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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7.23 08:37 수정 2019.07.23 08:37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 [편집자말]
"만약 작가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어요?" 

춘천에서 북 토크를 하던 날, 한 청년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상황은 어느 여름 저녁, 편의점 앞. 회식을 마치고 직장 사람들과 편의점 앞 테이블에 둘러앉아 대화하는 중이었고, 그때 한 여성이 편의점 앞을 지나갔단다. 그 여성을 본 중년의 상사가 남성인 동기에게 꺼낸 말, "춘천 여자들에게 잘해줘야 해. 지금은 못생겼어도 나중에 서울 다녀오면 다들 예뻐지거든. 그때 가서 잘해주면 소용없어."

청년의 질문에 순식간에 강연장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경험담이 터져 나왔다.

지방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춘천 사람 같지 않아요" 이 말은 칭찬이 아닙니다 ⓒ pixnio


나는 열 살부터 서른이 되기까지 20년을 춘천에서 살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서울 이외의 지역을 '지방'이라고 정의하니까 나는 20대까지는 지방인, 30대부터는 비지방인이 된 셈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서울로 이사한 친구를 만나면 대화 주제가 자연스레 각 지역의 차이로 흐른다. 서울의 편의 시설과 문화 시설의 발달, 보다 나은 교통편과 각종 지원 시스템을 비교하다 보면 지역 간 '차이'가 아니라 '차별'을 실감한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단체에 강연하러 가면 질의응답 중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다. 지역에서 페미니스트로 오래 살아남는 방법이 있을까요? 수도권에서 강연할 때는 수도권에서 페미니스트로 오래 살아남는 방법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지역 활동가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듣게 되는 건 그만큼 지역에서의 활동이 수도권에 비해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강연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면 물적 인적 자원과 네트워크의 한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지역에서 10년 활동하면 지역 활동가지만, 서울에서 10년 활동하면 전국 활동가가 된다'는 식의 속설을 공유하면서 한숨을 쉬기도 한다. 구조적으로 어려운 조건을 인정하면서도 지역은 무조건 낙후되었다는 식의 편견에도 저항하느라 이중으로 고단한 모습이었다.

지방인이 듣는 흔한 말 베스트가 있다. 근데 왜 사투리 안 써요? (강원도 영동과 영서 지역의 억양은 조금씩 달라요. 근데 누군가는 내 말투에 사투리가 있다고 하고 누군가는 없다고 하고. 대체 사투리의 기준은 뭘까 궁금하네요.) 춘천! 아~ 강원도. 감자 좋아해요? 강원도는 감자잖아요. (춘천은 닭갈비, 강원도는 감자 ^^ 아니요, 저는 감자보다 오일 파스타를 좋아해요~) 춘천 좋죠, 사람들 참 순박하고... 낭만의 도시잖아요. (춘천도 똑같이 다양한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랍니다. 딱히 낭만적이지도 않아요~) 오, 거기에도 영화관이 있어요? 백화점도? 편의점도? (...)

지역 차별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단지 시스템의 차별뿐 아니라 지역과 성별이 연결되며 생기는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학력과 지역을 결합해서 지방대를 싸잡아 '지잡대'라고 비하하거나 지역과 정치색과 인성을 연결하는 전라도민을 향한 차별처럼, 성별과 지역의 결합체이다.

"어머, 춘천에도 이렇게 예쁜 사람이 있어요? 춘천 사람 같지 않아요."

20대 초반에는 이런 식의 말을 들으면 칭찬이라고 생각해서 배시시 웃으며 감사하다고 넘겼는데, 이제는 하나도 기쁘지 않다. 대체 춘천 사람은 어떻게 생겼고 서울 사람은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대구 여자는 미인이다, 경상도 여자는 애교가 많다, 한국 여자는 백인에게 다리를 잘 벌린다, 일본 여자는 남성에게 순종적이다, 남남북녀 등.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베트남 경제부총리에게 "한국사람 중 베트남 여성들과 결혼을 아주 많이 하는데 다른 여성들보다 베트남 여성들을 아주 선호하는 편이다"라는 발언을 해서 문제가 되었다.

이 말은 베트남 여성을 단지 한국 남성의 결혼 대상, 결혼 산업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난 발언이었다. 베트남 여성에게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순종적인 현모양처)을 기대하거나 강요하는 사회의 잣대 역시 투명하게 비친 셈이다. 강요된 역할은 폭력을 정당화한다. 최근 베트남 여성 폭행 영상 사건에서도 남편이 여성을 폭행한 이유가 말이 통하지 않아서, 밥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였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11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다문화위원회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나는 그냥 나일 뿐입니다

범주화는 다양하고 울퉁불퉁한 존재들을 하나의 캐릭터로 매끈하게 묶는다. 성별과 지역, 국가, 학력 등에 따라 몇 가지 이미지로 단순화한다. 정말 우리는 그저 이력서에 기재된 정보 한 장으로, 하나의 데이터로 간편하게 읽히는 존재일까. 구조의 불평등과 더불어 인식의 차별, 그 신앙 같은 믿음에 어떻게 균열을 낼 수 있을까.

홍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을 춘천으로 온 A는 '차가운 시골 여자'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A는 자기가 홍천군에서 자랐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황순원의 <소나기>를 언급하면서 시골+여성의 순수성을 찬양하는데, 이런 방식의 낭만화는 '촌스럽다'는 멸시와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된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피부가 까맣고 촌스럽다고 놀리고, 한쪽에서는 순진하고 순수하다고 찬양하는 모순들. 게다가 시골에서 자랐다고 하면 어린 시절부터 풀 반지를 만들고 맨발로 흙을 밟으면서 자랐을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A는 어릴 적부터 시내에 있는 학원에 다니느라 밤하늘에 있는 별 한 번 제대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글의 마지막에 A는 말했다. 나는 순수한 시골 여자이기보다 차라리 차가운 시골 여자로 불리고 싶다고. 사실 A는 이 말이 하고 싶었을 거다. 차가운+시골+여자도, 따뜻한+시골+여자도 아닌, 나는 그냥 나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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