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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0.11 10:28 수정 2018.10.11 10:28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를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행복한 나',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우리 안의 덴마크, 우리 안의 꿈틀거림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나의 마흔하나 인생은 셋째를 낳기 전과 낳고 난 후로 나뉜다. 내가 아이를 셋이나 키우게 될 줄을, 그것도 남자아이만 셋이라니.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두 살 터울의 두 놈들을 키우며 온갖 산전수전, 공중전, 고통을 겪은 후 육아를 졸업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 키우는 게 안 맞는 사람이야.' 그런데 우리 집 경제 상황이 최악일 때, 남편과의 관계가 제일 좋지 않을 때, 선물처럼 셋째가 찾아왔다. 태명 또한 복댕이(복덩어리의 사투리)다. 요 녀석, 가정 붕괴 위기로 위태롭던 우리 집을 살렸다.

셋째를 임신하고 출산을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초·중·고·대를 쉼 없이 달리는 아이들처럼 나 역시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한 줄 알았고, 그렇게 첫째와 둘째를 자연분만으로 병원에서 낳았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자연육아와 자연주의 출산을 알게 되었는데, 출산의 방법을 엄마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7개월까지 산부인과와 조산원을 병행하다가 결국 막달에 자연주의 출산을 하기로 결심했다.

또 다른 길, 또 다른 선택

내가 살고 있는 울산에는 자연주의 출산을 하는 곳이 없다. 그래서 주말을 이용해 부산에 있는 조산원을 다니며 진료를 봤고, 진통이 온 새벽에는 잠든 두 아이를 깨워서 택시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주말부부였던 남편이 거제도에서 달려와 드디어 우리 가족은 한자리에 모였고, 가족이 함께 늦둥이 막내를 만나는 자연주의 출산의 행복한 순간을 경험했다. 인위적인 처치나 약물 없이 아이 스스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그 시간 동안 진통의 순간은 고통이 아닌 감동의 순간이었다. '스스로 선택하니 즐겁다!' 하나의 길만이 정답이 아니라 또 다른 길, 또 다른 방법과 선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셋째를 임신했을 때, 겉으로 보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속으로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더불어숲'이라고 불리는 마을의 작은 도서관 덕분이다. 9년 전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힘든 육아에 '쉼'이 찾아왔을 때, 도서관 부모교육을 찾았다. 나쁜 엄마 말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내 아이만은 잘 키우고 싶었다. 좋은 책을 읽어주고 싶어서 도서관 엄마들과 어린이 그림책을 공부하고, 자연에서 놀게 하고 싶어서 여섯 가족과 숲놀이 자연육아 모임도 진행했다.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활동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삶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그림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모임을 함께하는 언니, 동생들과 끈끈한 정을 쌓고 있었다. 숲놀이 자연육아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숲에서조차 아이들에게 뭔가를 배우게 하려던 엄마들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연령과 성격의 아이들이 어울리고 부딪히는 가운데 엄마들도 깨지고 붙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단단해졌다. 내 아이와 가족만이 전부였던 삶에 공통분모가 생기고, 교집합과 합집합이 쌓이면서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까지 관심을 갖고 생각하게 되었다. 챙겨주고 싶은 사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마을이 키우는 아이들

'더불어숲' 마을 도서관에서 열린 셋째의 돌잔치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묵혀놓았던 한복을 결혼 15년 만에 꺼내 입었다. 공동육아를 함께한 도서관 엄마들과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누나와 형들은 풍선을 불어주고, 한 이모는 돌상을 세팅하고, 한 이모는 미역국을 끓이고 불고기를 볶고, 다른 이모는 사진을 찍어주는 등 모두 신나게 축제 같은 돌잔치를 만들었다. 오랜만에 꺼낸 한복을 입고 다 같이 찍은 돌잔치 인증 샷. 우리는 친자매보다 더 자주 만나고, 더 자주 밥을 먹고, 더 많은 추억을 쌓았다.

2016년 울산에 지진이 일어난 날에는 아이 셋을 데리고 도서관으로 몸을 피했다. 그곳에서 엄마들, 아이들과 밤을 새웠다. 출장과 야간근무로 집에 없는 남편의 빈자리를 함께 채웠다. 함께 있으니 무섭지 않았고, 서로가 힘이 되었다.

엄마들은 울산 근교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걱정됐다. 다음날 울산시청에서 긴급 탈핵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잠든 아이들을 뒤로 하고 도서관에서 손 피켓을 만들었다. '역대 최고 지진, 핵발전소 이제 그만!'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 아기 띠를 하고 온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나도 100일 된 셋째를 업고 탈핵집회에 참석했다. 연대의 힘은 강했다. 아이를 키우며 점점 사회와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성미산마을공동체를 책과 영상으로 접하고, 대구 안심마을공동체, 홍성 풀무공동체, 부산 화명동 대천마을공동체를 탐방하면서 참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공동체를 탐방하고 오는데, 왜 울산에는 이런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지자체에서도 전국의 마을 공동체를 탐방하고 오는데, 왜 울산에는 성과가 없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지금 나부터 꿈틀"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알겠지, 누군가 해결해주겠지, 하고 다들 손 놓고 있으면, 결국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 또한 그 누군가를 기대했던 것 같다. 지금 나부터 꿈틀거려야 하는데 말이다. 이제는 '더불어숲 작은 도서관'이라는 공동체 경험을 토대로 그 안에서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마을의 공동육아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어린이 식당 ⓒ 더불어숲작은도서관

 
며칠 전, 도서관에 어린이 식당이 문을 열었다. 도서관에서 격월간 교육잡지 〈민들레〉 읽기 모임을 8년째 하고 있는데, 이 잡지에 소개된 일본의 어린이 식당 이야기가 너무나 감동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맞벌이와 돌봄에서 소외된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하고, 마을의 공동육아 커뮤니티 역할도 하는 어린이 식당을 우리도 하고 싶다! 할 수 있을까? 한번 해보자!' 어린이 식당은 이런 마음이 모여 시작되었다. 식당을 운영하려면 비용이 들고,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울산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 신청해서 첫 문을 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점차 도서관에서 자체적으로 운영을 해보려고 한다.

무더웠던 지난 8월 24일 여름방학 점심 때 열린 어린이 식당은 유치원과 초등학생 아이들, 독박육아로 지친 영유아 엄마들이 함께 어울려 따뜻한 밥을 먹고 가족영화도 보면서 더운 여름을 식힐 수 있었다. 봉사자들과 함께 재료 준비, 음식 만들기, 배식, 뒷정리 마무리까지 하느라 힘들긴 했지만, 모두들 너무 뿌듯하고 좋았다는 소감을 나누었다.

핵가족 단위의 작은 부엌과 거실을 벗어나 사회의 부엌과 거실을 만드는 어린이 식당. '작은 도서관 마을을 품다'로 기획된 마을공동체 사업을 통해 내가 마을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다. '혼자면 힘들다! 함께하니 즐겁다!' 그동안 배움은 학교에만 있고, 가르침은 선생님만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끊임없이 배우고 즐기니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표지 ⓒ 오마이북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와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고 알게 된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중학교 졸업 후 1년간 인생을 설계하는 학교)는 참 부러운 제도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잠시 쉬어 가라는 취지로 자유학기제가 실시되고 있다.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를 본뜬 제도이지만 우리나라 자유학기제는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진로교육이나 체험이 이루어지기보다는 방과 후 수업의 확장 개념 정도다.

사실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 같은 인생학교를 실제로 경험해봐야 하는 사람은 어쩌면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 아닐까. 학력고사 시대를 거쳐 주입식 교육을 받고, 초·중·고·대를 쉴 틈 없이 달려오며 자신의 꿈과 진로를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른들. 경험치만큼 아이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어른들이 이런 인생학교를 경험해봐야 하지 않을까?

혼자는 힘들지만, 함께하면 즐겁다

내년에는 도서관 안에서 어른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우리의 인생학교, 마을학교를 고민해보려고 한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글도 써보고, 함께 맛있는 요리도 만들어 먹고, 엄마들 저녁 반찬거리 걱정 없이 음식도 만들어 나누고, 여행도 다니고……. 배움을 통해 앎을 실천할 수 있는 그런 활동들을 지속해나가고 싶다.

지금도 여전히 내 관심 키워드는 '공동육아', '숲놀이', '마을공동체'다. 가끔 들르는 맘까페에서도 조언을 구하는 후배 육아맘들에게 깨알 같은 경험담을 소개해주는 육아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새롭게 도서관을 이용하는 분들에게도 '더불어숲 작은 도서관 공동체'를 통해 더불어 사는 즐거움과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즐거울 때도 있지만 힘든 순간도 있다. 하지만 공동체의 맛을 경험한 분들은 아마 알 것이다. 이것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말이다.

처음에 난 그냥 엄마였다. 그랬던 내가 공동체를 경험하면서 달라졌다. 도서관에서 봉사하는 나, 사회 문제에 귀를 기울이는 나, 그리고 내 안의 또 다른 수많은 나를 발견해가고 있다. 나는 마을에서 오늘도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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