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30 11:30최종 업데이트 19.09.30 14:39
 

윤석열 검찰총장이 25일 오전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마약류퇴치국제협력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기사수정 : 오후 2시40분]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현 검찰총장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이 '명언'만큼은 기억할 것이다. 이 말의 주인은 윤석열로, 박근혜 정부에서 대선 여론조작 사건을 조사하던 중 좌천됐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으로 극적으로 부활한 인물이다. 윤석열의 '사람…' 발언은 권력의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강골검사의 뚝심을 상징하는 말처럼 인용돼 왔다.

하지만 이 판단은 옳을까? 이 말은 언론과 사람들 입에 수없이 오르내렸지만, 이 발언의 맥락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앞의 발언을 나오게 한 사람이 있다. 자유한국당의 정갑윤 의원이다. 맞다. 최근 공정거래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조성욱 후보를 향해 '출산의 의무를 다하라'고 종용하다 망신을 당한, 바로 그 인물이다.

2013년 10월, 정갑윤 의원(당시 새누리당)은 국정감사에 참석해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정갑윤 "윤석열 지청장, 자리에서 일어서 보세요. 증인은 혹시 조직을 사랑합니까?"
윤석열 "예, 대단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정갑윤 "사랑합니까? 혹시 사람에 충성하는 것은 아니에요?"
윤석열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정갑윤 "앉으세요."

윤석열의 기개를 대변하게 된 앞의 발언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의 말은 유행어처럼 퍼져나갔고, 많은 국민들은 그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불의에 맞서는 의인'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조직을 사랑한다'는 말은 조금 더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그가 '대단히 사랑'한다는 검찰조직이 정작 시민들에게는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형사사법기관의 신뢰도는 매우 낮지만, 검찰은 그중에서도 꼴찌다. 예컨대 2017년 설문조사에서 검찰을 신뢰한다고 답한 국민의 비율은 12.7%였다(형사정책연구원, '한국의 형사사법 체계 및 관리에 관한 연구' 보고서). 다시 말해, 87% 이상의 시민들이 검찰을 불신하거나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신뢰하지 않는다 58.7%). 

경찰을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 역시 23.1%로 역시 '바닥'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 낮은 신뢰도의 반 토막인 검찰에 비하면 거의 '성인'으로 보일 정도다.
  
국민이 불신하는 조직을 매우 사랑한다는 검찰총장

2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달라졌을까? 앞의 통계와 집계 방식이 다르기는 하지만, 오마이뉴스-리얼미터 "2019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2019.6.25)가 실마리를 준다. 이 조사에 따르면, 최저의 신뢰도를 기록한 3개 기관은 경찰(2.2%), 국회(2.4%), 검찰(3.5%)이었다. 혹시 '검찰의 신뢰도가 경찰과 국회를 추월했다'고 착각할까봐 덧붙이자면, 앞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였다. 다시 말해, '이 꼴등 삼형제'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윤석열이 '조직 사랑'을 공언했던 바로 그 날, 또 하나의 흥미로운 발언이 나왔다. 검찰의 '사냥' 이야기였다. 당시 그의 입에서는 현 상황을 생생히 묘사하는 듯한 발언이 흘러나왔다.

"이 수사라고 하는 것이, 초기에 어떤… 사태를 딱 장악해 가지고, 어느 정도까지 갈 때는, 그거는 마, 정말로 표범이 사냥하듯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문제는 검찰이 모든 수사를 '표범이 사냥하듯'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신들의 안위를 건드리지 않고 작은 편익이라도 제공하면, 죽은 권력 앞에서조차 배를 내밀고 뒹구는 '강아지'가 되기도 하고('떡검'과 '스폰서검'), 내부 범죄에 대해서는 한없이 느리고 게으른 '나무늘보'가 된다.

이는 검찰이 극악무도한 내부 범죄에 얼마나 한심하게 대처해 왔는지 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유우성 간첩조작 공모, 김학의 특수강간 무혐의, 돈봉투 만찬사건 뭉개기, 우병우 봐주기, 고소장 위조 눈감기, 검찰 내 강간 사건 무마 등 최근 사건만도 헤아리기 벅찰 정도다. 검찰은 오직 자신들의 조직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외부자에 대해서만 유독 표독스러운 맹수가 된다.
 

윤석열 총장의 인사말. 세 문단에서 '국민'이라는 말을 10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 대검찰청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이 되겠다는 검찰총장
 
"새로운 검찰을 기대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은 시기에 검찰총장의 소임을 맡게 되어 막중한 사명감을 느낍니다. 저희 검찰은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이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오로지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행사하겠습니다."

대검찰청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윤석열의 '총장 인사말' 서두다. 그는 이 짧은 글에 '국민'이라는 말을 네 차례나 쓰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그가 '새로운 검찰을 기대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총장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는 정말 국민을 위한 것인가? 불행히도, 많은 시민들은 검찰이 펼치는 '조국 사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두운 그림자를 본다.

취임 직후 노 전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납득시키기 위해 '검사와의 대화'를 제안했다. 이 자리에 초대받은 한 평검사는 고졸 대통령 앞에서 느닷없이 '학번' 이야기를 꺼내더니 대통령에게 "왜 검찰에 전화를 했냐"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하지 않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TV에서 이 토론 장면을 보다 못한 한 교사가 이메일로  항의하자, 수원지검 특수부는 그를 소환한 뒤 학교로 찾아간 것은 물론, 컴퓨터까지 압수해 인터넷 접속기록을 뒤졌다. 검사의 이메일 주소가 알려진 것이 "엄청난 범죄요, 보안 누수"라는 것이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검찰의 자정 노력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외부충격을 통한 개혁에 나선다. 그 신호탄이 파격 인사였다. 첫 법무장관으로 비검찰 출신에, 검찰총장의 후배이며 여성인 강금실을 기용한 것이다. 검찰 내부는 들끓었다. 그리고 검찰개혁의 큰 그림이 드러날 무렵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를 시작했고,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을 기소함으로써 검찰개혁을 좌초시켰다.

검찰의 눈 밖에 난 대통령에 대한 '사냥'은 퇴임 이후까지 이어졌다. '논두렁 시계'처럼 왜곡된 이야기를 언론에 흘리며 망신을 주더니, 기어이 죽음까지 몰고 간 것이다. 조국 역시 비검찰 출신인 데다가, 검찰개혁을 오랫동안 준비해온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검찰의 거센 저항을 받고 있다.
  
남의 악이 자신의 선은 아니다
 

"검찰개혁!" 검찰청앞 시민들 분노 폭발 ⓒ 권우성

 
남의 악에서 나의 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검찰이 남의 눈에서 티끌을 뽑으며 정의롭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할 까닭이다. 윤석열 총장이 그렇게 섬기고 싶다는 시민들은 검찰 눈에서 흉측하고 거대한 들보를 본다. 

검찰에 대한 최악의 신뢰도 그렇거니와, '중2 일기장'까지 뒤지는 집요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과반 이상의 국민이 조국 장관의 검찰개혁에 호응을 보내는 것을 보라. 한국리서치의 19~20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국이 검찰개혁을 이끄는데 찬성하는 시민이 52%인 반면,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35%에 지나지 않았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조국 개인이 아니라, 검찰 개혁가로서의 조국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검찰만이 자신의 거대한 허물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검찰 내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 사실을 입증한다. 극소수의 개혁 지지자인 임은정 검사는 "검찰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검찰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엄격하게 그리 이중 적용한다면 그런 검찰은 검찰권을 행사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검찰의 폭주를 국민 여러분들이 감시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검찰 조직 내에선 이 지당하고 용감한 지적에 대한 공감과 호응은 커녕, 볼멘 반발부터 불거져 나왔다. 임 부장검사보다 사법연수원 6기수 후배인 장아무개 부천지청 검사는 내부 게시판에 "살아있는 권력인 조 장관 관련 수사를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하다"는 글을 올렸다.

그걸 몰라서 묻는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든, 죽은 권력을 수사하든, 중요한 건 수사의 동기와 목적이다. 산 권력을 대상으로 삼는다고 해서 모든 수사가 정당하고 정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조직을 사랑한다면, 검찰을 수술대에 세워라
 

28일 사법적폐청산연대가 서초동 검찰 앞에서 주최한 제7차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에 주최 측 추산 200만 명이 참가했다. ⓒ 권우성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장 검사는 한 마디 더 보탰다. "정치적 중립과 관련된 부분 등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개혁 또는 원인과 해결책이 전혀 맞지 않는 수사권 조정의 문제점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는 점은 조금 의아하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개혁이 필요한 까닭은 검찰이 이처럼 '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권 조정이 필요한 이유도 명확하다.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그들을 처벌할 방법이 없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이 꼭 필요한 까닭이다.
 
"대한민국 검찰은 국민의 검찰, 국민을 위한 검찰이 되기 위하여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고, 국민의 사정을 살피며, 국민의 생각에 공감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윤석열 총장은 이렇게 인사말을 맺었다. 국민의 대다수의 생각은 "조국식 검찰 개혁"에 있고, 이 개혁안의 핵심이 바로 공수처 신설과 검찰 수사권 조정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조국 장관의 피의자 신분 여부와 상관없이 유효하다. 최근 여론과 검찰개혁 시위가 이 점을 말해준다. 

윤석열 총장은 '새로운 검찰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여, 자신의 조직을 수술대에 눕혀야 한다. 그것만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괴물이 된 검찰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주말에 200만 명(주최 측 추산) 가까운 시민이 검찰 개혁을 외치며 서초동 청사까지 찾아간 터이므로,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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