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0 10:32최종 업데이트 19.10.1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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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인간에게 꼭 필요하지만, 그 경험이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되면 오류가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개인의 경험이 강렬할수록, 그것이 절대로 틀리지 않는 '불변의 진리'로 자리 잡고 한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 경험과 객관화된 실제 사이에 간극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 중국 계림을 여행하면서 깨달았다. 그때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① 산꼭대기 물
 

중국 계림의 다랭이논 풍경. ⓒ 김기동

  
중국 계림에는 경사가 20도에서 50도 정도 되는 산비탈을 개간하여 층층이 계단 논을 만들어 벼농사를 짓는다. 다랭이논이 경사가 가파른 산비탈에 있다 보니, 산꼭대기 전망대에 가려면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다랭이논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은 유명한 관광지로 소문나서 사람이 많이 방문한다. 그래서 다랭이논 주변 산비탈에는 민박 건물도 있다. 관광객이 하룻밤 머물면서 여행할 수 있다.


민박집이 깊은 산속에 있지만, 시설도 좋고 식사도 잘 나온다. 차도 못 들어오는 이런 깊은 산속에 이런 민박집을 어떻게 지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건축 자재를 사람이 직접 날랐을 텐데 대단하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이 산꼭대기까지 어떻게 물을 끌어왔을까 하는 부분이다. 건축 자재야 시간이 걸릴 뿐 어떻게든 옮길 수 있다. 그러나 물은 벼농사에 사용하는 양도 대단할 뿐더러 민박집 관광객들이 사용하는 물도 엄청날 텐데 물을 어디서 도대체 어떻게 끌어올까? 이곳 원주민들은 물 관리에 특별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역 주민에게 물어보니 허무한 답이 돌아왔다. 중국 계림 지역은 아열대성 기후로 연평균 강수량이 2000mm이고 일 년 중 거의 매일 비가 온다.

또 중국 계림 다랭이논 지역은 해발 300m에서 1100m에 위치한다. 내가 묵었던 민박집은 산꼭대기이기는 하나 해발 600~700m로 이곳 지형에서 보면 산 중간 높이도 안 돼서, 높은 지역에서 일 년 내내 흘러 내려오는 물이 많다.

다만 9월과 10월은 유일하게 비가 오지 않는 시기로, 하필 이 때 내가 방문해 넉넉하게 내리는 비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또 겨울에도 산비탈에 눈이 쌓이기는 하지만 평균 온도가 영상 3~5도로, 얼음이 잘 얼지 않아 동절기에도 물이 충분하다.

마을 사람 이야기를 듣지 않았으면, 나는 이곳 사람들이 특별한 관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오해할 뻔했다.

② 사탕수수 굵기
 

중국 계림 시내에서 사탕수수 주스를 압착하고 있는 모습 ⓒ 김기동

  
내가 생활하고 있는 산둥성 제남시는 중국 남북 위치상 중간에 있다. 한국과 같은 위도에 위치한 이곳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힘든 환경이다.

하지만 시내 곳곳에서 흔히 사탕수수를 볼 수 있다. 사탕수수 막대를 즉석에서 압착해 주스로 팔기 때문이다. 제남시에서 파는 사탕수수는 막대 지름이 2~3c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이것이 일반적 굵기다.

중국 계림은 제남시보다 남쪽에 자리한 도시다. 날씨가 따뜻해 열대 식물이 잘 자란다. 계림시 시내에서도 즉석 압착 사탕수수 주스를 판다. 이곳에서 심고 수확한 사탕수수 막대를 사용한다. 그런데 사탕수수 막대 굵기가 10센티가 넘는다.

제남시에서 본 사탕수수와는 육안으로 봐도 확연히 달랐다. 이곳에서 사탕수수 막대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사탕수수 나무 굵기가 2~3센티 정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③ 오토바이와 전기자전거
 

전기자전거를 타고 방문한 시내 풍경 모습 ⓒ 김기동

 
중국에서는 전기자전거가 생활화되어 있다. 내가 생활하는 산둥성 제남시도 전기자전거가 많다. 특히 산둥성은 평야 지역으로 도로의 경사가 거의 없다. 그래서 전기자전거가 기름으로 움직이는 오토바이보다 출력이 많이 떨어지지만, 도로를 운전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전기자전거는 구조가 간단하다. 외부 모습이 오토바이보다 조금 작고 단순해서 한눈에 봐도 오토바이인지 전기자전거인지 구분이 가능하다.

그동안 중국 다른 지역을 여행하면서 전기자전거가 없는 도시도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도시가 산지에 형성된 경우로, 도로 경사도가 심해서 출력이 약한 전기자전거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 계림시 시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로에 오토바이는 많은데, 전기자전거는 없었다. 그래서 계림시가 산지에 형성된 도시로, 도로 경사도가 높아서 전기자전거를 이용할 수 없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계림시 시내에서 전기자전거를 빌려 타고 주변 풍경 관광지를 여행하는 상품이 있다. 도로 경사도가 심해서 전기자전거 이용이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이건 무슨 경우일까?

그 이유는 전기 자전거를 빌려주는 대여점에 도착해서 알았다. 이곳에서 운행하는 전기자전거는 오토바이와 똑같은 외형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외관상으로는 오토바이와 전기자전거 구별이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평지에 형성된 도시를 그동안의 나의 경험으로만 판단해서 산지 지역으로 잘못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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