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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0.08 11:10 수정 2019.10.08 11:10
집을 나선 지 5일째가 되었다. 가을 길을 달린다. 저녁에 어디서 머물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경북 문경을 지나 안동을 거쳐 충북 영동까지 왔다. 주말엔 안동 탈춤 축제가 한창이었다. 축제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지, 음식 천막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긴 통로를 만들고 있었다.

축제장에서 안동 조청을 만드는 지인을 만났다. 그이는 쉰 살에 공직을 벗어나서, 봉정사 아랫마을에서 손수 조청을 만든다. 올해 만든 조청이 다 팔리고 이제 전시할 것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빨리 만들어야겠네요" 했더니, 쌀품종을 가려서 조청을 만들고 그 쌀이 동이 나서 햅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품종은 안동에서 나는 백진주쌀이라고 했다.
 

안동탈춤 축제장에서 ⓒ 막걸리학교

  
그이는 내 손을 잡고 새 술이 나왔다고 축제장 다른 천막으로 데려간다. 소호헌 고택이 있는 안동 일직면 마을의 금계당에서 빚는 술이다. 천막에는 주인이 자리를 비우고 없다. 어제 술이 동나서 지금 술을 급히 걸러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이는 굳이 전화를 연결하여 금계당 주인의 목소리를 듣게 해준다. 쌀을 익히지 않고 전통 누룩을 써서 약주와 탁주를 빚고 있었다. 재료는 일직면에서 나는 쌀을 쓰고, 수공예품 만들 듯이 술을 빚는다. 술은 공산품이나 다름없이 대량 생산하는 줄로 알고 살아왔는데, 이제 수공예품 같은 술들이 나온다.

축제장을 돌아나오는데 양반 안동소주 천막이 있어 양조장 안주인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통주와 지역 특산주가 2017년부터 통신판매가 가능해졌다. 2년이 지났는데, 온라인 판매의 위력을 느끼는 곳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안동소주는 인지도가 높아 통신 판매의 큰 수혜자다. 양반 안동소주도 온라인 판매가 오프라인 판매를 앞섰다고 했다. 유통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새로운 유통 창구가 열리면서 새로운 도전이 가능해졌다.
 

맹개마을에서 안동소주들을 맛보다. ⓒ 막걸리학교

 
집을 나서 첫날에는 안동 농암종택 강 건너에 있는 맹개마을 펜션에 들어, 안동시내에서 구할 수 있는 가지가지 술들을 모아놓고 문어 안주에 늦도록 술을 맛보았다. 술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그곳 펜션 주인도 양조장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펜션 주인은 밀농사를 짓고, 밀로 누룩을 만들고, 통밀을 쪄서 술을 빚는다.

양조장 이름은 맹개술도가, 안동 도산면 서부리 국학진흥원 마을에 있다. 주인은 안동 국학진흥원에서 번역한, 안동 선비 김유(1491~1555)가 집필한 <수운잡방> 속의 진맥소주를 발견하고 운명처럼 이를 자신의 술로 받아들였다. 밀의 한자어 진맥(眞麥)과 안동을 연결하여, 안동 진맥소주라는 이름도 달고, 디자인도 하고, 술병도 새로 맞추고 술이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맹개 술도가와 같은 길목에 참마 생막걸리 제조장이 보였다. 막걸리 한 병 사러 들어갔다. 참마 막걸리를 만드는 주인은 이제는 수몰되어 사라진 예안양조장에서 일하기 시작하여 50년 세월을 양조장에서 보냈다. 중년에는 안동 소주를 만드는 회사에 몸담고 큰 사업을 했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었다. 양조장 안 판매대 뒤에 앉아서 지나온 양조장 이야기를 듣는데, 막걸리를 사러오는 사람들 때문에 이야기가 종종 끊긴다.

참마 막걸리는 1병에 1천원, 10병을 사면 9천원이다. 주인은 마을 이장도 맡고 있는데, 양조장을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노인이 될 것 같아 소일 삼아 술을 빚고 있다고 했다. 막걸리 사러오는 외지 사람들은 막걸리 값에 놀라고, 마을 사람들은 막걸리를 사러 온 것인지 안부 인사를 하러 온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술 빚는 노동은 시골에서 나이 들어서까지 혼자서 돈을 바라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다.

이튿날은 사빈서원에서 자고 의성 김씨 집안의 며느리가 200년 전쯤에 한글로 필사한 술 책 <온주법> 한 권을 얻어 득의양양하게 길을 나섰다. 안동 탈춤 축제장을 지나, 영동으로 건너왔다.

안동은 춤을 추며 놀고, 영동은 난계 박연 선생을 기리며 악기를 타고 노래 부르며 논다. 태풍이 와서 하루 행사를 못했지만, 다시 날이 밝으니 사람들이 악기를 두드리고, 뜯고, 퉁기고, 불면서 흥겹게 논다. 마을 부녀회 회원들은 천막 안에서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서 튀기고 지지고 익혀서 음식을 내놓는다.

난계축제는 52회가 되고, 와인축제는 10회가 되었다. 태풍에 밀려 와인 천막은 체육관으로 들어왔다. 추첨으로 입점하게 된 외지의 와이너리도 4군데가 있다. 영동군에 43개의 와이너리가 있는데 28개의 와이너리가 200여 종의 와인을 가지고 축제에 참여했다. 축제에 참여는 와인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와인 예선 심사까지 했다고 한다.
 

영동와인축제장에서 둘레와인을 맛보다. ⓒ 막걸리학교

 
3천원을 내면 와인잔 하나를 주기에, 그 잔을 들고 천막을 돌아다니며 술을 동냥했다. 캠벨얼리 와인, 머루포도 와인, 머루 와인, 베리 와인, 사과 와인, 감 와인, 종류도 많다. 술은 원료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 그 원료 따라 솜씨 따라 와이너리들의 술맛이 차이가 났다.

동냥하며 술을 맛보다가 둘레 와인이라는 천막에서 멈춰섰다. 은퇴한 노부부가 시골에 깃들어 살면서 빚어낸 와인이다. 또 지나온 이야기를 듣는다. 맥주나 와인이나 외국에서 연원한 술들은 외래어를 쓰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렇지 않았다. 와인 이름에 들어간 '둘레'는 모든 사람이 두루 평화롭고 행복하게 어울리자는 뜻에서 썼다고 한다. 포도 품종은 버팔로, 짐승 이름과 같다.

버팔로가 캠벨얼리보다 당도가 높아 식용으로 삼으려고 20년 전에 심었는데 알이 잘 떨어져서 나무를 벨까 하다가 10년 전부터 와인을 빚기 시작했다. 400평 포도 농사를 짓는데 올해 수확한 버팔로로 와인 1천 병 정도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한 종류만 생산한다는데 달콤한 와인이 아니라 달지 않은 드라이 와인이다. 신기하다. 한 종류를 만들면 대개는 달콤한 와인을 만드는데, 노부부는 달지 않는 와인을 만든다. 노부부의 와인을 맛보면서 담백하게 세월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삶을 본다.

영동 와인을 시음하면서 축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숙소로 들어오니 벽을 치고 천장을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서 창문을 여니 불꽃이 짙은 산 능선 위로 피어오른다. 수양버들처럼 불꽃이 떨어지기도 한다. 불꽃이 어둠 속에서 터질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던 어린 날이 생각난다. 함께 좋아했던 큰형은 은퇴하고 시골로 내려가 게으르게 먹을 수 있는 발효 음식을 만든다.

도시를 떠나고 은퇴를 하고 시골로 내려간 이들이 무엇을 하고 세월을 보낼까 고민하면서 농사도 짓고 과일 나무도 심고 세월 두고 먹을 발효 음식을 만든다. 이틀을 더 여행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외국 여행할 때는 일주일이 짧고, 국내 여행할 때는 이박삼일도 길었는데, 새 술이 많이 보여서인지 이제 국내 여행도 일주일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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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