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30 18:04최종 업데이트 19.10.30 18:04
  • 본문듣기
대학을 위해서 살아가는 한국인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은 참 정의하기 어려운 기구다. 경제학자 개리 베커는 인간의 범죄는 물론 교육도 이익과 비용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모두 설명하려고 했다. 인적자본이라는 관점에서 대학은 개인의 자본을 늘리는 행위이고, 동시에 부모의 자식에 대한 투자로 부의 이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개리 베커식 설명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건 그 실체의 아주 일부분이다. 경제와 서열이 동시에 작동하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그렇게만 대학을 설명하는 것은 곤란할 것 같다. 아니,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요즘은 국가 아래 교육 시스템의 하부 기구처럼 대학을 생각하지만, 자본주의를 작동시키기 위해서 국가로서의 자본이 대학을 만든 것은 아니다. 중세로부터 인간이 벗어나기 위해서 만든 대표적인 기구가 대학이다.

대학은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고, 르네상스 이후의 인간의 지식이 형성되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우리에게는 아닐지 몰라도, 처음에 대학을 만든 나라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학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보다 더 먼저다.

마치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워서 하다 보니까 정치적 민주주의만 알고 직장 민주주의 같은 생활 민주주의 영역에서는 응용을 못하는 것처럼, 대학도 우리가 만든 기구가 아니다 보니까 대학을 어떻게 활용하고 진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잘 모른다. 사회가 대학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활용하는 게 맞는데,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은 대학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야말로 대학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었다. 조국 사건의 가장 큰 핵심은, 이게 대학에 들어가는 길과 연관되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학입시 정시 확대를 공식화했다. ⓒ 국회사진취재단

 
헌법 개정보다 어려운 대학 개혁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회 연설에서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과 비율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아마도 맞다 틀리다, 된다 안된다, 난리가 날 것이다. 87년 9차 개정헌법 이후로 우리는 아직 헌법을 고친 적이 없다. 모르긴 몰라도, 대학 개혁이 헌법 개정보다는 어려울 것 같다.

농담이 아니다. 유럽도 그랬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대학 국유화를 하고, 무상 등록금으로 전환하는 일이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것은 전세계를 뒤흔든 68혁명의 결과다. 철학자 데카르트를 상징으로 쓰는 소르본느 대학은 대학 총장이 추첨표를 잘 못 뽑아서 파리 4대학이 되었다. 소르본느 대학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완강한 대학이지만, 68혁명의 여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권을 바꾼 촛불집회지만 그 정도 힘 가지고는 대학 개혁은 택도 없는 것 같다. 조국 사태도 거대한 흐름이었지만, 기껏해야 수능 보는 정시 숫자 5퍼센트 미만의 변화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한국 자본주의에 대학이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한국 자본주의가 적응하는 것 같다.

이 정도야 우리도 안다. 그렇지만 해법이 쉽지 않다. 대학 입시 문제를 얘기하면 대학 서열 문제 해결이 먼저라고 하고, 대학 문제를 얘기하려면 기업의 채용 풍토를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전형적인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우리는 계속하고 있다. 대학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동시에 바꾸지 않으면, 결국에는 입시 제도만 이리 손 보고 저리 손 보다가 10년 넘게 후딱 지나가게 된다.

고졸로도 걱정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대학과 관련해서 한국 대학이 가장 이상하게 된 것은 다른 나라의 두 배 이상 높아진 대학 진학률이다. 출산율 저하로 조금 있으면 이제 모든 고등학생이 다 대학에 들어가고도 정원이 남는다는 것 아니냐? 유럽처럼 등록금이 연간 몇 십만 원 하는 수준도 아닌 상황에서 모두가 대학에 가는 게 당연한 시스템은 이제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대학 교육이 필요한 사람은 대학에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상황에서 경제 생활을 하는 것, 그게 유럽 근대가 만든 시스템이다. 우린 그걸 못 만들었다. 모두가 대학에 가려다 보니까 대학의 서열 구조를 깨기가 어렵고, 이 이상한 상황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강화되는 게 한국 자본주의의 인적 재생산 구조의 핵심이 되었다. 변화를 주어야 한다.

제일 먼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조치는 지금의 공무원 7급, 9급 공채를 고졸 중심으로 채용 구조를 재편하는 것 아닐까 싶다. 고등교육은 꼭 필요한 지식을 위한 일종의 과잉 교육이다. 사실 한국 경제의 기초 인프라를 만든 주력은 은행을 만든 상고 출신들, 한전 등 공업 분야로 진출한 공고 출신들이다.

대졸들이 너무 늘어나다 보니 이들이 하는 직업을 밀고 들어오면서 인적 불균형이 생겨났다. 중소기업에 위기가 오고, 제조업에도 위기가 오고, 출산율도 극단적으로 하락했다. 장기적으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국민경제의 목표는 '고졸 중산층 재생산'이 아닐까 싶다.

고졸들도 스스로의 힘으로 결혼하고 집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 1인당 국민소득 6~7만 달러 넘어가는 나라들은 이 정도는 다 만들어낸 나라들이다. 어려운 사람들의 상태가 나아져야 그 사회의 상태가 나아진다는 '맥스민(max-min)', 존 롤스의 정의론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공공 부문에 '고졸자 블록'을 만들자

물론 7급 이하의 공무원 공채를 고졸로 채운다고 해서 고등학교 문제가 다 풀리는 건 아니다. 미국의 뉴딜 시절에 도입한 관급 공사 노동자들에게 중간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는 적정임금제 등 제도적으로 수많은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그 시작이 공무원을 비롯해서 공공 부문에 '고졸자 블록'을 구성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무원 공채 전형을 고졸자들을 중심으로 재편한다고 하면 제일 먼저 등장할 문제는 당연히 학력에 의한 차별 문제일 것이다. 헌법 119조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구조와 조정'을 허용하고 있다. 출산율 1 이하로 내려간 현재의 청년 경제가 과연 국민경제의 위기 상황인가 아닌가, 이런 위급성에 대한 판단과 관련되어 있다. 부당하게 대졸자의 취업권을 제약하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만, 장기적으로 시스템의 불균형 해소 차원이라면 헌법이 길을 열어놓고 있다. 충분한 유예 기간과 함께 전체 개혁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하위직 공무원이라도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행정이나 기술 등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건 기존의 대학과 연계한 연수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개발하면서 해소할 수 있는 문제다. 게다가 우리는 과거에 시행하던, 공무원들을 몇 년씩 해외유학 시켜주는 공무원 연수 제도가 있다.
과거에 외국에 가기 어렵던 시절, 공무원이라도 외국 경험을 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지금도 그게 필요한가? 공무원들 해외 연수를 국내 연수로 돌리고, 그렇게 절약된 예산을 6~9급 공무원 직무 연수, 6개월이든 1년이든 필요에 따라서 다양하게 하는 게 더 낫지 않은가? 억지로 대학에 진학할 청년이 줄어든 대학 특히 지역 대학과 이런 공무원 교육 프로그램으로 타협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

위기의 한국 경제와 대학 교육, 지금이 다른 발상으로 미래를 디자인할 시점이다. 강남의 '엄마표 귀공자'와 '스카이 캐슬' 구조로 더는 갈 데가 없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무난하게 중산층에 들어올 수 있는 경제 구조가 우리의 기본 구조가 되어야 한다. 국민이 30퍼센트 가량 그리고 점점 늘어날 이 청년들을 피라미드 구조의 맨 아래에 방치하는 방식으로는 출산율 문제는 개선되기 어렵다.

7급 이하 공무원 응시자격을 고졸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별 거 아니고 괜히 혼란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우리가 경제 개혁을 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지금 이 구조를 만들어야 한국 경제가 더 높이 날 수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