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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27 13:34 수정 2019.08.27 13:34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편집자말]
어떠한 성취를 거두는 것은 재능에 달린 일일까, 아니면 운 덕분일까? 이 주제는 나올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 논란거리가 되는 주제다. 각각의 영역에서 성취를 거둔 사람들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마주쳤던 인생의 행운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대체 이 문제의 정답은 무엇일까?

전통적으로 이 문제는 재능의 영역이란 견해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다. 그 때문인지 이 특별한 재능의 근원을 특별한 혈통에서 찾는 경우가 많았다. 영웅은 타고 올라가면 그만큼 특별한 핏줄을 타고 난 것이고 그 재능이 바로 특별한 핏줄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이러했던 과거의 인식은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별하지 않아도 노력을 통해 재능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한 세대 전엔 바로 이러한 신념이 시대를 지배하고, 확고한 '통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엔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경험이 큰 뒷받침이 되었다. 폭발적인 경제성장률 덕분에 베이비붐 세대는 말 그대로 그들이 기울이는 노력에 따라 결과를 얻어 나갔다.

'1만 시간의 법칙'과 월령효과

 

책 <아웃라이어> 겉 표지 ⓒ Back Bay Books

 

이러한 인식에 대중적으로 균열을 낸 것이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라는 책이다. 아웃라이어의 핵심 메시지는 개인의 성취와 결과에는 환경과 운이 매우 큰 영향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 메시지를 위해 꺼내든 것이 그 유명한 '1만 시간의 법칙'이다.

1만 시간의 노력만 있다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알려진 이 주장은 '노오력'을 외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웃라이어>에서 말콤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을 1만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다. 누구나 1만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조건이나 환경을 제공받진 못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 초반부에서 '월령 효과(Relative age effect)'를 근거로 든다. 스포츠 별로 유소년 선수들의 출생월을 살펴보면 선수 선발 기준일에 가까운 날짜에 태어난 선수들의 비중이 높다. 예를 들어 1월 1일을 기준으로 선수를 모집하는 아이스하키는 1월 출생자의 비중이 가장 높고 그다음이 2월, 3월 순이다. 마찬가지로 9월 1일이 기준인 잉글랜드 유소년 축구의 경우도 9월생의 비중이 가장 크다.

선수 선발 기준일에 가깝게 태어날수록 늦게 태어난 경우에 비해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많이 성장해 있다. 스포츠 선수를 선발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재능을 기준으로 뽑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남들보다 먼저 태어나서 먼저 성장한 아이가 더 많은 기회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 어떤 분야보다 재능의 영역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는 스포츠에서조차 재능이 아닌 운이 영향을 미치는 케이스다.

심지어 글래드웰이 인용했던 '1만 시간의 법칙'의 근거가 되는 연구를 발표했던 K. 앤더스 에릭슨은 아예 재능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이다. 그가 아웃라이어로 인한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쓴 <1만 시간의 재발견>에서는 그냥 1만 시간이 아니라 '의식적 연습(Deliberate Practice)'의 1만 시간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의식적 연습'이란 개인의 한계를 살짝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한 매우 밀도 높고 체계화된, 집중력과 정확한 피드백이 필수적인 연습이다. 에릭슨은 재능과 관계없이 1만 시간의 의식적 연습이 뒷받침된다면 우리가 재능이라 부르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에릭슨의 이 주장을 인용해 '당신들도 뭔가를 이루려면 노력해서 의식적 연습을 하라'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앞서 월령 효과 얘기를 한 것을 떠올려 보자. 이 월령 효과는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다. 만약 이들이 프로 레벨, 즉 전문가 시장으로 진입했을 때도 이 월령 효과는 유지될까? 만약 월령 효과가 유지된다면 노력할 수 없는 환경의 문제라고 볼 수 있으므로, 모두에게 1만 시간의 의식적 연습 환경만 제공하면 될 것이다. 여전히 노력하면 된다는 신화는 유지될 수 있다. 이 문제는 FIFA의 산하기관인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에서 발행한 CIES Football Obserbatory 보고서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보고서는 09/10시즌부터 유럽의 31개국 1부 리그에서 활동한 2만8685명의 프로선수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우선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프로 선수의 세계에서도 월령 효과는 존재한다. <자료 1>에서도 알 수 있듯이 먼저 EU 28개국의 분기에 따른 출생비율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고른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09/10시즌부터 14/15시즌까지 활동한 축구 선수들의 출생월을 보면 1분기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2분기, 3분기, 4분기 순으로 순차적으로 낮아지는 현상을 보인다. 이는 전문가 레벨에서도 월령 효과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자료1. EU28개국 국민과 31개 리그 프로선수의 출생 분기 비중 비교, CIES Football Observatory Monthly Report Issue.10 의 자료를 재구성 ⓒ CIES

  
그러나 진짜 중요한 부분은 지금부터다. 출생월의 분포가 고르다면 평균적인 출생일은 7월 1일이다. 따라서 월령효과가 나타나면 그만큼 평균 출생일이 빠르게 나온다. 그렇다면 축구 선수들의 연령에 따른 평균 출생일을 살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자료 2>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선수들의 연령에 따라 평균 출생일이 다르다. 이제 갓 프로무대에 진입한 21살의 선수들은 평균 출생일이 6월 9일이지만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이르러가는 32세의 선수들은 6월 23일이다. 선수들의 나이가 많을수록 월령 효과의 효과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료2. 나이에 따른 평균 출생일의 차이, CIES Football Observatory Monthly Report Issue.10 의 자료를 재인용 ⓒ CIES

이 사실은 월령 효과의 혜택을 입은 일찍 태어난 선수들은 나이가 들수록 전문가 레벨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이탈하는 비중이 더 크다는 것을 말한다. 31개국 1부리그 팀들의 숫자는 정해져 있으며 그 팀의 선수 숫자 또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선수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평균 출생일이 올라간다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팀 스쿼드에서 일찍 태어난 선수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그 자리를 늦게 태어난 선수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일수록 월령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확실히 일찍 태어난 선수들이 데뷔 시점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어째서 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프로레벨에서 늦게 태어난 선수들에게 특별 훈련이라도 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일찍 태어난 선수들이 프로만 진입하면 나태해지는 유전자가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는 오히려 월령효과로 인해 가려졌던 재능이 뒤늦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노력'도 환경과 운이 받쳐줘야 가능하다

에릭슨의 주장처럼 의식적인 연습을 통해 기량을 성장시킬 수 있고 재능은 존재하지 않다면 월령 효과는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유지되어야 한다. 특히나 이 연구의 대상들인 축구 선수들은 프로들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선수들은 모두가 에릭손이 이야기한 '의식적인 연습'을 계속 수행해왔다는점에서 동일한 환경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반기에 태어난 선수들의 이탈이 많은 것은 결국 의식적 연습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재능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노력은 분명 개인의 실력과 성취를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노력은 이를 투입할 수 있는 개인의 환경, 그리고 재능을 배제하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환경과 재능 등은 개인이 노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임을 생각해봐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노력(grit)에 유전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연구(True Grit and Genetics: Predicting Academic Achievement From Personality) 또한 존재한다. 노력에 미치는 영향을 가정환경과 유전의 요소로 나눠 분석해본 결과 유전과 노력의 상관관계가 86%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성과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노력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없으며 때로는 그 노력조차 유전적 요인으로 주어진 성향일 수 있다. 노력은 매우 주관적이며 객관적으로 측정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따라서 '노력' 그 자체보다는, 노력을 투입할 수 있는 환경적 도움과 재능을 포함한 '행운'이 현실에서 더욱 고려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아웃라이어 (10주년 리커버 에디션)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은이), 노정태 (옮긴이), 최인철 (감수), 김영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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