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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1.08 16:11 수정 2018.11.08 16:11
 

박재혁 의사 동상부산어린이대공원 안에 있다. ⓒ 박재혁 의사 유족 제공

 

의열단의 첫 거사가 좌절되고 다수의 대원들이 피체되면서 김원봉과 상하이의 단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적의 소굴을 파괴하여 한민족의 원한을 갚고 민중을 분기시키고자 했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무엇보다 소중한 단원들이 혹독한 고문과 생명을 잃게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반드시 보복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번 거사에 나섰다가 피체된 단원들은 대부분 부산경찰서에 수감되고, 경찰서장 하시모토는 악질 중의 악질로 소문이 난 인물이다. 어렵게 구입했던 폭탄 등 무기도 모두 그들에게 압수되었다.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던 박재혁은 8월 어느 날 김원봉으로부터 급히 상하이에서 만나자는 전보를 받았다. 의열단의 공약 10조 7항에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초회(招會)에 필응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하루라도 지체할 수 없었다. 
 
상하이에 온 박재혁은 김원봉에게서 저간의 사정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곧 알았다. 부산 출신으로 그쪽 사정을 잘알고 있을 것이어서 자신이 선택되었을 것도 알고 있었다. 이미 망명길에 오르면서 한 목숨을 조국광복에 바치기로 맹세했고, 의열단에 입단했을 때 김원봉과도 약조했었다. 
  

1920년대의 부산경찰서 모습왼쪽 건물은 일본거류민사무소, 가운데 건물은 부산이사청, 오른쪽 건물이부산경찰서. ⓒ 박재혁 의사 유족 제공

 

자신의 가슴에는 언제나 의열단의 '7가살'과 5가지 '파괴대상'이 응어리처럼 새겨져 있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기회가 온 것이다. 부산에 있을 때부터 하시모토 경찰서장의 포악함은 익히 들었던 터였다. 그는 3ㆍ1혁명 때에도 수많은 시민들을 고문한 당사자였다. 
 
"지금 곧 부산으로 가서 부산경찰서장을 죽이고 오시오."
 
김원봉의 부산경찰서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증오는 그냥 서장을 죽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김원봉은 한마디를 덧붙혔다. 
 
"죽이되 그냥 죽일 것이 아니라 누구 손에 누구에 의해 무슨 까닭으로 죽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깨닫도록 단단히 그의 죄를 밝히도록 합시다."

그러나 훗날 김원봉은 자기가 한 이 한마디가 혹 살아 돌아올 수도 있었을 동지를 현장에서 죽게 했노라고, 8ㆍ15 후 고국에 돌아온 후에도 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슬픔에 잠기곤 했다. (주석 1)
 
박재혁은 김원봉으로부터 폭탄 2개, 군자금 300원, 여비 50원을 수령하고, 1920년 9월 초 상하이를 떠나 일본을 거쳐 귀국길에 올랐다. 하시모토를 처단한다는 1차적인 목표와 의열단의 첫 거사가 좌절됨으로써 이번에는 반드시 상공하여 의열단의 위용을 보여줘야 하겠다는 무거운 사명을 안은 대장정이었다.
 
박재혁은 떠나기 앞서 하시모토가 중국 고서를 유독 좋아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상하이 서점을 돌아 상당량의 중국고서를 구입하였다. 

"1920년 9월 초 그는 중대한 사명을 띠고 상해를 떠나기 앞서 부산 경찰서장 하시모토가 고서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얻어 고서적상으로 가장하기 위해 고서를 한 짐이나 되게 준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주석 2)
 
박재혁은 대범하면서도 대단히 치밀한 성격이었다. 편리한 선편을 택하지 않고 우회로를 통해 입국한다. 

그는 일본 기선을 타고 황해를 건너 나가사키(長崎)로 갔다. 그의 본래 계획은 나가사키에서 다시 시모노세키(下關)로 가서 그곳에서 연락선을 타고 부산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나가사키에 상륙해서 알아보았더니 시모노세키까지 가지 않고도 나가사키에서 대마도를 거쳐 곧장 부산으로 갈 수 있는 배편이 있었다. 

관부연락선은 탈 때나 내릴 때나 일제의 형사들이 조선 사람을 감시하고 있었으므로 위험하였다. 그러나 대마도를 거쳐가는 배는 그런 위험성이 적을 것 같았다. 그는 상해에 있는 동지에게 그런 뜻의 편지를 보내고 나가사키를 떠났다. 그가 무사히 부산에 상륙한 것은 그달 13일 저녁이었다. (주석 3)

박재혁이 나가사키를 떠나기 직전 상해에 있는 동지들에게 보낸 봉함엽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작일안착장기(昨日安着長崎),상황심여의(商況甚如意),차제군혜념지택의(此諸君惠念之澤矣), 추초량풍(秋初凉風), 심신쾌활(心身快活), 가기허다수익(可期許多收益),불가기재견군안(不可期再見君顔), 별유상로비전익호(別有商路比前益好), 연구칙가지야(硏究則可知也).

어제 나가사키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거래가 뜻대로 잘되니 이것이 모두 여러분의 염려 덕택인가 합니다. 초가을 바닷가 바람에 심신이 쾌락합니다. 많은 이득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당신 모습을 다시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1920년 9월 4일 와담(臥膽) 배(拜)


글 속에 '상황(商況)'이니 '상로(商路)'이니 '수익(收益)'이니 한 것은 물론 그 편지가 왜적의 검열을 받을 경우에도 평범한 상인의 편지처럼 믿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암호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나 편지 끝에 덧붙여 적어놓은 14자의 문구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암호였다. 
그러나 이 암호는 결코 풀기 어려운 암호가 아니다. "연락선을 타지 않고 대마도로 해서 간다"라고 읽으면 된다. 
 
그러나 "가기허다수익(可期許多收益)이나 불가기재견군안(不可期再見君顔: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당신 모습을 다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이라는 글은 살인 즉 얼마나 비통한 말인가? 그러나 비통하게 느끼는 것은 글을 읽는 우리들이고 장작 당사자는 오로지 민족을 위한 자기 사명을 다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었다. (주석 4)

주석
1> 송건호, <의열단>, 52쪽, 창작과 비평사, 1985. 
2> 김창수, <항일의열투쟁사>, 134쪽, 독립기념관, 1991.
3> 송건호, 앞의 책, 56쪽. 
4> 앞의 책, 5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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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