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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19.10.30 07:55 수정 2019.10.30 07:55
저널리스트로 평생을 살아온 정연주 전 KBS 사장이 격주 수요일 '정연주의 한국언론 묵시록'으로 여러분을 찾아간다. 이 연재는 한국 언론에 대한 고발이자, 몸으로 경험한 '한국 언론 50년의 역사'다. [편집자말]

윤석열 검찰총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 이희훈

 
지난 17일, 윤석열 검찰총장은 국정감사장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에 대해 "이명박 정부 때 쿨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윤석열 검찰총장은 강자, 기득권, 가해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맨 먼저 들었다.

범죄를 만들기까지 하는 검찰에 의해 삶이 파괴당하고, 인격 살해를 당하는 피해의 경험이 단 한 번이라도 있다면, 아니 그런 피해 경험이 있는 이들에 대한 조그만 연민의 마음이라도 있다면, 이명박(MB) 정권에 대해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모욕적 수사를 비롯하여, 나의 배임죄 사건, < PD수첩 >, 미네르바,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등 MB 정권 아래 정치검찰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인권침해가 얼마나 많은가.

MB 정권의 검찰 피해 당사자인 나로서 특히 어이가 없었던 것은 전임 문무일 검찰총장이 MB 시대의 무리한 사건에 대해 얼마 전 사과했다는 점이다. 나의 배임 사건에 대해 법무부 과거사위원회는 "유죄판결 가능성이 없는데도 배임으로 기소한 것은 부당한 검찰권 행사였다"고 밝히고 검찰총장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고, 문무일 검찰 총장은 이에 따라 나를 포함하여 과거사위가 지정한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그렇게 사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후임 검찰총장이 MB 정권의 검찰을 두고 '쿨' 하다고 하니,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전임 검찰총장의 사과를 모두 뒤집는, 참으로 해괴한 부조화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무죄가 나와도 상관없으니 기소하라"
         
그를 포함한 검찰 권력 쪽에서 보면 이명박 정권 시절이 '쿨'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MB 정권 입맛에 맞게 표적 수사를 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일심동체의 이해관계를 가진 터에, 그 정권이 무슨 간섭이나 싫은 소리를 했겠는가.

이 발언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대검이 "이명박 정부에서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검찰 수사 과정의 경험 및 소회를 답변하려 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이 해명조차도 논리에 닿지 않는다. '쿨' 발언은 현 정부에 대한 평가와 관계없이 MB 정권에 대한 절대 평가인 것이다. 다른 정권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건, MB 때 검찰은 '쿨' 했다는 것이 그의 발언의 핵심이고, 전부다.

MB 정권 때 검찰이 어떻게 범죄를 만들고, 얼마나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있다. 당시 검찰 지휘부의 < PD수첩 > 관련자 기소 지시다. 명예훼손죄로 고발된 < PD수첩 > 사건은 임수빈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이 사건 수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임 부장검사는 < PD수첩 > 제작진을 기소하라는 검찰 지휘부 지시에 반하여 무혐의를 주장하다 수사진에서 배제되고 결국 검찰을 떠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임수빈 부장검사의 직속 상관인 최교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무죄가 나와도 상관없으니 < PD수첩 > 관련자들을 기소하라"고 지시했음이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밝혀졌다.

무죄라도 상관없으니 기소하라니, 사건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뒤 법의 이름 아래 죄 없는 시민을 그냥 괴롭히자는 것 아닌가. 이런 지시를 한 최교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나의 배임 사건에서도 실무 지휘를 맡은 당사자다.
 

지난 9월 30일 방영된 MBC 스트레이트 '검찰 개혁, 촛불 커지는 이유는?'은 검찰의 기소권 남용 사례를 다뤘는데, PD수첩 사건 때 최교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의 강제수사 지시의 내용을 담은 화면이다. ⓒ MBC


법원 조정이 배임이면 재판부는 배임의 공모자, 또는 교사범

그가 실무 지휘를 담당한 나의 배임 사건은 지난 글에서 일부 설명한대로 범죄 구성의 기본요건도 갖추지 못한 황당하고 허술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검찰 주장대로 내가 배임의 죄를 지었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1. 내가 배임이라면, 국세청과 KBS 사이의 끝없는 세무 소송을 '조정'으로 마무리한 고등법원 재판부는 배임의 공범 내지 교사범이 된다.

2. 내게 적용된 배임액수 1700여억 원인데, 그만큼의 돈을 국세청으로부터 받아내지 못했다는 것, 즉 세금을 많이 냈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공기업인 KBS가 국가기관인 국세청에 세금을 많이 냈다고 국가기관인 검찰이 죄를 씌운 것이다. 성실 납세의무를 배임으로 몬 셈이다(물론 무죄 판결문에서도 지적했지만, KBS가 1700억 원을 받을 수 있다는 그 전제 자체가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3. 더욱이 검찰은 공기업인 KBS가 국세청을 상대로 끝까지 재판으로 몰고 갈 것이지, 왜 중간에 포기하고 법원의 조정으로 끝내느냐는 것인데, 국가기관인 검찰이 국가기관인 국세청과 공기업인 KBS 사이의 싸움을 끝까지 하라고 부채질하는 것이다.

4. 검찰의 배임액수 1700여억 원이 '확정'되기 위해서는 두 개의 대전제가 필요했다. 첫째, 대법원까지 모두 KBS 승소가 100% 확실할 것. 둘째, KBS 승소 뒤 국세청은 KBS에 패소액을 모두 환급하고, 절대 재부과도 하지 않고, 소송도 제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억지 배임 혐의에 내려진 재판부의 철퇴
 

2008년 6월 13일 저녁 여의도 KBS앞에서 이명박 정권 공영방송 장악음모 저지를 위한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시민들이 '퇴진 최시중, 사수 정연주'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 권우성

 
그런데 KBS가 1심에서 승소한 재판 가운데 2심, 3심에서 패소한 건이 실제 있었다. 그리고 국세청이 재부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는 국세청의 징수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 국세청 여러 직원이 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국세청은 재부과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지금도 생생한 1심 때의 법정 장면이 있다. 국세청 법무2과장으로 재임한 고아무개씨에 대한 법정 심문이다. 그는 이전에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세금 재부과가 불가능한가, 어려운가"라는 두 표현을 놓고, 검찰과 4시간 동안 씨름하면서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당연히 '재부과 불가능'을 원했던 터여서, 그 답을 얻어내려고 4시간 동안이나 참고인으로 나온 그를 닦달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아무개 과장은 끝까지 '불가능'이라는 표현을 주지 않고,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답을 주었을 뿐이었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은 재부과가 어렵기는 하겠으나, 방법을 찾는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으니 배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주요 증언이었다.

이렇게 억지로 엮은 나의 배임 혐의에 재판부는 어떻게 철퇴를 가했는가? 본문만 무려 77쪽, 부록 88쪽의 두툼한 논문 분량의 판결문으로 재판부는 검찰 주장을 조목조목 해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이 사건 공소 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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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