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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9.18 08:25 수정 2019.09.18 08:25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는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 구조물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민주일반연맹


"톨게이트 노동자 문제를 어떻게 보세요?"

얼마 전, 노동 문제와 관련된 일을 하는 분으로부터 들은 질문이다.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었고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는데도 그 질문에 즉답을 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노동 분야에 경험과 식견이 있는 분의 질문이었으므로 최근 한국도로공사와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 간의 갈등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는 데 대한 이해는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 사안에 대해 직접적으로 질문한 것은 아니었다. 즉, 단순히 "하이패스 보급 등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요금 수납원 업무는 없어질 수밖에 없는데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그 자리를 정년퇴직까지 보장하는 것이 맞느냐?"는 취지의 질문은 아닌 것이다.

이 사안을 다룬 기사들마다 반드시 달려 있는, "공사 정규직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시험도 안 치고 그냥 되려고 하느냐?"는 맥락도 아니다. 이는 표현의 공격성을 빼고 본다면 "정규직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희소해지는 '좋은 일자리'이고 이를 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하고 있는데, 비교적 쉽게 조직에 진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적격 여부 평가도 없이 정규직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문제 제기가 될 것이다. 충분히 논쟁할 만한 의제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원들이 요구하는 정규직은 대졸 공채 신입사원과 동일한 직군이 아닌 '실무직'이다. 임금과 처우 수준을 공채 직원들과 동일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고용 안정 측면에서 직접 고용을 해달라는 요구일 뿐이다. 따라서 이 사안을 놓고 '정규직 일자리가 희소해지는 문제' 전체를 다룰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런 한편, 관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크게 보면 '안정된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들'과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는 사회' 간의 갈등 국면이 여기 저기서 나타나는 중의 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톨게이트 수납 업무는 '시한부'라는 메시지

수납원들을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했던 것은 불법파견에 해당하므로 직접 고용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후에도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를 통한 신규 채용'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총 6500명의 해당 노동자 중에서 자회사에 채용되기를 거부한 1500명이 서울 톨게이트 옥상에서의 고공 농성과 점거 등 투쟁을 계속하는 중이다.

여기에는 이명박 정부 당시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라 (나중에 불법파견으로 판결 받을 정도로) 무리하게 진행한 외주화의 문제, 자회사 고용 형태의 직접 고용이 '정규직 채용' 요구에 부합하느냐의 문제, 그밖에도 도로공사 임원 출신 용역업체 사장들의 이권 독점과 갑질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렇지만 그 핵심은 도로공사가 톨게이트 수납원으로서의 고용을 보장해주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에게 계속 수납원으로 일하고 싶으면 자회사 채용을 받아들이고, 아니면 청소나 쉼터 정비 등의 업무 전환을 받아들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를 제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수납원이라는 업무는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는 '시한부'라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다.

어렵게 대법원까지 가서 '직접 고용' 판결까지 받아 온 노동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럴 거면 대통령은 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정책을 펴서 헛된 희망만 줬나 하는 원망이 터져나올 만도 하다. 또 대부분이 학력이 높지 않은 중년 여성들인 이 노동자들이 사회적 무시와 차별을 당한다고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어려운 질문이 하나 남는다. 이 노동자들에게 도로공사가 '톨게이트 수납원'이라는 업무를 정년 퇴직까지 보장해 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문제다. 앞에서 들은 질문도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 것이다.

안타깝지만 사회 전체, 산업화 이후의 노동의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어떤 일자리가 기술 발전에 의해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다른 일자리가 생겨나는 현상은 자연의 법칙처럼 이어져 왔다. 사라지는 일자리에 비해 늘어나는 일자리의 수가 적지 않은지, 특정 지역에서는 더 많이 사라지고 덜 생겨나지 않는지 하는 우려 때문에 양상이 더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고민이 이어져온 셈이다.

그런 가운데서 어떻게 사회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개인들의 삶이 최소한으로 영향을 받게 할 것인지가 내가 일하고 있는 민간독립연구소인 LAB2050의 주요 연구 주제다. 지난해 군산, 곡성, 거제 등 제조업 도시들의 고용위기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를 연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GM 군산공장 노동자들을 비롯한 군산시민들이 지난해 3월 서울 종로구 세종로소공원에서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철회 촉구 범시민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최윤석

  
군산, 애들레이드, 말뫼 노동자들의 차이

앞의 질문에 대해 내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난해 저 연구 프로젝트 일환으로 군산 GM 자동차 실직 노동자, 호주 애들레이드의 GM 및 그 하청업체 실직 노동자들, 그리고 스웨덴 말뫼 조선업 쇠락으로 1980년대 말 실직을 경험한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점 덕분일 것이다.

세 도시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들이 하던 일을 "내 인생 자체''라고 할 만큼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가족들을 부양할 소득을 줬고, 자신의 사회적 쓸모를 알려줬으며, 동료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직장이었다. 때문에 그 일을 잃은 충격은 누구에게나 컸다. 은퇴 시점까지 그 일이 지속되도록 정부와 기업주가 더 애써주기를 바란 것도 같았다.

그 밖의 다른 측면에서는 차이가 확연했다. 군산의 노동자들은 공장 폐쇄일로부터 불과 3개월여 전에 그 사실을 공식 통보받았고, 그 전후의 상황들에 대해 정부와 경영진에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다른 직장 또는 직업을 알아볼 만한 물리적,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 "정부는 우리에게 도움 준 것이 없고, 관심도 없다"고 생각했고, 일자리에 대한 제한된 정보와 조바심 때문에 동료들과의 마음의 거리도 점점 멀어져 갔다.

호주 노동자들도 정부에 대한 원망이 꽤 있었다. 본래부터 호주는 자국 브랜드 없이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생산 기지 역할을 해 왔다. 인센티브를 더 주지 않으면 공장을 빼 가겠다는 기업 본사들의 요구에 시달려 오던 호주 정부가 '자동차 산업과의 결별'을 선언했고, 이에 따라 공장들이 연달아 폐쇄되자 노동자들의 불만이 정부로 향한 것이다. 

그렇지만 객관적인 상황은 군산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미 2008년 미쓰비시 공장 폐쇄 때부터 경험이 쌓인 터여서 2017년 GM 공장 폐쇄는 3년 전에 노동자들에게 공식 발표됐다. 이 3년의 기간 동안 노동자들은 정부와 GM이 함께 조성한 펀드에서 1인당 2500 호주 달러(한화 약 200만 원)의 훈련비를 사용하며 이직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또,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실업부조 제도를 가진 나라이고, 영국과 유사한 무상의료 시스템을 가진 나라다. 연구 과정에서 만난 세 명의 노동자들 모두 "실직으로 상심했고 새 일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가족들의 삶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서의 상황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30년 전이지만 노동자들이 누린 실업급여, 이직 훈련 및 지원 등의 수준은 지금의 한국보다 훨씬 높았다. 

사회적 신뢰가 있다면 격렬한 저항은 없다

스웨덴 사례에서 놀랄 만한 측면은 다른 데 있다. 강력한 산별 노동조합과 투쟁의 문화를 가진 스웨덴이지만 전국 조선소들이 문을 닫는 가운데서도 격렬한 저항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인터뷰 한 말뫼 코쿰스 조선소 폐쇄 당시 노동조합 위원장이었던 욘-에릭 울손(89)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정부도, 조선소 경영진도 위기를 헤쳐나가 보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울손 자신이 노동이사제에 따라 이사회 일원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경영 상의 결정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조선소 폐쇄 결정을 앞두고 스웨덴 총리가 두 번 노조 사무실로 찾아와서 면담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경영진에 대한 원망은 있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아, 그 때 사장은 코쿰스 집안 사람인데, 지역사회를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해왔어요. 어떻게든 조선소를 더 유지해 보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우리와도 많은 대화를 했지요.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이렇게 상황을 이해했고, 누구도 노동자들에게 정보를 숨기거나 속이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에 격렬하게 저항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사회적 신뢰'가 있었고, '사회적 대화'가 가능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후 말뫼시가 제조업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친환경·생명과학·IT 산업 등 중심 도시로 전환을 꾀했을 때도 시민 전체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다시 한국의 상황을 보자. 우리 노동자들은 이런 사회적 신뢰를 가지고 있거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적 대화를 해본 적이 있을까? 또 실직하더라도 가족들의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국가에서 살고 있나? 그렇지 못한데도 "기술 변화에 따른 일자리 변화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며 노동자들로 하여금 적당히 물러나라고, 기업과 정부에 부담을 주지 말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신뢰의 첫 걸음,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기
   

스웨덴 말뫼의 상징 '터닝 토르소'. 1980~1990년대 조선업 고용위기를 잘 넘기고 혁신을 이룬 것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하다. ⓒ 황세원


물론 사회적 신뢰라는 것이 어느 한 쪽만의 노력으로 생기는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질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한국이 갑자기 복지국가가 될 수 있겠는가 등등 현실적인 반론도 나올 수 있다. 그렇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할 때, 이제부터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는 있다.

한국도로공사 상황을 놓고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경영진은 '톨게이트 수납원'의 규모를 언제까지, 어느 정도로 줄이고 어느 시점에 없애려고 하는지 최대한 합리적으로 예측해서 투명하게 공표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인력을 어떤 식으로 재배치하고, 이에 따른 훈련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노동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처럼 노동자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리와 지원을 하려면 직접고용부터 해야 한다. 그 자체가 공공기관으로서의 책임이자 사회적 신뢰를 쌓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한국도로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민간 기업들도 이와 같은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 사회 전체가 고용의 문제를 이토록 고민하는데, 단지 이윤을 더 남기고 주주에게 더 많은 배당을 하기 위해 고용 비용을 줄이기만 한다면, 그런 기업을 한국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자 이해관계자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기업들은 그런 자세를 취하려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 운운하면서 세제 혜택 등 지원을 청하지는 말아야 한다.

산업 환경 변화, 기술 변화 등 속에서 불가피하게 노동을 줄여야 하는 기업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경영진은 그 사실을 최대한 빨리 노동자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사회적으로 그 대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최소한 노동자들의 안정과 이직훈련을 위한 자금이라도 쾌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책임은 다 하지 않으면서 사회공헌이라며 연탄 나르고 김치 담가 봐야 사회적 신뢰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안전망이 바로 노동자에 대한 존중이다

이상의 논의가 가능하려면 중요한 전제가 있다. 노동의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데에, '평생 직장'도 사라질 수 있다는 데에 노동자와 시민들이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동의는 이미 오래 전에 강제로 이뤄졌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바람,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은 평생 직장, 장기 근속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그래도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차별 없는 직장에서라면, 부당한 힘이 개입되지 않는 조직에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가 남았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조직은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깨달음 하에 개인의 전문성을 키우고, 그럼으로써 더 궁극적인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경향도 강해져 왔다.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 포트폴리오 워크, N잡 등 '자유 노동'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러므로 국가는, 사회는 기업과 노동자들 사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중재자의 역할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 근로 계약을 맺는 관계라면 그것이 확실하고 적법하게 이뤄지도록, 용역 계약을 맺는 관계라면 어떤 갑질도 착취도 없이 양쪽이 동등하게 계약을 이행하도록, 그 모든 관계 속에 인간에 대한 존중이 있고 차별은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가는 노동자들이 어떤 변화에 직면하더라도 가족들의 삶은 지탱될 수 있도록, 그래서 어린 자녀들은 꾸던 꿈을 계속 꿀 수 있도록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그 안전망이 바로 존중이다. 이 존중이 없어서 노동자들이 자꾸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는 점을 정부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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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기자,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홍보팀장으로 일했고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에서 사회적경제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희망제작소 연구원으로 ‘좋은 일, 공정한 노동’ 기획 연구, 보드게임 ‘좋은 일을 찾아라!’ 개발을 담당했다. 현재 LAB2050 연구실장으로 지역 고용 위기 등 주제를 연구 중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 공익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