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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9.10 14:53 수정 2019.09.10 14:53
추석 선물은 준비하셨나요? 저도 선물을 받고, 선물을 준비하는 처지에서 늘 고민합니다. 무엇으로 마음을 전할까? 그래도 저는 술로 대신할 수 있으니, 고민의 폭이 줄어들어 있습니다.

선물할 때에 '선(膳)'은 본디 반찬을 뜻합니다. 약선의 선도 반찬을 뜻합니다. 음식이 선물의 시작이었던 것이지요. 과일, 고기 따위의 음식은 생필품이고 함께 나누기 좋기에 선물하기 좋습니다. 술은 생필품은 아니지만 제사에 꼭 필요하니 명절 때는 필수품이나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저장성이 좋고 또 내가 마시지 않더라도 누군가에서 양도할 수 있어서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선물 받고 싶은 한국 술
 

선물 받기 좋은 한국술 팝업스토어의 모습 ⓒ 막걸리학교

 
추석 명절을 앞두고 서울 압구정로 가로수길에서 'By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한국술 팝업스토어를 열게 되었습니다.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선물 받고 싶은 한국술'로 내걸게 되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있으니, '선물 하기 좋은 한국술'이 더 낫겠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받고 싶은 술로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한국 전통술은 선물하기 좋은 상품으로 흘러오다보니 생겨난 병폐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물 하기 좋은 술이란 말은 듣기 좋지만, 큰 함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 전통주의 유통을 보면, 전체 매출의 40%가 추석에, 또 다른 40%가 설 명절에 이뤄집니다. 전체 매출의 20%가 나머지 10개월이 넘는 기간에 근근이 팔립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명절에 팔리지 않은 선물 세트 전통술은 명절이 지나면 모두 반품되어 빠져나갑니다.

전통술 상설 판매장이 드문 것도 명절 중심의 소비와 관계가 있습니다. 선물로 구매하다보니, 사는 사람은 마시지 않고, 마시는 사람은 사지 않는 묘한 상황도 발생합니다. 술 맛을 알고 즐기는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선물 받았으니까 그저 마시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술을 좋아해서 샀고, 그 술이 맛있어서 즐긴다는 입소문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팝업 스토어의 행사명을 굳이 '선물 받고 싶은 한국술'로 바꿔 부르기로 했습니다. 선물 받고 싶은 술이라면, 사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그 술 맛을 아는 것이 기본일 것입니다.

한국 술맛을 아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하는 심정에서 그렇게 이름 지었지만, 한국 술맛을 두루 아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국술 전문 판매장이 없거니와, 여러 종류의 술을 한 자리에서 시음할 곳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니까요. 그래서 공적 자금이 들어간 전통술 시음 홍보관인 '전통주 갤러리'가 강남에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지요.

술병 디자인도 맛이다
 

유리병에 담긴 전통주, 청명주 ⓒ 막걸리학교

      
선물 받기 좋으려면, 디자인이 돋보여야 할 것입니다. 술의 상표가 아무리 세련되어도, 술병 디자인의 힘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독자적인 병을 지니려면, 금형을 뜨는데 2천만 원, 하루 유리병 제조 작업을 하여 만들어지는 최소 수량 10만 병 정도를 구매하는데 8천만 원하여 모두 1억 원 정도가 듭니다.

그래서 영세한 양조장은 독자적인 술병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몇 백 개 몇 천 개씩 주문하는 도자기병을 쓰는 전통주 양조장이 많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자기병은 술의 빛깔까지 감춰버리니 스스로 소비자와 장벽을 치고 있어서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심 끝에 술 빛깔이 보이는 유리병 술을 주도적으로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충주 청명주의 유리병이 단아하고, 문배주의 원통형 병, 오미나라의 보름달 모양의 증류주 병이 세련되어 젊은 사람들의 눈길을 끕니다. 귀여운 유리병에 담긴 미니어처인 국순당 고구마소주 려, 용인 술샘의 증류주 미르, 제주 시트러스의 감귤 증류주 신례명주에도 사람들의 손길이 자주 갑니다.
 

충남술을 명품화한 백제명주 4종 세트 ⓒ 막걸리학교

 
요사이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지역술 명품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에서는 남도 전통주 품평회를 열어 지역 술을 특화시키고 있고, 충청남도는 충남술 Top 10을 선발하여 홍보하고 있습니다. 개인 기업이 만드는 술이라는 상품을 지자체가 나서서 홍보하는 것은 지역 농산물을 원료로 하여 술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충남문화산업진흥원에서는 충청남도 술 중에서 우수한 증류주 4종을 3년에 걸쳐 선발하여 소서노의 꿈, 웅진의 별, 사비의 꽃, 서동의 달이라 이름 짓고 백제의 이미지를 담아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 술병은 차곡차곡 포개지게 디자인되었고, 종이 가방은 지역 디자이너가 만들었는데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종이 가방의 모양과 디자인이 돋보여, 선물 받고 싶은 술이기도 합니다.

요사이 젊은 세대들은 소문난 맛집을 찾아가 긴 줄을 서기도 하고, 홈파티를 위해 직접 술을 고르거나 빚기도 합니다. 술은 나누기 좋은 음식이고, 선물하기 편한 기호품입니다. 식약처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전국에 1,227개의 양조장이 존재하니, 양조장 숫자보다 더 많은 술이 이 땅에 존재합니다.

지금 소비하지 않더라도, 내가 소비하지 않더라도 술이라는 선물은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귀속될 존재입니다. 누군가에게 술을 선물한다면 내가 선물 받고 싶은 한국술로 권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추석부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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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