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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7.11 09:35 수정 2019.07.11 09:35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에서 만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연합뉴스=AP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중국국가박물관은 '부흥의 길(復興之路)'이라는 이름의 전시관을 상설 운영한다. 여기서 '부흥'은 다시 흥해진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번창했는데 어떤 일로 쇠락해졌다는 걸 전제한다. 즉, 중국은 현재의 중국 상태가 그들이 목표로 하는 번성한 시대에 아직 도달하지는 못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과거 역사에서 흥성했던 시대를 다시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미일 테다. 

그러면 중국이 생각하는 과거 번창했던 시기는 언제일까? 바로 '강한성당(強漢盛唐)'이다. '강한 한나라와 번성한 당나라'를 뜻하는 말이다. 과거 중국 영토에 존재했던 한나라와 당나라는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과 몇 가지 부분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과정이 한나라와 당나라의 건국 과정과 비슷하다. 한나라와 당나라가 세워지기 전에 짧은 기간 동안 진나라와 수나라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기 전에 중화민국(타이완)이라는 국가가 잠시 존재했다. 즉, 세 나라 모두 바로 앞 시기에 존재했던 나라가 왜 망했는지를 경험했고, 자신들도 그렇게 하면 망한다는 교훈을 알고 있다.

2019년 10월 1일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년 기념일이다. 중국 정부는 이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벌써부터 준비가 한창이다. 한나라와 당나라가 건국하고 70년이 되던 시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현재의 중국이 맞닥뜨린 상황과 비교해서 알아보겠다. 특히 한나라와 당나라 건국 70년 시기에 주변 나라와의 분쟁을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어떤 방법으로 대처할지를 예측할 때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힘을 기르고 기다린다"

중국에서 유방이 한나라를 세운 시기, 한나라 북쪽에는 흉노라는 강대국이 있었다. 한나라 유방은 초나라 항우를 이기고 한나라를 세운 지 2년째가 되던 해에 그 기세를 몰아 흉노를 공격하지만, 오히려 흉노 군대에 포위당해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는 죽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흉노를 형님으로 모시고 한나라 공주를 흉노에게 시집보낸다는 굴욕적인 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이 경험으로 유방은 주변 강대국과 전쟁을 하기 전에, 먼저 힘을 길러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유방이 죽은 후 정권을 장악한 그의 부인 '여후' 역시 이런 사실을 직시했다. 때문에 흉노가 싸움을 걸어와도 참았다. 이 시기 흉노 지도자 선우가 여후에게 "남편이 죽고 나서 외로울 것이니 나와 같이 살자"는 치욕적인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지만, 여후는 아직 전쟁을 할 힘이 없다고 판단하고 오직 국력을 기르는 데 매진한다.

중국 덩샤오핑 역시 건국 초기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를 외교 방침으로 삼고, 오직 경제 발전에만 집중했다.

한무제는 한나라 건국 61년이 되는 해(기원전 141년) 황제가 된다. 한무제가 황제가 되었을 때, 한나라에는 선대 황제(유방, 여후)들이 축적한 부가 쌓여있었다. 하지만 한무제는 또 10여 년을 기다리며 힘을 기른다. 이 10년 기간 동안 한무제는 흉노에게 쫓겨간 월지국과 동맹을 맺기 위해 장건을 서역을 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실크로드를 개척해 서역의 우수한 말과 경제적 부를 얻었다.
 

한나라 군대와 흉노 군대가 전쟁하는 한나라 화상석 유물(중국 산동성박물관) ⓒ 김기동

 
이제 시기가 왔다. 한무제는 기원전 134년(한나라 건국 72년) 드디어 흉노와 전쟁을 시작한다. 하지만 흉노도 만만치 않았다. 전쟁은 장기전으로 접어들었고, 한무제는 죽기 전까지 흉노를 이기지 못했다.

이 전쟁으로 흉노는 동서로 나누어지고, 그 중 동흉노가 전쟁을 시작한 지 70년이 지나서야 한나라에 항복한다. 한나라는 이후에도 서쪽 지역 흉노와 계속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는 그동안 축적했던 경제적 부가 소진되고 결국 멸망(전한)의 길로 들어선다. 흉노 역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강한 상대방이 싸움이 걸어오면, 어지간하면 참아야지 함부로 전면전을 벌이면 결국 둘 다 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경제 이익의 길목을 두고 다투다

당나라는 이세민의 아버지가 건국했지만, 당나라 실권자는 처음부터 당태종 이세민이었다. 당태종이 당나라를 세울 시기 주변에는 여러 강대국이 있었다. 동쪽에는 고구려, 북서쪽에는 돌궐, 남쪽에는 토번이 있었다.

당태종 역시 당나라를 세우자마자 그 기세를 몰아 주변 강대국들과 전쟁을 벌였지만, 분주하기만 했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과거 한나라 시대 유방이 흉노에게 한나라 공주를 시집보냈던 것처럼, 당태종 역시 당나라 황실 공주를 토번에 시집보내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는다. 중국 덩샤오핑이 건국 초기에는 오직 나라의 힘을 쌓아야 한다는 '도광양회'를 말한 이유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당태종 이후 당나라를 운영한 고종과 측천무후는 북서쪽의 돌궐, 동쪽의 고구려와 싸워 중국의 동, 서, 북쪽을 해결하지만, 이 과정에서 남쪽 토번이 힘을 길러 강대국으로 성장한다.
 

당나라 군대와 토번 군대가 전쟁했던 중국 칭하이성 청해호수 모습 ⓒ 김기동

 
당나라가 건국하고 70여 년이 지난 6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토번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이 당시 토번은 실크로드의 남쪽 길(현재 중국 칭하이성)을 장악해 당나라를 긴장시킨다. 당나라 시대 실크로드 길은 당나라가 경제 이익을 얻는 길목이었다. 당나라는 이 길을 통해 비단을 유럽에 무역해 경제적 부를 축적했는데, 이 길목을 토번이 차지하자 수출에 문제가 생긴다.

그 시대 세계 경제의 길목이었던 실크로드를 두고 벌인 강대국 당나라와 토번의 마찰은 30년 이상 지속된다. 때로는 전쟁을 통해, 때로는 협상을 통해, 결국 두 나라가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후 당나라 건국 100년이 지나고 현종이 즉위하면서 잠시 상황이 바뀌긴 했지만, 두 나라가 공존하는 형태의 상황은 두 나라가 망할 때까지 계속됐다.

2019년 6월 말 G20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을 잠시 멈추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두 나라 간의 무역전쟁은 다른 형태(기술, 외환)의 싸움으로 변하면서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한나라와 당나라의 역사를 잘 알고있을 지금의 중국이 앞으로 미국과의 마찰을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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