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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25 19:54 수정 2019.06.25 19:54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편집자말]
처음 경찰서에 끌려간 건 열일곱 살 여름이었다. 당시 나와 친구들은 갑갑한 학교, 불안한 가정을 견디지 못해 거리를 방황했다. 잔뜩 쌓인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필요했다. 훌쩍 떠날 수 있는 여건도 안 되고, 다른 문화적 자원이나 돈도 없는 상태에서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술이었다.

미디어에서는 주인공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장면이 주로 등장했으니까. 나와 친구들에게 술은 금기를 넘는 해방의 징표였다. 우리는 술 구매가 가능한 가게를 수소문했다. 소주를 잔뜩 사서 어느 폐가로 향했다. 또래 사이에서 그 폐가는 마치 대학가의 유명한 포장마차 같은 장소였다.

폐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한 잔 두 잔 술잔을 넘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동네 주민들이 비행 청소년들이 모여 있다고 신고했다며 혹시 우리가 본드를 불었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나와 친구들은 파출소에 앉아 각자의 보호자를 기다렸다. 헐레벌떡 달려온 엄마는 아빠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하자고 했고, 나를 크게 혼내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연애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 스틸 이미지 (사진은 해당 글과 관련 없습니다)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처음 키스를 한 건 열여섯 살 가을이었다. 아빠와 엄마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집에 있는 매일이 고문인 시기였다. 그날도 집을 뛰쳐나와 아파트 벤치에서 울고 있는데, 동네 친구 M과 마주쳤다. M은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사는 동네 친구였다. 가끔 만날 때마다 M에게는 상처가 하나씩 늘어 있었다. 엄마가 던진 리모컨에 맞아서 생긴 상처, 엄마에게 들은 폭언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M과 나는 주로 채팅으로 소통하는 사이였다. 학교도 집도 우리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사이. 우울한 표정의 나를 보고 M은 왜 그러냐고 꼬치꼬치 물었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키스를 하게 되었다. 눈물범벅이 된 나에게 닿은 타인의 살결이 구원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M과 나는 연애라는 걸 했다. 우리의 연애는 아슬아슬했다. 둘 다 학교에 다니느라 시간도 돈도 없어서 미디어에 나오는 데이트 코스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도 으슥한 아파트 벤치나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후미진 계단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몸을 쓰다듬을 수는 있었다. 가끔 부모님이 집을 비우면 서로를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그때 우린 자주 말하곤 했다. "우리가 얼른 스무 살이 넘으면 좋겠다. 그럼 일해서 돈 벌어서 집도 나올 수 있고, 이렇게 행복하게 매일 살 수 있을 텐데." 그땐 그 미래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청소년기에 머물렀던 공간을 떠올리면 학교보다 오래된 폐가나 공원 구석 벤치나 껌 딱지가 붙어 있던 어두운 계단이나 아파트 옥상이 먼저 그려진다. 학교나 학원이 아닌 공간에 있는 청소년에게 향하는 시선을 알았기 때문인지 그때의 나는 점점 더 구석으로 밀려났던 것 같다.

서른둘이 된 지금 나는 비교적 자유롭게 (비록 월세지만) 내가 원하는 집을 선택할 수 있고, 내가 함께 살고 싶은 사람과 살아갈 수 있고, 원하면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고, 쾌적한 장소에서 술을 먹거나 섹스를 할 수 있다. 한때 내가 청소년이었던 걸 잊고 살아가듯, 내가 머물던 공간도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스킨십은 왜 수치스러운 행위가 되나

얼마 전 유, 초, 중, 고등학교 선생님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프로그램에서 강연을 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어떤 선생님이 필요했는지. 학교에서 배웠던 성교육과 내가 경험한 성적 경험의 차이를 매우기 위해서 어떤 이야기가 필요한지 고민하면서 강연을 준비했다.

토론 시간, 한 선생님이 사례를 들려주었다. 중학교 2학년 커플이 학교 구석에서 키스를 하다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들켰는데, 그 때문에 소란스러워져서 선생님이 키스한 학생들을 혼냈다고 한다. 그 학생들은 혼난 뒤에 자기들의 스킨십을 이른 1학년들을 찾아다녔다.

선생님은 왜 해당 학생들이 반성하지 않고 1학년에게 강압적으로 행동하는지 모르겠다며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자리에 함께한 선생님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학교는 공공장소이니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고, 숨어서 한 건데 그걸 굳이 봤다고 선생님에게 이른 1학년 학생들이 잘못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우선 청소년에게 애초에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 물었다. 학교도 공적 공간, 거리도 공적 공간. 사적이라고 불리는 집이나 숙박업소는? 탈가정을 하지 못한 많은 경우, 보호자와 함께 있는 집을 청소년의 사적 공간이라 할 수 있을까. PC방, 노래방, DVD방은 일정 시간 이후에 청소년의 출입을 금지한다. 숙박업소에서는 청소년의 혼숙을 법적으로 금지해서 애초에 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청소년에게 애초에 허락된 공간이라는 게 있긴 할까. 

나는 혼난 학생이 1학년을 찾은 이유는 명확하다고 말했다. 마치 '내리갈굼'의 문화처럼 선생님이 권력으로 학생을 눌렀으니 그 권력을 보고 배운 2학년이 1학년에게 똑같이 휘두른 것뿐이다. 문화는 서로의 옆모습을 통해 만들어지니까. 게다가 스킨십이 혼날 거리가 되는 순간, 스킨십은 그 자체로 수치스러운 것이 된다.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오히려 자기 몸을 수치스러워 하며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문화 때문이 아니었을까. 숨기고 금기가 될수록 폭력은 더 교묘하게 일어나고, 침묵은 윤리가 된다.

"평등해야 안전하다"
 

6월 8일, 청주 소재의 한 편의점에 두 개의 대자보가 붙었다. 한 개는 콘돔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편의점 주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적으로 연령과 상관없이 누구나 콘돔을 구매할 수 있다'며 반박한 어느 청소년의 것이다.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스쿨 미투' 이후, 성폭력에 접근하는 방식이 안전과 보호주의 담론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최근에는 한 편의점 점주가 청소년에게 콘돔을 팔지 않겠다는 안내 문구를 편의점 앞에 붙였다. 한 청소년은 그 안내문 옆에 장문의 대자보를 붙였다. "콘돔은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입니다. (...) 청소년에게도 콘돔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여러분 당당하게 콘돔 구매하세요!" 

생리라는 말도 입에 담지 못하고, 스킨십을 하면서 상대와 나 둘 다 콘돔을 사러 갈 생각을 못해서 망설이는 사이 내 청소년기 섹스는 자주 안전하지 못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자퇴했을 때, 마찬가지로 자퇴한 A와 친해졌다. 하루는 A가 나를 집에 불렀다. 집에 들어서자 A는 다짜고짜 내 몸을 애무했는데, 그가 갑자기 부엌으로 달려가서 가져온 건 주방에서 쓰는 투명한 비닐이었다. 그는 비닐을 감싸고 꾸역꾸역 나에게 마찰했지만, 뻑뻑한 그것은 들어갈 리 없었고 나는 다쳤다.

왜 나는 A에게 싫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이 일이 내가 청소년이라서 생긴 문제였을까. 순결에만 밑줄 긋던 성교육과 청소년이라는 계층적 상황에서 내 욕망은 철저하게 금기였다. 쾌락과 즐거움, 불쾌와 폭력에 대한 기준을 정리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경험을 폭력이라고 규정하고 "NO"라고 말할 힘을 가질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장애여성공감의 이진희 활동가는 발달장애여성의 경우를 예시로, "성적 일탈이라고 간주하는 행동을 소거하기 위한 방식은 소통과 관계 맺기의 시행착오를 차단한다. 경험의 부족으로 성적 의사소통과 실천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만들어갈 역량을 쌓기 어렵다. 실패할 기회의 차단만이 답일까"라고 질문하며, "평등해야 안전하다"고 말한다. 청소년이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자원과 차별적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는 보호는 보호의 탈을 쓴 권리와 욕망의 박탈일 뿐이다.

폐가, 계단, 옥상, 그리고 비닐. 내 청소년기를 채운 공간과 끔찍한 물건이 아주 먼 옛날이야기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더 안전하게 욕망하고 실패할 권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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