 완성차 사업 철수와 전기차 및 차량공유서비스 사업으로 사업 재편이 발표되면서 군산에서 한국GM의 철수가 예고되기 시작했다. 차량공유서비스의 급성장에 따라 선진국 대도시의 청년층을 중심으로 차량 소유가 감소할 수밖에 없고, 전기차를 중심으로 친환경차의 도입이 가속화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지난해 전 세계 완성차 판매량이 백만 대가 축소될 정도로 글로벌 완성차 시장의 포화 상태가 시장의 전망보다 빠르게 도래한 배경이다. 이처럼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예고된 것이었고, 또한 전기차를 중심으로 친환경차로의 전환은 내연기관에 기반을 둔 자동차 부품 산업의 위기를 의미하였다.

수출이 급감하면서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 성장률은 2.4%로 뚝 떨어졌고, 4%대 성장률을 목표한 박근혜 정부에서도 성장률이 3%대 초에 머물자 부채 주도 성장이라는 극약처방(초이노믹스)을 도입한다. 내수 취약성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수출까지 대안이 되지 못하면서 가계로 하여금 미래소득을 당겨쓰도록 내몰았다.

극약 처방

그러나 건설업체에게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경제 전체적으로는 최악의 정책이었다.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GDP 증가 효과가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플러스(+)였던 것이 박근혜 정부에서 마이너스(-)로 변했기 때문이다. 부채 증가에 따른 자산 증가가 소비를 증대시키는 효과보다 부채 증가에 따른 부채 상환 부담의 증가가 소비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커졌기 때문이다. 내수가 구조적으로 취약해진 상황에서 가계소비를 억압시키는 '나쁜 정책'이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말기인 2016년 4분기 전체 가계 중 하위 60% 가계의 (물가 상승은 고려하지 않은) 명목소득이 감소했다. '중산층의 저소득층화와 저소득층의 빈민화'가 진행된 것이다.

'최순실 사태'가 발발하지 않았어도 정권 재창출은 어려웠을 것이다. 중산층까지 붕괴되는 상황에서 선거에 승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제조업-수출-재벌 대기업 주도의 '한국식 산업화' 방식인 '박정희 모델'이 수명을 다했다.

다음 호에는 이런 상황에서 집권한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 전략이 갖는 의미를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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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경제사학회 (전) 회장 이게 경제다, 위기의 경제학? 공동체 경제학! 등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