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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0.02 11:54 수정 2019.10.02 14:26
저널리스트로 평생을 살아온 정연주 전 KBS 사장이 격주 수요일 '정연주의 한국언론 묵시록'으로 여러분을 찾아간다. 이 연재는 한국 언론에 대한 고발이자, 몸으로 경험한 '한국 언론 50년의 역사'다.[편집자말]
지난 글에서 "한국 언론의 북한·일본 관련 기사에 오보가 많다"는 히라이 히사시 교도통신 서울지국장의 한겨레 기고문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특히 "'알려졌다'는 표현이 들어간, 뉴스의 출처가 불명확한 기사는 일반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경험칙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요즘 검찰에서 흘러나온 기사들에 '알려졌다'가 넘쳐난다. 9월 23일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딸 서울대 인턴증명서 조국 '셀프 발급' 의혹'의 첫 네 문장은 이렇다.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 조모(28)씨가 허위 논란에 휩싸인 2009년 서울대 법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증명서를 발급받는 과정에 조 장관이 직접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 중인 것으로 22일 알려졌다. 그동안 공익인권법센터 직원 등을 모두 조사했지만 증명서를 발급해줬다는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장이었던 한인섭 교수(현 형사정책연구원장)도 지난 20일 검찰 조사에서 "조 장관 딸에게 인턴증명서를 발급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 장관의 관여를 입증할 물증을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월 23일 조선일보 기사 1면 기사. '알려졌다'가 계속 나온다 ⓒ 조선일보 지면

 
4문장 가운데 3문장이 '알려졌다'로 끝을 맺었다. 조국 법무장관은 이 기사에 대해 "정말 악의적" "공인으로서 여러 과장 보도를 감수해왔지만, 이것은 정말 참기가 어렵다"면서 "법적 조치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9월 23일 1면 머리기사 "검, 정경심 소환 불응에 체포영장 '최후통첩'"기사에도 "알려졌다"가 많이 등장한다. 불과 3문장에 "알려졌다"가 4번이나 등장하고, 한 문장 안에 두 개의 '알려졌다'가 나오기도 한다.
 
... 24일 이전에 소환 조사에 응해줄 것을 수 차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 17일경 정 교수 측에 사모펀드 및 입시비리 등과 관련한 소명 자료 제출과 함께 20일까지 검찰에 출석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교수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면서 실제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검찰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대외적 활동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경심 교수는 "제가 검찰소환에 불응했다는 기사는 명백한 오보"라고 밝히고 "검찰발로 표시되는 명백한 오보에 대해서는 검찰에서 사실관계를 바로 잡아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검언복합체 공범 - 피의사실 유출과 받아쓰기
 

포토라인 설치된 서울중앙지검조국 법무부 장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된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현관에 조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 소환을 대비해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다. ⓒ 연합뉴스

 
앞에 소개한 교도통신 히사시 기자의 '경험칙'에 따르면 "알려졌다"는 표현 뒤에 숨은 기사는 '일반적으로 믿을 수 없는' 오보인 경우가 많다. 위에 소개한 두 경우 모두 단순한 사실관계에 대해 당사자가 극구 부인하는 것이니 누구 말을 믿게 되겠는가.

그리고 검찰발 "알려졌다"는 기사는 신뢰의 문제에 더하여 검찰이 먼지떨이식이든, 망신주기든, 어떤 의도를 가지고 '피의사실'을 언론에 유출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고백'하는 꼴이다. '알려졌다'는 말은 누군가가 '알려준' 것인데, 검찰발 기사의 경우 그 '알려준' 주체는 검찰이다. 그러니 '알려졌다'는 검찰 기사는 바로 검찰의 피의사실 흘리기와 그것을 그냥 옮겨 적는, 검언 공동범죄의 행태를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볼테르는 "진정 깨어있는 회의론자로 굳건히 서라, 그리고 분명하고도 흔들릴 수 없는 증거가 없다면 결코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고 했다.  볼테르가 지금의 한국 기자들에게 던지는 고언처럼 들린다.

검찰이 피의사실을 흘리고, 언론이 아무 검증 없이 받아적는 이런 행태는 큰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폐해다. 검찰은 언론을 이용하여 사건을 자신들의 프레임으로 끌고 가려 하고, 언론은 '단독'의 유혹에 빠져 그걸 대서특필하면서 '의혹'이 '팩트'로 둔갑한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정확한 팩트 확인, 검증의 과정, 진실 추구의 정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인 '의문'의 제기는 자취를 감춘다.

검찰이 던져주는 '피의 사실'이라는 먹이를 아무런 의심도 없이, 검증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이 팩트인 것처럼 받아 옮기는 것은 결코 언론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배달부의 일일 뿐, '기자의 길'이 아니다.

검찰 주장에 질문도, 의문도 제기 않는 언론

왜 이렇게 되었을까. 9년여 전, 나는 '기자인가, 검사인가'라는 제목의 칼럼(<한겨레> 2010년 1월 25일 자)에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요즘 언론의 보도와 기자의 행태를 보면 이게 정말 언론인가, 기자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특히 검찰 권력과는 거의 일심동체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검찰이 먹이로 던져주는 '피의사실'을 '기정사실화'해버린다. 검찰이 던져주는 '피의사실'이라는 먹이에 대해 기본적인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는다. 검찰의 논리와 검찰이 짜놓은 틀에서 사건을 본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피의자의 기본권리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법조 취재의 본거지도 검찰청에 있고, 법조 기사의 주된 공급원도 검찰이다. 그렇게 함께 뒹굴다 보니 너무나 닮아가서, 기자인지, 검사인지, 구분이 안 된다. 행태도, 논리도 너무 닮았다 (...)

9년여 전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요즘은 '속보'와 '단독'이라는 문패를 단 선정 보도가 더 심해졌으니, 사정은 더 악화되었다. 종말적 징후다.

그 고통,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KBS 사장 재임시절 회사에 1892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로 불구속 기소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이 2009년 8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검찰의 '피의사실'은 말 그대로 검찰이 구성한 범죄의 '의심'일 뿐, 범죄로 확정된 게 아니다. 검찰의 의심이 사실인지 여부는 법원의 최종 판결에 의해 판가름 난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주장과 논리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수많은 간첩 조작사건, 여러 무죄판결 사건이 보여주듯 검찰의 피의사실은 결코 최종 팩트가 아니다.

나는 검찰과 언론이 한 몸이 되어 '피의사실'을 주고받고, 그걸 마치 최종 확인된 범죄인 것으로 규정짓고, 나를 중범죄인, 파렴치범으로 낙인찍으며 인격을 살해하는 범죄행위를 직접 경험한 바 있다. 검언 복합체의 그 범죄행위가 가하는 고통은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그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검찰은 범죄를 '만들겠다'고 작정하면 무슨 무리를 해서라도 만들어 낸다. 그게 피의사실이고, 기소 내용이다. 반인간적인 고문을 가하면서 조작한 간첩단 사건을 비롯하여 무죄판결이 나온 수많은 사건들을 들여다 보면, 검찰의 논리는 정말 괴이할 정도로 일방적이다.

11년 전, 죄목도 무시무시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으로 나를 옭아맨 뒤 5년의 징역형을 구형한 정치검찰의 괴이한 논리와 행태는 이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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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