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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7.08 19:54 수정 2019.07.08 19:54

임정로드 탐방단 기념사진(영안백화점 옥상에서) ⓒ 조종안

 
지난 6월(1일~8일까지), 기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26년의 발자취(상하이에서 충칭까지)를 따라 걷는 '임정로드 탐방단 1기' 단원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첫날(6월 1일) 일정은 오전 10시쯤 상하이 푸둥 공항에 도착, 점심을 먹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한 서금이로(옛 김신부로)와 두 번째 청사가 있던 회해중로(옛 하비로) 거리를 거니는 것으로 시작했다.
 
중국 현지 가이드와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임정로드 4000km> 저자) 안내로 예관 신규식 선생이 거주했던 남창로(南昌路) 100농(弄) 5호,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마지막으로 식사하며 회중시계를 교환했던 원창리(元昌里) 13호, 김구 선생 가족이 살았던 영경방(永慶坊) 10호, 마당로 임시정부 청사, 신천지 카페 거리 등을 돌아봤다.
 
"잘 보셨습니까. 우리가 지금 향유하고 있는 국호(대한민국)와 헌법, 그리고 민주공화제가 처음 만들어진 제1호 청사(서금이로)와 2호 청사(회해중로) 자리. 그리고 신규식 선생 거주지 등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관계로 역사학도나 언론사가 취재차 다녀갔을 뿐이죠. 제 생각에 일반 투어를 통해 돌아보기는 여러분이 우리나라 최초일 겁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유적지들을 돌아보며 감동과 감격, 안타까움이 교차했던 임정로드 첫날. 김종훈 기자 설명에서 '일반 투어를 통해 돌아보기는 여러분이 우리나라 최초일 것'이란 대목은 당장 의열단 단원이라도 된 것처럼 우쭐해지게 했다.

임정 요인들 신년하례식 열렸던 영안백화점
 

광장인지 도로인지 헷갈리는 영안백화점 앞 거리모습 ⓒ 조종안

 
탐방단은 남경로(南京路)에 위치한 영안백화점(옛 영안공사)으로 이동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거리는 인파로 넘쳐났다. 광장처럼 넓은 도로를 꽉 메운 사람들, 그들의 움직임에서 생기가 느껴졌다. 남경로는 상해 최고 번화가로 아편전쟁 이후 대외개방 때 외국인 거리로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조형미가 이채로운 유럽식 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5분쯤 걸었을까. 영안백화점 건물이 가로수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민다. 1918년 영국인이 신축했다는 상하이 최초 백화점이다. 6층 건물로 안창호 선생이 애용했던 여관을 비롯해 음식점, 놀이공원 등의 부속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고 한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 후 임정 요인들이 해마다 신년 축하 모임을 가졌던 유일한 발자취이기도 하다.
 
풍찬노숙도 마다하지 않았던 애국지사들. 그들은 임시정부 수립 후 셋방을 전전하면서도 해마다 신년 하례회를 열고 그해 밑그림을 그렸다. 그러한 활동을 증명이라도 하듯 김구, 안창호, 이동녕, 김철, 신규식, 신익희 등 애국지사 59명이 1921년 1월 1일 신년회를 마치고 건물 옥상의 기운각(綺雲閣)을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 한 장이 전해진다.
 
당시 기운각은 3층 석조 누각으로 '비단 구름의 누각'이라 불렸으며 찻집이 운영됐다고 한다. 그 후 찻집은 폐쇄됐고 옥상 출입도 금지돼 있었으나 현지 가이드의 사전 교섭으로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탐방단은 100년 전 임정 요인들처럼 팔짱을 끼고 단체 사진을 찍은 뒤 방명록에 사인을 남기고 옥상에서 내려왔다.

의열단 단원들의 의거 현장 와이탄에서
 

붐비면서도 차분하게 느껴지는 와이탄 거리(세기공원 부근) ⓒ 조종안

 
탐방단은 이른 저녁을 먹고 황푸강변에 자리한 와이탄(外滩)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국어 간판과 유럽풍 빌딩숲의 오묘한 조화가 영욕의 상하이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아편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국은 1873년 이곳에 영사관을 설치한다. 이후 대규모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국제 금융센터가 조성됐으며 지금은 상하이 명물로 자리매김하였다.

상하이 여행객은 빠지지 않고 들른다는 와이탄. 광장도 도로도 산책 나온 사람들로 들끓는다. 수백의 청춘남녀가 쌍쌍이 거리를 거닐거나 그늘에서 밀회를 즐기고 있다. 김종훈 기자에 따르면, 와이탄 한가운데 위치한 공공마두(옛 세관마두)는 1922년 봄 의열단(오성륜, 김익상, 이종암 등)이 의거를 일으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그해(1922) 3월 28일 일본군 육군대장 다나카 키이치(田中義一)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귀국하는 길에 상해에 들른다.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의열단(약산 김원봉을 단장으로 하는 무장독립운동단체)은 다나카 대장을 사살하기로 결정하고 치밀하게 계획한 뒤 실행으로 옮긴다.
 
오성륜은 다나카가 기선에서 내릴 때, 김익상은 오성륜이 실패할 경우 다나카가 승용차로 향할 때 저격하기로 한다. 두 번의 실패에 대비해 이종암은 다나카가 승용차에 오를 때 저격하기로 순서를 정한다.
 

의열단 의거에 대해 설명하는 김종훈 기자와 탐방단 ⓒ 조종안

   

<임정로드 4000km> 책을 내보이며 설명하는 김종훈 기자 ⓒ 조종안

 
"의열단원 오성륜이 다나카 키이치에게 먼저 권총을 발사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다나카 키이치 뒤에 있던 영국 부인이 총에 맞았다. 그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뒤이어 김익상이 폭탄을 던졌으나 터지지 않았다. 다나카 키이치는 곧바로 현장에서 몸을 피했고, 김익상과 오성륜도 현장에서 탈출하려 했지만, 와이탄 인근에서 체포돼 상하이 일본총영사관 경찰서로 잡혀갔다.
 
조사를 받던 도중 오성륜은 1922년 5월 2일 탈출에 성공하였고, 김익상은 결국 나가사키 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 받지만 몇 차례의 감형을 거쳐 20년을 복역하였다. 1942년 20년 복역을 마친 김익상은 고국으로 돌아갔다. 집안은 이미 풍비박산이 난 상황이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출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익상을 찾아온 형사 하나가 물어볼 말이 있다며 그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이후 의열단원 김익상 의사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 책 <임정로드 4000km> 116~117쪽에서
 

훗날 김원봉은 형사를 따라간 후 소식이 없는 김익상 의사에 대해 '아무래도 김익상 동지는 그 악독한 놈들(일본 경찰) 손에 참혹한 최후를 마친 것 같구료'라고 회고한다.
 
다나카 대장 저격 사건 현장에서 숨진 영국 부인은 상해로 신혼여행 온 영국인 신부였다. 허니문 여행 중 불행하게 신부를 잃은 영국인 톰슨은 저격자 오성륜이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는 인물임을 알고 일본 사법당국에 관대하게 처리하도록 진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와 현재 넘나들었던 와이탄 
 

황푸강변에서 기념촬영 하는 사람들(배경은 푸동지역) ⓒ 조종안

 
황푸강(黄浦江)을 경계로 푸동 지역과 마주보고 있는 와이탄.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상하이 시민 모두가 쏟아져 나온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 옛날 이곳은 부두였고, 부근 지역은 모래사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0년대 푸동 지구가 개발되면서 상하이 최고 관광지가 됐다. 특히 야경이 뛰어나 홍콩에 비유되기도 한단다.
 
옛날신문에 따르면 상해사변(1932) 당시 와이탄 지역은 화마에 휩싸인다. 까마귀 같은 일본 비행기들은 연일 포탄을 투하하고, 철갑괴물(탱크)들은 대포를 빼치고 시가지를 누볐다. 그때마다 시민들은 고양이를 본 쥐처럼 건물 속으로 대피했다. 신문은 바람이 불면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며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코로 맡는 것 모두가 '전쟁의 공포'라고 덧붙인다.

"번뇌의 이 여름밤, 오인하는 강물 소리. 처연한 달빛에 멀리 고국을 연모하면서 우는 이 그 얼마나 되랴! 의식주 생활의 세 요소를 가지지 못하고 이역에서 방황하는 룸펜. 조국에서 방축된 망명객, 모두 다 수심을 품고 배회하는 이 밤의 강안이다. 야월(夜月)을 바라보면서 통음(痛飮)하는 저 주객, 강물 소리에 맞추어 휘파람 불면서 배회하는 저 유랑의 이국인(異國人). 모두가 번뇌, 애수를 말하는 황포강 여름밤의 눈물겨운 광경이다."
 

일제강점기 상해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신언준(1904~1938) 선생이 1934년 <신가정>(9월호)에 기고한 글 '상해의 여름' 한 대목이다. 그는 상해는 '코스모폴리탄의 도시'라고 정의하며 달빛이 처연하게 비치는 황푸강 주변은 "단꿈을 속삭이는 청춘남녀도 있지만 숙박할 곳이 없어 초지(草地)를 이불삼아 잠을 자려는 룸펜꾼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들은 백노인(白露人), 인도인, 중국인 또는 조선인도 있다"라고 적고 있다.
 

불빛이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황푸강 유역 야경 ⓒ 조종안

 
전쟁을 몇 차례 겪은 와이탄, 그러나 지금은 '세계 건축 박물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화려하게 변모했다. 20세기 초에 지은 석조 건물들은 지금도 백화점, 호텔, 은행, 공공기관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건물들이 파란색, 주황색, 빨간색 등 오색찬란한 불빛을 쏟아낸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빛의 향연이 감탄을 자아낸다.
 
산책 나온 시민과 관광객들은 강물을 좌우로 가르며 화려한 조명을 발산하는 유람선과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마천루들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필자도 분위기에 휩쓸려 황홀한 밤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유람선에 올라 황푸강을 누비며 바라본 야경은 '상하이 밤은 낮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소문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임정로드 탐방 첫날은 그렇게 낭만적인 정취가 가득한 상하이 야경을 조망하는 것으로 일정을 모두 마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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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